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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점순 Feb 04. 2024

소죽

겨울 끝자락, 소낙비가 쏟아졌다. 요란한 천둥소리를 들으며 밖을 내다보았다. 물방울이 땅을 향해 방망이질을 했다. 도로에는 금방 빗물이 굽이치며 흘렀다. 어둠이 내리는 저녁 아련하게 서 있는 어릴 적 내가 떠오른다. 그날의 기억 속으로 들어갔다. 


남동생을 집에서 돌보았다. 비가 오면 아버지는 쟁기를 잡고 무논을 갈았다. 엄마는 풀과 등겨가루, 그리고 콩을 듬뿍 넣고 걸쭉하게 소죽을 끓였다. 밥숟가락만 놓으면 들로 내달렸다. 

가마솥더위였다. 논바닥은 먼지를 펄펄 날렸다. 어른들은 비봉산에 올라갔다. 영험이 있는 산이라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하늘만 쳐다보았다. 비에 의존해서 농사를 지었는데 비가 오지 않으니 재앙이었다. 어른들은 갓을 쓰고 흰 두루마기를 입었다. 산 정상에 상을 차리고 돼지머리를 놓고 밥과 국을 올리고 시루떡과 제철 과일과 막걸리, 북어를 차려 놓고 축문을 외웠다. 

“비봉산 산신령이시여, 비나이다. 주룩주룩 비를 내려 주시옵소서.”

기우제를 마쳤다.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후드득 소나기가 쏟아졌다. 앞뜰과 뒤뜰 다락논에 물이 콸콸 들어갔다. 아버지는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과 마른 논에 물들어가는 것은 보고 또 보아도 좋다고 하셨다. 얼씨구절씨구 지화자 좋구나. 신바람에 어깨춤을 들썩이며 품앗이로 모내기를 했다. 집성촌 사람들은 사돈에 팔촌까지 일가친척들이었다. 이렇게 풍년이 들었건만 식구가 많은 집은 보리, 초근목피로 보릿고개를 넘겼다. 그 시대는 집집마다 오 남매, 팔 남매, 구 남매가 수두룩했다. 땅이 많은 지주들을 제외하면 모두 가난에 허덕였다. 

아버지가 10년 동안 일본 징용에 끌려갔다가 돌아왔고, 오빠 둘은 6·25 전쟁에 징병 되었다. 남자들의 부재는 엄마를 더없이 예민하게 만들었다. 자식들이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정서 불안이 생겨 더 집착을 했다.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렸다. 도랑에는 흙탕물이 넘실거렸다. 모심기하러 달려갔던 엄마는 한나절 만에 돌아왔다. 동생을 옆구리에 끼고 젖을 물렸다. 한 손으로는 밥솥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감잣국을 끓이고, 고추, 부추를 넣은 장떡을 밥솥에 쪘다. 입으로는 민요를 불렀다. “이 산 저 산 타는 데는 연기가 퐁퐁 나고 이내 속이 타는 데는 연기도 안 난다….” 일꾼들의 점심을 담은 광주리 밑에 수건을 둥글게 말아 똬리를 틀어 머리에 받치고 밥 광주리를 얹었다. 허기진 사람들이 기다리는 들로 달려갔다. 흔들거려도 곡예사처럼 머리에 인 밥 광주리는 떨어지지 않았다. 한 손에는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잰걸음으로 뛰었다.

다섯 살이 된 나는 앙상한 몸으로 동생하고 놀았다. 일 욕심이 많은 엄마는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도 돌아오지 않았다. 동생은 젖이 먹고 싶어 운다. 솥뚜껑을 밀었다. 밀린 솥뚜껑 사이 부뚜막에 올라앉아 보리밥을 한 주걱 퍼서 물에 말았다. 동생 입을 벌리고 한 숟가락을 밀어 넣었다. 퉤, 뱉어버린다. 황소고집이 나와 때를  썼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동생은 젖이 먹고 싶어 칭얼거렸다. 둘이서 손을 잡고 엄마 마중을 나갔다. 비는 계속 왔다. 머리에 대바구니를 덮어쓰고 밀집 우장을 걸쳐도 옷이 다 젖었다. 앞 도랑물이 점점 불어났다. 망설이다가 조심조심 강물로 들어섰다. 무릎까지 차올랐다. 뒷걸음치며 동생의 팔을 끌어당겼다. 콸콸 황토물이 밀려왔다. 둑 난간에 서 있는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물 밖으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 급물살이 동생을 둘둘 말아 물속으로 끌고 갔다. 저만치서 고함이 들렸다. 

엄마였다. “동생은?” 그제서야 나는 손가락을 강물 속으로 가리켰다. 엄마가 허겁지겁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조금 후 동생을 젖은 빨래처럼 안고 올라왔다. 땅바닥에 눕혀 놓고 엄마 입이 동생 코로 숨을 불어넣었다. 반응이 없자 발목을 쳐들고 엉덩이를 탁탁 쳤다. 물을 울컥울컥 게우고 울었다. “아이고, 내 새끼 이제 살았다.” 나는 떨면서 죄인처럼 나무 밑에 숨어서 고개만 내밀었다. 엄마는 동생에게 젖을 물려놓고 나를 노려보며 돌멩이를 던졌다. 탁, 발목에 박혔다. “야, 비 오는데 왜, 나왔어?” 엄마의 날카로운 말이 가슴 깊이 꽂혔다. 

“네 동생이 물에 떠내려갔으면 어쩔 뻔했니.” 이따 집에 가서 보자며 으름장을 놓았다. 엄마의 그 말이 더 두려웠다. 집으로 오면서 고무신이 미끄덩거렸다. 걸음을 멈추었다. 신발을 벗어보니 빨간 피가 고였다. 조금 전 돌에 찍힌 자리에서 피가 흘렀다. 정신이 없어 피가 나는 줄도 아픈 줄도 몰랐다. 너는 저기 다리 밑에서 주워 왔으니 엄마를 찾아가라고 했다. 하늘이 노랗게 설움이 북받쳤다. 지금도 그날의 물길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어둑해지자 다리 밑으로 갔다. 엄마는커녕 아무도 없었다. 큰 소리로 “으앙” 울었다. 개구리도 따라서 개골개골 합창을 했다. 모기들이 팔다리에 달라붙었다. 나뭇가지를 꺾어 쫓아 보아도 앵앵거렸다. 치마를 머리까지 홀랑 뒤집어썼다. 꿈결인지 아버지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둑 위로 올라왔다. 집에 들어가니 엄마가 동생을 업고 소죽을 끓이고 있었다. 훌쩍훌쩍 울면서 사랑채로 들어갔다. 그곳이 유일한 내 안식처였다. 

“빌어먹을 애물단지야.” 다시 호통을 쳤다. 소죽 끓이던 부지깽이를 들고 문을 벌떡 열었다. 그날부터 마음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엄마에 대한 분노가 서서히 분출했다. 청개구리가 되었다. 싫어하는 말과 일만 골라 했다. 반항과 방황으로 집안을 들쑤셔 놓기를 반복했다. 나 때문일까? 엄마가 심장병에 걸렸다. 백약이 무효였다. 딸자식이 애간장을 태운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세월은 흘렀고 혼기가 찼다. 지인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결혼을 결심하니 펄펄 뛰었다. 불교 집안에서 예수쟁이는 절대 안 된다는 거였다.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했지만 평탄치는 않았다. 오래 사귀지 않아 서로 문화의 차이로 남편과 갈등의 골이 깊어갔다.

‘아, 이렇게 살아야 하나.’ 아옹다옹할 적마다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식들이 태어나고 키우면서 철이 들어갔다. 살아 보니 삶이 녹록하지는 않았다. 자식은 부모가 되어 봐야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제야 엄마에 대한 사랑이 가슴이 먹먹하도록 사무쳤다. 지난날 철부지로 반항했던 시절이 미안했다. 엄마는 다락논 몇 뙈기를 경작하고 밤낮 무명, 삼베, 길쌈을 했다. 자식들 입에 밥을 넣어 주기 위해 허기진 배를 허리띠로 졸라매었맸을 것이다. 

85세 엄마가 치매에 걸렸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처방한 약으로는 차도가 없었다. 집안의 대들보라고 오빠들은 가문을 빛내기 위해 공부를 많이 시켰다. 돈과 사랑을 쏟아부은 만큼 엇나갔다. 공부를 많이 해서 출세의 길을 달렸건만 불효자가 되었다. 그렇게 기대했던 오빠들은 외국으로 이민을 떠난 후 자주 만날 수 없었다. 짝사랑에 빠진 엄마는 동생이 오랫동안 모시고 살았다. 

평생 불교 신자였던 엄마가 천주교회에서 영세를 받았다. 성당에 앉아서 염불을 외우시는 것을 볼 때마다 내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엄마에게 아들딸 차별대우로 상처받았던 마음을 회개했다. 모녀간에 앙금을 걷어내고 살 수 있어 든든했다. ‘산중에 범이 제 아무리 무섭다 해도 자기 새끼는 안 잡아먹는다.’는 속담처럼 모정은 세월이 갈수록 돈독해졌다. 

치매는 자꾸만 과거로 향했다. 현재의 기억은 삭제되었다. 자식의 얼굴과 목소리도 알아보지 못하는 무서운 병이었다. 아침만 되면 소를 먹일 풀을 베러 간다며 집 밖을 나가 길을 잃었다. 파출소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빨리 와서 할머님을 모시고 가세요.” 나는 전화가 올 때마다 수없이 달려야 했다. 서울 생활하는 동안 엄마는 매일 소죽을 끓였다. 옷가지와 수건을 소여물이라고 말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솥에 넣었다. 어느 날 밤 이상한 느낌에 잠자다가 일어났다. 남편 와이셔츠를 가스 불에 올려 바짝 태웠다. 불이 날 뻔했다. 나를 낳아 키운 엄마였다. 딸도 알아보지 못하고 옛날 그 시절에 멈춰 기억 속의 고향에 살고 있었다. 머리에 누런 비녀를 꽂고 입으로는 자식들 이름을 불렀다. 송아지를 낳으면 큰애 등록금, 작은 애 교복과 신발을 산다는 말을 염불처럼 외웠다. 

엄마는 돌아가신 후에도 자식들 곁을 떠나지 못하고 맴돌았다. 꿈속에서 만난 엄마는 소죽 끓이는 천국에서 나를 향해 웃었다.

(전국우암백일장 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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