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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정미 5시간전

나는 아직 다 발견되지 않았다!

햇살이 화창한 토요일 오후, 두 번째 책을 들고 20년 지기 동생을 카페에서 만났다. 따뜻한 바닐라 라떼를 앞에 두고 동생이 말했다.


"뭐야~ 언니! 첫 번째 책 쓸 때 너무 힘들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서 다시는 안 하고 싶다며.. 근데 언제 또 책을 썼어?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더니, 그 고생을 다 잊은 거야? ㅎㅎ"

"그러게.. 그런가 봐 ㅎㅎ"라고 웃었다.


하지만 뒤를 이어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느 순간부터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거나 혹은 공통된 연결점을 만나서 내 나름대로 정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잘 소개하는 일이 재미있어졌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나는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글을 읽고 쓰는데 보내고 있다고.. 이렇게 인생의 중반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엔 틈만 나면 그림을 그리고 인형을 오리고 붙였다. 언젠가 그림그리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미술을 전공으로 하면 잘되어야 봐야 동네 미술선생님이나 무명의 화가밖에 할 게 없다고 생각했던 부모님에 의해 심하게 좌절했다. 십여 년이 흐른 후에도 내 안의 열정이 포기가 되지 않아 아이를 낳고 미술대학원까지 마치기도 했다.


학창 시절 미술진학을 하지 못했던 나는 '그럼 이제 나는 뭘 하고 살아야 하나?' 고민했었다. 미술 말고 좋아했던 것이 아이들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을 이뻐했고 잘 데리고 놀았다. 그래서 귀여운(?) 아이들이 몰려있는 유치원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고 대학을 진학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유치원 선생님이 안된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아이 셋을 키우면서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나의 저질 체력으로는 당최 감당할 수 없는 직업이었다.)


대학을 진학하다 보니 심리학도 너무 재미있고 특수교육도 너무 흥미로웠다. 그 모든 것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미국으로 유학 와서, 공부에 대한 한을 풀듯이 나는 미술공부도 심리대학원도 모두 마쳤다. (Thanks to 남편!) 그리고 미술치료사도 되었고 심리치료사도 되었다. 그게 내 나이 마흔 중반이다. 그때 나는 스스로 무척 만족했다. 내가 가진 최대치의 능력을 다 썼다고 생각했었다. 어린 시절 꿈도 이루웠고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만족스러운 직업도 생겼다. 이게 나의 한계이자 끝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남은 인생은 한가롭게 그림 그리고 가끔 상담하며 살게 될거라 믿었다 .


하지만 코로나가 터지고 나에게 글쓰기라는 새로운 영역이 내 삶으로 들어왔다. 막연히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정도로만 생각했던 독서가 글쓰기로 이어졌고 지금의 다른 어떤 것보다 내 일상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되었다. 물론 감탄스러운 문장을 만들어 내지고 못하고 독자들을 사로잡는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지만 글쓰기가 내가 지금 가장 재미있어하고 흥미를 가진 영역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것이다. 천성이 집순이인데다가 나서는 건 싫지만,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고 싶은 나의 마음과 잘 맞는 분야는 오히려 글쓰기라는 걸 알았다. 한마디로 글을 읽고 쓰면서 나에게 천직은 오히려 작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두 번째 책에도 언급했지만 나는 아직 완전히 다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예전엔 '이만하면 충분해. 이 정도도 과분해.'라는 마음으로 살았다. 나에겐 특별한 능력도 실력도 없다고 믿으며 자랐기에 미국에 와서 이룬 성취만으로 늘 만족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생각도 가끔 한다. 5년 뒤 10년 나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아마도 유튜버가 될 수도 있고, 미국의 한적한 시골마을의 화가 할머니가 되어 있것 같기도 하고 혹은 여러 도시를 다니는 강연자나 여행작가나 그림책 작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한다. 내가 어떤 모습이 되었든 간에 나도 감히 예측하지 못했던 내 모습을 또 발견하기를 기대해 본다. 그런 기대로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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