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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정미 Sep 10. 2024

감정은 억울하다!

얼마 전  미혼부 연예인의 장성한 딸이 아버지가 몇 년 전 재혼하여 생긴 동생에 대해 질투심을 느낀다는 발언을 오은영 박사님의 방송에서 고백했다. 그 발언으로 새엄마는 어렵게 임신한 자신의 아이가 축복받지 못한 아이로 취급받고 혹여 그 딸이 아이를 미워할까 봐 마음이 상했다. 그래서 그 둘 사이가 틀어지고 아버지는 그 중간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모습이 방송을 타고 나왔다. 새엄마는 딸이 어떻게 자기의 아이에게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는지 서운해했고, 자신의 뱃속의 아이를 남편의  딸이 미워하고 거부할까 봐 걱정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많이 안타까웠다.  새엄마는 감정과 행동을 동일시했다.  많은 사람들이 감정과 행동을  같은 것이라 착각하고 이런 오해들로 가까운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가 많다. 감정은 행동이 아니다. 감정은 어떤 상황에서 내 안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일 뿐이다. 그리고 사람은 각자 처한 상황과 기질 그리고 자라온 환경에 따라서 느끼는 감정이 다 다르다. 그것이 개인의 고유함과 개성을 드러낸다. 새엄마는 자신이 어렵게 얻은 아이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제 남편의 딸은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아이를 무조건 이뻐하고 사랑해 줄 것이라 기대한 듯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착각이다.


딸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은 환경 받지 못한 가운데서 태어났다. 자신으로 인해 아빠는 잘 나가던 연예인의 삶에서 추락했다. 그 이후 그녀는 할머니의 손에서 컸다. 물론 아버지는 있었지만 온전히 나의 존재를 기뻐하고 환영 해주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 태어나는 동생은 모두의 기대와 축복 속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당연히 아버지와 새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할 것이다. 아무리 그녀가 성인이라 하더라도 당연히 서운하기도, 불안하기도, 질투심이 날 수 있다. 그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 자연스러운 자신의 반응에 서운함을 표현한 새엄마에게 오히려 더 섭섭함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 맘이 그렇게 느껴지는데, 나는 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한 게 잘못인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면 억울해진다. 이런 나의 감정을 거부하는 새엄마에게 또한 거절과 거리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딸이 질투심이든 유기불안이든 그런 감정을 느낀다고 해서 2-3살 아이들처럼 태어난 동생을 꼬집거나, 때리거나, 괴롭히진 않는다. 이것이 행동이다. 만약 정말 이런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미성숙한 성인이고 잘못된 행동이지 감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성인이 된 그녀는 분명 그런 분별력은 있을 것이다. 갓 태어난 동생이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꼬물거리는 연약한 생명에게 해코지를 할 만큼 분별력이 없지는 않다고 믿는다.


우리의 마음속에선 시시각각 수만 가지 감정과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아니 부모라도 자식이라도 미워질 때가 있다. 나 또한 아이들 키우기가 힘들어서 '뱃속으로 도로 집어넣고 싶다. 무자식이 상팔자다.'싶을 때가 많다. 그런 감정이 든다고 내가 아이들을 정말 유기하거나 방치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상처로 부모에게 원망과 화가 생길 때가 많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이유로 부모에게 패륜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정상이고 성숙한 사람들은 해야 할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을 구별하며 산다.


몇 년 전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인이 사건도 양모가 밤에 잠도 잘 안 자고 칭얼거리고 밥도 잘 안 먹는 정인이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나도 모르게 화가 나서 그랬다고 변명했다. 나는 양모가 그 감정을 느낀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그렇고 모든 영아를 키우는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꼭 느끼는 감정이다. 그 감정을 느꼈다고 양모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의 감정을 힘없는 어린 정인이에게 '행동'으로 분풀이를 했다. 그것도 무지막지하게 말이다. 그것이 문제인 것이고 양모가 온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는 이유인 것이다.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이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너무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 그건 그 사람이 나와는 다른 존재라는 이유이고 그런 감정을 느끼는 데에는 사람만의 이유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 어떻게 그런 맘을 품어? 어떻게 부모에게 그런 생각을 해?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는 말들로 나의 고유감정을 부정하고 사람의 내면으로 더 깊숙이 숨게 만든다. 나의 솔직한 감정이 표현되지 않았을 때 인정되지 않고 수용되지 않으면 억압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억압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내 마음을 알 길이 없게 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찾기가 어렵다. 궁극적으로 마음 안에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감정의 실타래 때문에 점점 마음이 힘들어지고 관계도 꼬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깊은 원일일 때가 많다.


반대로 한국문화에서는 '이런 식으로 할 거면 하지 마!'라는 말을 참 많이 한다. 아이들이 공부를 하거나 배우자에게 뭔가를 부탁했을대 기분 좋은 마음으로 하지 않고 얼굴을 찌푸리거나 싫은 티를 내면 바로 이런 말이 나온다. 어떤 일을 할 때 기분 좋게 긍정적으로 행동하라는 소리이다. 물론 모든 일을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너무  좋지만 어떻게 모든 면에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우린 로봇이 아닌데 말이다. 오히려 하기 싫은데도 억지로라도 행동을 한다면 그 모습이 더 대단한 것 아닌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행동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학원을 가기 싫어하는 데도 억지로 가방을 끌로 가주는 아이를 한번 칭찬해 주고 하기 싫은 청소를 툴툴거리면서라도 하는 남편을 칭찬해 준다면 분명히 나중에 기분 좋은 모습으로 하는 날이 온다고 생각한다.


감정과 행동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감정은 잘못이 없다.  모든 감정은 존중받아야 하고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모든 행동이 용납되는 것이 아니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감정을 거부한다면 그 존재를 거부하는 것처럼 되고 만다. 그리고 이런 존재거부는 관계 안에서 큰 상처를 남길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서운하고 섭섭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그 사람의 감정 때문인지 행동 때문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 그리고 감정이 아니라 그 행동에 대해서만 말해야 한다.


'화나는 건 알겠지만 그래도 부모에게 욕하는 행동은 용납할 수 없어'

'공부하는 게 어렵고 힘든 건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다 그만두겠다는 건 너무 성급한 것 같아'

'동생이 미울 수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때리면 안 돼.'

'저게 갖고 싶은 마음을 알겠어. 근데 지금 우리 형편엔 무리인 것 같아. 방법을 찾아보자.'


앞서 재혼가정의 방송을 보면서 그 부모가 먼저 '네 마음 알겠어. 너라면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엄마 아빠도 네가 서운함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할게.  우리는 너랑 태어날 동생이라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두 사람 사이에 그런 깊은 감정의 골을 만들지 않지 않았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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