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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늬 원피스

by 최점순



“어음을 막지 못하면 회사가 부도납니다.”


다급한 셋째 시숙의 목소리였다. 장미 향기가 펄펄 날리던 날, 파독 광부로 갔던 시숙이 귀국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의 말만 믿고 직물공장을 인수했다. 한동안 화사 운영이 원활해서 돈 반석에 앉게 생겼다. 하지만 철석같이 믿었던 직원이 돈을 모두 챙겨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나는 형제의 발등에 떨어진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각오로 은행에 집을 담보로 잡히고 돈을 빌려 보냈지만, 단 솥에 물 붓기였다.


그 후 빚을 모두 떠안고 갚아야 했다. 그날의 충격을 가슴에 묻고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시간을 과거로 돌리면 파독 광부로 갔던 시숙이 일 년에 한 번씩 휴가를 나왔다. 우리 집은 김포공항이 가까워 며칠씩 묵어가곤 했다. 초등생이던 딸과 아들이 큰아버지의 손을 잡고 놀이공원과 남대문시장, 신세계백화점으로 아이쇼핑을 다녔다. 시숙이 아동복 전시대 진열장에 걸린 옷을 주문한 후 조카들에게 입혀주었다.


시숙의 눈에 비친 나의 행색이 초라했을까. 제수씨의 옷도 사주고 싶다는 듯 진열 장옷을 쳐다보았다. 눈치 빠른 직원이 재빠르게 줄자를 들고 옆으로 다가오더니 가슴둘레와 허리둘레를 쟀다. 사모님의 체형에 맞춤형이라며 쇼윈도에 걸린 꽃무늬 원피스를 입혀주었다. 의복이 날개라는 말처럼 세련된 디자인과 예쁜 색상이 내 몸매를 빛나게 해주었다. 졸지에 백화점 모델이 된 듯 매장을 사뿐사뿐 걸어 다녔다.


옆에서 지켜보던 시숙이 웃으며 옷값을 지불했다. 건너편에 진열된 빨간 구두와 명품 핸드백도 사 주었다. 결혼 후 남편에게도 받지 못한 특별한 선물이었다. 동화 속의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 이런 것일까. 우리는 옷 가방 몇 개를 백화점에 맡겨놓고 남산에 올랐다.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식당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점심을 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문득 시집살이할 적 시숙과 함께 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형제들이 한 지붕 아래 살았다. 당시 광부의 한 달 봉급이 판검사나 장관보다 더 많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전국에서 취직하려는 젊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탄광에서 석탄을 캐내는 일이 무척 힘들었다. 바늘구멍처럼 좁은 취업의 문을 통과해도 오래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유럽의 부강한 나라 중에 서독 정부에서만 차관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광부와 간호사를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시숙은 월남전에 파병되었다가 구사일생 살아왔다. 그런데도 선착순으로 파독 광부 모집에 접수했고, 서울 본사에 면접하러 갔다. 셋째 시숙은 전기기사 자격증이 있었으므로 취직이 되어 현지로 떠났다. 땅속에서 무연탄을 캐내는 일과 언어 장벽으로 소통까지 막혔다. 하지만 감독의 손짓, 발짓을 용케도 알아들었다. 서독 정부로부터 가족들의 비자 발급해 주었다. 그래서 동서와 두 조카도 그곳에 정착할 수 있었다.


남편은 새벽에 출근을 한 후 아이들도 등교시켰다. 서독으로 떠나는 셋째 시숙을 김포공항으로 배웅을 나갔다. 어렵게 사는 동생네의 형편을 알아차리고 걸음이 안 떨어진 것일까? 독일 근로자는 가족 수가 많을수록 수당이 올라간다고 했다. 조카들이 성장하면 독일대학에서 공부를 시켜 주겠다며 나의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그때 달동네에 살았는데 우리 딸과 아들에게는 이보다 도 좋은 선물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때부터 눈만 감으면, 우리 딸과 아들이 독일로 유학을 떠나는 장면이 어른거렸다. 뜬금없는 시숙의 제안이지만 무척 고마웠다. 온갖 어려움을 견디며 살아온 보람이 있는 듯 왠지 모를 힘이 솟아났다. 공항에서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멀리서 희망이 손짓하듯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발길이 가벼웠다. 그러나 현실은 한국이나, 독일이나 돈 벌기는 죽을 모퉁이라는 말이 빈말은 아닐 것이다.


시숙은 탄광 막장에서 일을 했다. 피땀 흘리며 뼈를, 깎는 아픔을 감수하면서 십 년 만에 꿈을 이루고 귀국했다. 하지만 한국 실정을 전혀 모르면서 사업을 시작했다가 부도가 났다. 나는 어려운 형편에도 빚을 떠안고 십 년간 적금을 들어서 조금씩 갚아나갔다. 경제적으로 힘들 때마다 시숙이 사준 꽃무늬 원피스와 빨간 구두를 떠올렸다. 그날의 행복한 기억만 간직하고 참고 견디며 여기까지 왔다.


오월 명동거리를 걷는다. 유리창 너머 쇼윈도에 걸린 꽃무늬 원피를 보는 순간 마음이 소녀처럼 설렌다. 셋째 시숙은 오랜 세월 시행착오를 겪다가 다시 사업을 일으켜 세웠다. 이제 가족이나 형제들에게 작은 나눔이라도 실천하며 살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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