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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점순 Dec 03. 2023

가족여행

가족 여행

노란 유채꽃이 제철을 만난 4월이다. 지금까지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남편은 건설회사에 오래 다녔기에 사계절 내내 출장 중이었다. 집안에 애경사가 생겨도 만나지 못했다. 그런 사정을 너무 잘 아는 딸이 열일을 제치고 제주도 3박 4일 여행 코스를 잡았다. 남편은 가지 않겠다고 성화를 냈지만, 표정은 밝았다. 이튿날 등산복을 사 와서 잘 맞는다고 입이 귀에 걸렸다.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도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자랑을 했다.


꿈같은 현실이 찾아왔다. 젊은 시절 남편은 공사 현장에서 먹고 잤다. 아이들 입학, 졸업 사진에 아빠는 부재중이었다. 이번에는 남편이 먼저 어린아이처럼 들떴다. 아침에 번개같이 김포공항에 다녀왔다. 사람들이 어떤 옷과 여행 가방을 들고 가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가족여행이란 말을 입에 달고 좌불안석이다.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도록 외식 한 번 하는 것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집을 하숙생처럼 들락거렸다. 빠듯한 시간에도 아들은 우리를 위해 시간을 내었다. 어려서부터 남들 다 가는 여행을 못 가는 부모가 안타까웠던 걸까. 나도 손꼽아 기다렸다.


새벽에 집을 나섰다. 전철로 김포공항에 도착하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창공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쪽빛으로 물들었다. 제주도가 손바닥만 하게 눈에 들어왔다. 승객들이 보는 앞에서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눈치를 챈 남편이 민망했는지 옆구리를 쿡 찔렀다. 나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제주공항에 내렸다. 렌터카를 빌렸다. 푸른 바다를 끼고 둘레길을 따라 드라이브를 했다. 기쁨이 벅차올라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심장이 벌렁거렸다.


들판이 노란 물결로 출렁거렸다. 비릿한 바다 냄새와 상큼한 향기가 눈물 콧물을 쏟게 하였다. 끝도 없이 펼쳐진 꽃밭에 내렸다. 카메라 셔터가 연신 찰칵찰칵 터졌다. 늙으면 아기가 된다더니,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았다. 큰 소리로 감탄을 쏟아냈다. “우아, 멋지다.” 딸은 엄마가 좋아하는 모습을 처음 본 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흐뭇함이 얼굴에서 묻어났다. 차를 중간마다 세워주었다. 남편과 나는 모델처럼 포즈를 취하였다.


“아버지, 어머니, 조금 더 가까이 팔짱 끼세요.”


“찍습니다. 찰칵.”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몇 시간 후 서귀포에 예약해 놓은 펜션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집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귤나무가 성을 지키는 사열대처럼 빼곡하게 섰다. 텃밭에는 쑥과 냉이의 상큼한 내음이 향긋했다. 집이 고풍스러운 분위기였다.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거실로 들어갔다. 벽에는 펜션 주인의 이름과 천주교 세례명이 새겨져 있었다. 젊은 시절 고왔던 모습이 사진에서 금방 튀어나올 듯 보였다. 펜션을 종교기관에서 좋은 뜻으로 쓰이길 바랐다고 한다. 서울에서 내려온 그녀는 슬하에 자식이 한 명도 없었다. 수십 년 동안 숙박업을 하다가 기증했고, 유언 조건은 ‘가재도구와 유품을 보존해 주세요.’라는 것이다. 손때가 묻은 가구와 침대, 소파는 새것처럼 깔끔했다. 팻말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내 집처럼 편안하게 쉬어가세요.” 이 글귀가 가슴에 파고들어 친정집에 온 딸처럼 울컥했다. 부엌에 반질반질한 밥솥이 나를 보고 웃었다. 테이블 유리에 붙여놓은 손글씨가 말을 걸어왔다. “어느 분이라도 부담 없이 쉬어 가세요.” 자상하고 좋은 분이 제주도에서 살다가 떠난 흔적에 감동을 받았다. 나는 살아오면서 가족에게도 마음의 빚이 남았었다. 기념일이나 졸업식을 대충 때우고 넘어갔다. 애들에게 아빠와 여름 휴가철에 여행가자고 약속을 해 놓고 지키질 못했다.


남편은 출장 중이었다. 속으로는 그놈의 직장 때문이라고 짜증을 냈고, 회사에 충성하느라 가족과 함께하지 못해 속상했다. 아이들과 이름 있는 날은 더 쓸쓸하였다. 모처럼 날을 잡아 놓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못했다. 가난한 집 제사 돌아오듯이 기념일과 애경사로 돈 쓸 일이 밀고 쳤다. 하지만 세월이 빛의 속도로 지나갈 줄을 몰랐다. 현재를 소홀히 하면서 미래가 보상해 주리라는 착각에 빠졌다. 형편이 나아져서, “애들아 우리 가족여행 가자.” 했더니 아이들이 “저희는 시험 공부해야 합니다. 아빠 엄마, 두 분만 다녀오세요.”라고 했다.


80년대에 이사를 왔다. 이삿짐이라곤 이부자리와 밥그릇, 숟가락 네 벌이 전부였다. 도시 생활에 홀벌이로는 세끼 밥 먹기도 힘들었다. 남편은 겨울에 폭설이 내려야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이 아빠 얼굴을 잊어버리고 성장했다. 그 당시에는 우리만 빠듯하게 산 것이 아니라 이웃들도 생활 수준이 모두 비슷했다. 오늘따라 뒷좌석에서 보니 딸은 엄마와 자매처럼 보였다. 언제 자랐는지 큰 나무처럼 든든하다. 이번 여행에서 가족애를 새롭게 느끼게 되었다.


평생 자식들의 보호자로 살았는데, 오늘은 보호를 받았다. 제주도로 수학여행 온 기분이다. 봄바람에 실려 온 유채꽃 향기에 취해버렸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동심으로 돌아갔다. 점심으로 제주신라호텔에서 중국 코스요리를 맛있게 먹었다. 산해진미가 끝도 없이 나왔다. 오후에는 백록담으로 올랐다. 정상에서 남편과 큰 소리로 야호, 목이 터지라 소리를 질렀다. 인생의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렸다. 남편은 백마를 타고 나는 황금색 말을 탔다. 소녀 시절 꿈에서 기다렸던 백마 탄 기사가 내 옆에서 웃었다.


아시아에서 제일 큰 수목원에 들어갔다. 다양한 열·온대 식물들을 배경으로 사진도 많이 찍었다.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것은 가족과 밥을 함께 먹는 일이 최고였다. 총알처럼 달려온 삶의 뒤안길에는 굴절된 흑백사진이 타임머신을 타고 달려왔다. 내가 새댁이라고 불렸던 시절에 해 먹었던 요리 솜씨를 발휘했다. 펜션 마당에는 가을에 누군가가 뿌려놓은 야채들이 파랗게 올라왔다. 농촌에서 자라서 양지쪽에 파릇한 쑥과 찬거리를 보니 머릿속에 레피시가 펼쳐졌다. 노란 유채꽃과 파란 부추, 씀바귀나물을 비닐봉지에 한가득 채집했다. 남편과 딸이 맛있게 먹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부추는 양념간장에 버무리고, 유채꽃 나물은 전을 부쳤다. 나물과 씀바귀는 데쳐서 초고추장에 새콤달콤하게 무쳤다. 어린 쑥은 손바닥으로 싹싹 비벼 쓴 물을 뺀 다음 된장을 풀어 쑥국을 끓였다. 달걀 몇 개를 부추와 마늘잎 당근을 송송 썰어 넣어 달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빙 두르고 눈사람처럼 굴리니 계란말이가 먹음직스럽게 완성되었다.


가족 여행이 절정에 이르렀다. 카렌 블릭센의 작품 <바베트의 만찬>처럼’ 우리 가족의 만찬이 차려졌다. 산해진미가 그득한 예술작품이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난 남편이 눈앞에 펼쳐진 진수성찬에 깜짝 놀랐다.


“밤새 우렁각시가 다녀갔나? 결혼 40년 만에 네, 엄마 요리 솜씨에 감동했다.”


꿈을 꾸었던 일들이 현실이 되었다. 오늘도 내일이 되면 과거가 된다. 노란 유채꽃 물결이 출렁거렸다. 마음의 책갈피에 곱게 접어두었다가 언제고 다시 떠올리고 꺼내 볼 수 있는 소중한 가족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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