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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점순 Feb 04. 2024

동행


귀뚜라미 노래가 들린다. 사람의 정이 그리운 계절이다. 지금쯤 월드컵공원에는 억새축제가 절정일 게다. 책을 몇 권 가방에 넣고 전철을 탔다. 오랜 지인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10월이 가기 전에 선물을 전해주고 싶다고 하였다. <네, 감사합니다. 월드컵 공원으로 오세요.> 카톡을 보냈다. 여름내 녹색 물결이 출렁거리던 숲들이 가을볕에 곱게 물들어간다. 무슨 선물을 주겠다는 것일까. 그분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그늘이 있어 보이긴 해도 인상이 참 좋은 얼굴이었다. 바쁜 일 다 접고 나를 만나러 온다니 설렘이 일렁거렸다. 

이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분은 부인과 함께 수녀원을 후원하고 있었다. 부인의 얼굴은 동글납작하고 따뜻한 인상이었다. 장애인들과 부모가 없는 아동들을 돌봐 주며 동행을 하는 모임이었다. 당시에 나는 외환위기가 휩쓸고 간 빈 들에서 떨고 있었다. 세상 근심을 혼자 다 짊어진 사람처럼 밤마다 가위에 눌렸다. 이 터널이 언제쯤 지나갈지 아득했다. 현실적인 어려움과 영적인 메마름이 맞물려 신앙생활도 건성건성 했다. 그랬던 날들을 생각하며 공원으로 걸었다. 문자가 또 왔다. 〈선약이 있어 선물만 드리고 곧바로 돌아옵니다.〉 카톡을 보냈다. 〈십 년 만이잖아요. 그렇게 보낼 수는 없어요.〉 선물까지 준비해서 달려온 사람을 밥 한 끼라도 먹여 보내는 게 사람의 도리 같았다. 전철에서 공원으로 향했다. 

저만치, 어디선가 낯익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 옛날 그대로다.” 서로 칭찬하기로 의논한 사람처럼 똑같은 말을 했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참 반갑고 쑥스러웠다. 시간이 정지된 듯 침묵이 흘렀다. 코스모스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었다. 그는 세월을 비켜 갔는지 젊음이 여전했다. 수녀원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공원 안에는 잔잔한 호수에 기러기들이 헤엄을 치고 있다. 한쪽에는 마스크를 쓴 가족들이 텐트를 치고 한가하게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그 틈을 스쳐 갔다. 자연스럽게 코로나로 인해 먹고사는 일과 모두가 살아가기 힘들다는 이야기로 말을 이어갔다. 어디를 가나 실업자와 자영업자들의 근심이 느껴진다고. 후원 회원이 줄어 어려움을 겪는 중이라는 말도 모깃소리만큼 들렸다. 그는 빠르게 내 옆으로 왔다. 

“저기요. 자매님, 손을 좀.” 그와 눈빛이 마주쳤다. 선물 폭탄이었다. 내 손바닥 안에 황금 구슬이 쏟아졌다. 콩알만 한 크기의 구슬로 꿴 5단 묵주였다. 그분은 다시 히죽히죽 웃으며 잠바 주머니를 또 뒤졌다. 손에 잡혀 나온 파란색, 분홍색, 흰색이 줄줄이 따라 나왔다. “어머머, 너무 아름다워요. 이런 귀한 선물을 손수 만들어 주시다니요. 감동입니다.” 그의 변함없는 마음이 묵주의 매끈한 촉감으로 가슴까지 전해졌다. 선물을 드리기 위해 며칠 동안 만들었다며 황소처럼 웃었다. 속으로 참 좋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10월 성모성월에 꼭 드리고 싶었어요. 자매님, 이 묵주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많이 주세요.”라고 덧붙였다. 이 순간만큼은 너덜거리는 윤리 잣대를 내려놓았다. 아이들처럼 신나서 공원을 돌아다녔다.

십 년 동안 영적인 동행을 이어왔다. 명동에서 그분을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천성적으로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그때 현실의 무게감을 누구한테라도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싶었다. 나처럼 그분도 말 못 하는 속사정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보고 첫째 누님 같다는 말을 자주 했다.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내 속마음을 들키고 말았다. 순례길에서 마음을 나눌 좋은 친구가 옆에 있어 세상은 살 만하였다. 명동 성물 방으로 가서 내가 좋아하는 신구약 성경책을 샀다. 매일 성경을 읽고 꼭꼭 씹어 먹어보시라고 했다. 두 손으로 덥석 받으며 말을 하였다. 그분은 선물을 주기는 해도 한 번도 받아 본 적은 없다며 좋아했다. 

당시에 여건도 받쳐 주지 않았지만 나는 대학생이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였다. 중간고사와 기말시험이 밀려왔다. 젊은 학생들보다 몇 배나 노력해야 과락을 면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오른손에 쥐고 있던 성경책을 놓아버렸다. 그분과 헤어진 뒤 다음 날부터 짧은 성경 구절을 문자로 보내주었다. 영적으로 말라 비틀어가던 핏줄에 수액을 넣어주는 생명의 물줄기였다. 그렇게 성서를 읽고 묵상하는 친구가 되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같은 이상을 바라보며 순례의 동행이 되었다. 

오늘은 유난히 파란 하늘가에 흰 구름이 뭉게뭉게 떠내려간다. 가을이 절정이었다. 국화 향기가 사람들을 공원으로 불러 모았다. 남녀 쌍쌍이 손을 잡고 걸으며 웃고 떠들었다. 오솔길 분위기가 우리에게도 어색하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고 좋았다. 밀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20년 전 처음 본 날, 그분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나이가 들어도 누가 빤히 쳐다보면 나는 부끄럼을 탔다. 그분도 누구한테도 속 시원하게 말해 본 적이 없는 묻혀버린 시린 이야기가 있었다. 그분의 말을 빌리면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홀아버지 밑에서 성장하였다고 했다. 불안과 공포에 떨며 마음의 빗장을 꼭꼭 닫아 걸고 살았던 세월이었다. 눈물 밥을 먹었고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다. 아버지의 받아 들일 수 없는 말과 행동으로 인해 어린 마음에 이중고를 겪고 살았다. 한번 열린 이야기는 샘물처럼 줄줄 흘러나왔다. 고생 끝에 자수성가를 하였고 물질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해도 가슴에는 채워지지는 않는 공허함을 느꼈다. 눈물이 그렁그렁 거리는 그분의 표정을 보니 내 측은지심이 발동하였다. 

식당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동행하는 친구를 만났으니 맛있는 것을 사 주고 싶었다. 벽에 붙여 놓은 메뉴판에는 해물찌개, 갈치조림, 동태찌개, 낙지볶음 등등 쓰여 있었다. 그분이 한번 훑어보더니 먼저 손을 번쩍 들었다. “동태찌개로 2인분만 주세요.” 찬바람이 불 때는 따끈한 국물이 최고다. 내가 돈을 많이 쓸까 봐 그랬을까. 보글보글 끓는 찌개 앞에서 십년 간 묵은 삶의 체증을 풀어냈다. 그분이 벌떡 일어나더니 약속을 깜박했다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럼 십 년 후에 또 봅시다.”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바람처럼 사라졌다. 

한적한 오솔길에는 꽃길이 펼쳐졌다. 혼자 걷는 길이지만 기쁨이 차올랐다. 그분이 꿈을 실현해가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수녀원의 아이들과 장애인들의 대부가 되어 동행을 이어갔다. 사랑에 굶주린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되어주는 일이 최고의 기쁨이라고 하였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라고….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그렇게 승화시킬 수 있었을까. 어버이날이면 아이들이 손편지를 수없이 보내온다며 싱겁게 웃는 좋은 아버지였다. 부인과 아들 자랑을 할 때는 꼭 팔불출이 따로 없었다. 그분이 사랑을 쏟아 키워낸 나무들이 꽃을 피워 낼 수 있고,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진심으로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인생은 순례길이다. 함께 걸어가는 길에 동행하는 친구가 있으니 외롭지 않았다. 코스모스 길을 걷다 보니 마음이 울렁거렸다. 그분의 진득한 사랑은 모천母川에서 흘러나왔을까. 내 가슴에 보랏빛 미소가 살포시 내려앉았다. 은발이 휘날리는 갈대밭을 걸었다. 붉은 노을은 서산에 걸렸을 때 아름다움을 발산하였다. 아름다운 이 가을처럼 동행하며 곱게 물들어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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