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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정미 Jul 25. 2024

부모가 놓치지 말아야 할 시그널

얼마 전 한 저명 의사 엄마의 딸이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내용을 담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부부 둘 다 유명한 의사였지만 정신질환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하고 힘들기만 했던 정신 질환 보호자로서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의사인 자신도 낯선 정신질환 앞에서 이렇게나 어렵고 힘든데 일반 사람들에게 정신질환 환자를 대하고 다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까 싶은 마음에 책을 내게 되었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정신과적 문제를 가진 많은 가족들에게 힘이 되어 주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나는 책을 다 읽고 나서 불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딸이 심각한 조울증으로 자살기도를 하고 정신병동에 오래 보호입원을 할 정도로 심각한 정신질환이 발병된 이유를 부계의 강박적 성향을 타고난 아이의  기질로만 치부했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는 잘 나가는 의사였어도 아이들에게 의사가 되라고 강요한 적도 공부를 잘하라고 스트레스를 준 적도 없다 했다. 자신의 가정은 너무나 행복한 가족이었다고 항변했다. 그런 우리 가정에서 왜 이렇게 아이가 자신을 그렇게 부정적 생각하고  죽고 싶어 하는 몹쓸 병에 걸렸는지 모르겠다고 억울한 면이 너무 많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나는 어린이 심리치료사로서 그녀의 억울함을 이해하기도 했지만 사실 안타까운 면이 많았다.  사실 이런 현상은 잘 나가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많은 가정에서 보이는 현상이기도 하다. 도대체 왜 모지랄 것 없는 우리 집에서 아이가 이렇게 됐는지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들 한다.


그들은 아이들을 육체적이나 성적으로 학대하지 않았다. 당연히 아이들을 굶기거나  유기, 방관하지도 않는다. 원하는 학원이나 예체능도 다 시켜주고  좋은 학교도 보낸다. 베이비 시터나 도우미 아주머니들이 상주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나빠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부모들이 놓치고 있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1. 이렇게 부모의 성취가 대단하고 커리어가 좋을수록 부모는 바쁠 수밖에 없다. 바쁜 부모들은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아이들의 기질을 세심하게 관찰할 시간이 없다. 책 속의 의사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진료분야에서 유명한 의사였던 엄마는 결혼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결혼을 하고 아이를 출산한 후에도  자신의 연구과 눈문, 그리고 환자 보는데 바빴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함께 있어주지 못했다. 그녀가 말했듯  아이의 기질이 아버지 닮아 강박적이었다면 불안이 높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어렸을 때부터 크고 작은 신호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는 그것을 세심하게 볼 시간적 마음의 여유도 없었을 확률이 높다. 착한 아이들은 성장하고 나면 부모가 하는 일이 무척 대단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저렇게 훌륭하고 대단한 일을 하는데 지금 내가 사소하게 하고 있는 고민이나 불안은 너무나 하찮고 배부른 소리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부모의 관심을 끌지 않는다. 오히려 딸이 반항도 하고 문제도 일으키며 "나 좀 봐달라. 나 너무 힘들다."라고 외쳤다면 자살시도를 할 만큼 심각하게 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정신 질환이 그렇듯 착하고 불안한 아이들은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아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아이들의 기질을 미리 알아채고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인 것이다.


2. 두 번째 엄마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한 적도 스트레스를 준 적도 없다고 했다.  많은 부모들의 착각은 부모가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면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큰 착각이다. 물론 아이들이 다른 친구들보다  공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에 고마워할지 몰라도 아이들은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면 스스로 비교하게 된다. 특별히 한국사회에선 더더욱 그렇다. 자신의 부모들이 대단한 성취를 이룬 사람이라면 아이들 스스로 주눅이 들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부모가 이룬 것 같은 성취를 이루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과 자책감을 스스로 가진다.


특별히 착한 아이들은 부모들에게 자랑스러운 자녀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어린 나이엔 자신은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의 업적을 뛰어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막막하고 절망스러워하는 아이들이 있다.  나도 이 실리콘밸리에 살면서 이런 케이스를 무척 많이 본다. 잘 나가는 부모 밑에서 혹시 부모의 얼굴에 먹칠을 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아이들이 꽤나 있다.  부모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하면 마치 실패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을 부모가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가지게 된다. 조금 현명한 부모라면  이 부분을 어렸을 때부터 다독여 주었을 것이다. 부모의 성취나 업적에 기눌리지 않도록 말이다.


3. 세 번째 이 엄마는 아이의 마지막 신호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딸아이가 중고등학교를 올라가고 나서 학교로부터 아이가 우울증을 보인다는 의견을 들었다. 학교에서 상담도 받았다. 학교 상담선생님은 아이를 지속적으로 병원에 데리고 가고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 같은 집에서 그럴 리가 없다며, 아이의  가벼운 사춘기 혹은 가벼운 우울증이라 생각을 했고 아이의 괜찮다는 말을 고지 곧대로 들은 것이다. 내가 제일 화가 나는 부분이 여기였다. 우리가 만약 전문가로부터 아이 폐에 혹이 보이니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시고 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란고 했다면 부모가 그 말을 무시할 리는 없다. 아이가 아무리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아프지 않아요.'라고 말해도 그런 진단을 받고 '그래 네가 아프지 않으면 괜찮겠지.'라며 넘아갈 부모는  없다. 하지만 꼭 정신질환에서 만큼은 ' 우리 딸이 상담을 받기 싫어해요. 이제 괜찮다고 해요. 우리 아들이 다음부터는 안 그런다고 해요.'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곤 몇 년 후에 아이들의 자해, 자살 시도, 중독등으로 다시 병원을 찾게 만든다. (물론 정말 나이가 들면서 점차 좋아지는 아이들도 있긴 하다. 그건 마치 암 4기 진단을 받고 산으로 올라가 자연 치유한 것과 같이 운이 좋은 경우이다.)


정신과나 상담실에서 심각한 정신과적 문제를 가진 환자 부모를 향해 '원래 이런 병은 유전적 성향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환경적 요소가 0% 여서 그런 것이 아니다. 환자의 보호자로서 지난 간 과거, 부모의 양육태도의 잘못이나 실수를 언급해 봐야 부모의 죄책감만 더할 뿐이고 부모에게도 환자에게도 아무 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혹 어떤 부모는 과거 자신이 잘못을 곱씹다가 스스로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는 역효과가 나기 때문에 그런 죄책감을 느낄 만한 말을 하지 않는 것뿐이다. 모든 병이 그렇듯 정신질환도 유전적 소양, 양육환경과 자신의 스트레스 대처 능력의 복합적 상호작용으로 발현된다.


아이의 기질이 유난히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래서 키울 때 유난히 어렵고 까다로운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아무리 잘해도 부모는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다. 때문에 누구든지 정신과적 문제는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읽을 줄 아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그냥 이도 저도 잘 모르겠다면 미리 전문가를 꼭 찾아가 보라고 말하고 싶다.


아이들이 보내는 시그널

1. 잠을 너무 자거나 잘 자지 못한다.

2. 악몽을 자주 꾼다.

3. 평소와 달리 자꾸만 혼자 있으려고 한다.

4. 평소에 즐기던 활동이나 친구모임이나 만남 등에 흥미를 잃는다.

5. 실수나 실패를 두려워해 회피하려고 한다.  회피로 인한 거짓말등이 늘었다.

6. 완벽주의 성향을 보인다. ex. 항상 1등을 해야 하거나 항상 00보다 잘해야 한다고 믿는다.

7.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학교가기를 거부한다.

8. 성적이 갑자기 떨어진다.

9. 감정표현이 줄어들거나 표정에 변화가 없거나 반대로 감정기복이 너무 심해졌다.

10. 팔이나 다리등에 전에 보이지 않던 상처들이 보이거나 원형탈모등이 생긴다.

11. 자신을 비하하거나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한다.

12. 지나치게 SNS에 빠져있거나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다. ex. 몸무게, 외모, 명품 등등

13. 자신의 미래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고 불안해한다.

14. 음식을 지나치게 절제하거나 지나치게 폭식한다.

15.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16. 친구관계나 가족관계에서 지나치게 착하고 순응적이고 양보하는 편이다.

17. 게임이나 도박등 중독적 활동에 빠져있다.

18. 일기나 에세이등에서 자신의 죽음이나 자살등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19. 세균, 오염, 정리정돈등에 강박적 성향을 보인다.

20. 마음을 터놓고 의지할 만한 친구나 지인들이 없다.


*이 중에서 3-4 가지 이상 보인다면 꼭 전문가와 상담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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