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제가 한 말이나 행동 때문에 상처를 받을까 봐 걱정이 돼요. 저는 아이에게 절대로 상처 주고 싶지 않아요 "라고 말하는 부모가 많아지고 있다.
어린 시절의 상처와 결핍이 현재의 육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정보를 접한 많은 사람들은 덜컥 겁을 먹는 것이다. 그래서 훈육을 하다가 혹은 부모의 부주의나 실수로 아이들을 울리거나 혼을 내는 것을 상처를 준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아졌다. 때문에 요즘은 오히려 너무 허용적이고 한계 없는 육아로 인한 아이들의 행동문제가 늘었다.
그럼 상처가 되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 결정적인 차이는 지속성이다. 부모의 24시간의 돌봄이 필요한 영유아기를 지나고 나서 두둘 이상 성장하는 아이는 자라면서 거절도 배워야 하고 실망도 해보고 좌절도 겪어봐야 한다. 그렇게 실패나 좌절, 실망을 극복한 경험을 통해서 규칙도 배우고 자기 조절능력도 키우고 사회성도 발달한다. 세상은 아이가 원하는 데로만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야 성장하면서 만나게 될 크고 작은 고난이나 어려움 앞에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수많은 실패가 좌절을 경험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린 시절의 좌절과 실패경험은 마치 예방접종을 맞는 것만큼 중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얼마나 자주 심하게 좌절을 경험하는 냐에 있다. 나중에 성인이 되어 어린 시절의 경험이 상처가 되는 것은 이런 거절, 좌절, 실망의 상황만 지속적으로 반복되기만 한 것이다. 이들에겐 좌절과 상처를 회복한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특별히 아이의 삶의 터전인 학교나 가정에서 매일 이런 좌절을 경험했다면 성인이 된 후에 상처가 될 확률이 높다. 더 나아가 그런 자신의 거절이나 상처, 실망에 대해 제대로 이해받아보거나 표현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평소 아이가 부모에 대한 신뢰와 애정에 대한 든든한 믿음이 있으면 가끔 인생의 비를 맞는다고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인생을 살면서 비를 맞아보는 경험은 필요하다. 어른이 되어 처음 비를 맞게 된다면 무척 당황스러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비를 맞아봐야 다음에 어떻게 비를 맞지 않을 수 있는지 준비할 수도 있고 옷을 말릴 방법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결핍과 상처가 된 사람들은 비를 맞기만 했지 제대로 말려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포송포송하고 편안하고 따뜻한 옷을 입어본 경험이 적은 것이다.
사람마다 누군가는 가끔씩 쏟아지는 폭우에 옷이 흠뻑 젖어버리고 옷이 말릴 새도 없이 또 폭우가 쏟아지는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 있다. 소위말하는 아동학대 피해자들이나 유난히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다. 느닷없는 상황에 늘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한 사람들이고 제대로 공감을 받아보거나 치료를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매일 같이 가랑비를 맞는 사람들이다. 한 사건 한 사건으로 보면 큰 일은 아니다. 부모의 거친 말투, 형제들과의 비교와 차별, 부모의 비아냥거리는 태도나 무관심등 학대라고 하기엔 약해 보이지만, 이것이 매일매일 반복되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런 가랑비도 오래 맞으면 결국은 다 젖게 되는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쏟아지는 폭우나 가랑비에 오래 노출되기만 했지 말려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세상은 늘 차갑고 축축하고 찝찝하게만 느껴진다. 이렇게 세상을 왜곡되게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 상처이고 결핍인 것이다. 상처받은 사람들은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결핍이 많으면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다. 죄절만 반복되면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 그래서 이런 왜곡된 시선 때문에 자신도 타인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아이들을 바르게 훈육하고 울리는 것에 겁먹지 말자. 아이들의 모든 좌절과 실패가 상처가 되지 않는다. 아이에게 상처를 줄까 봐 전전긍긍한 육아보다는 비 맞은 아이를 어떻게 잘 말려줄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인생을 살아가보면 예측할 수 없는 비를 맞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잘 말리고 건조해서 대체로 그럭저럭 따뜻하고 포송포송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인 것이다. 그것이 아이에 대한 관심과 일관적이고 따뜻한 훈육 그리고 함께 보내는 즐거운 시간등이다. 상처에 집중하는 육아보다 건강한 애착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이 더 현명한 육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