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갈 수 없어 셀프 인테리어를 하다 문득 떠오른 것들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몇 해 전 새로운 거처를 알아보면서 당분간 이사는 가지 않겠다 다짐했다.
작은 캐리어 하나로 홀가분히 떠날 수 있었던 처음과 달리 하루가 다르게 불어난 짐은 싸고 푸는 데만 한 세월이 걸렸다. 많은 사람들의 손을 빌린 뒤에야 비로소 이사를 마칠 수 있었고 이후 나는 최대한 있을 수 있을 때까지, 그러니까 집주인 아저씨가 나가라고 하기 전까지는 버티자는 마음으로 이 곳에 터를 잡았다.
“저 지금 바로 계약할게요..!”
처음 이 집에 왔을 때부터 이 곳은 낡아 있었다. 에메랄드 녹색으로 포인트 된 문과 싱크대, 초록 칠판이 떠오르는 때 묻은 창틀과 몰딩에 이르기까지 80~90년대 냄새가 물씬 풍기는 색감의 인테리어, 벽 한편을 가득 채운 다소 공격적인 꽃무늬의 벽지와 펄이 잔뜩 뿌려진 우글우글 일어난 장판은 한 층 더 나의 정신을 사납게 했다. 그럼에도 나는 단번에 이 집에서 살겠노라 결정했다.
주요한 이유는 저렴한 가격 때문이었다.
(사실 4평 남짓의 옥탑방에 살았던 나에게 어떤 곳도 최소한 이전보다는 더 나은 선택지처럼 보였지만)
대단하게 전셋집에 돈을 들일 여유는 없었지만, 최소한 도배와 장판은 해야 했다. 도배 장판으로 목돈이 나간 탓에 그 외의 것들은 몸으로, 시간으로 때웠다. 돈을 들이면 편한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버틸 만큼 버티자는 마음으로 고른 집이지만 한 편으로는 언제 어떻게 떠나게 될지 모르는, 다음 집을 위한 중간 스테이지쯤이었기 때문에. 언제고 떠날지 모를 공간에 들이는 돈은 유독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큰 고민 없이 나는 그런 것들을 포기했다.
전에 살던 사람이 사용하던 살림살이 대부분을 헐값에 인수해 쓸고 닦고 페인트 칠을 해가며 새 숨을 불어넣었다. 집도 가구도 참 손이 많이 가는 녀석들이었다. 거의 심폐소생술에 가까웠던 인고의 시간 끝에 살만한 수준으로 변한 이곳에 이윽고 나는 정을 붙일 수 있었다.
몇 년을 살다 떠날지 몰라 3년 약정이 필수라기에 인터넷 신청도 못 한 상태로 살았는데, 시간은 어이없는 수준으로 빨리 흘렀다. 그렇게 올 해로 이 집에서 4번째 겨울을 맞이한 것이다.
아 이사 가고 싶다 -
몇 해 동안은 큰 불만이 없었다. 아니, 외면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어디까지나 살만한 공간을 목적으로 했으니 부족한 부분은 못 본체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4년의 시간 동안 켜켜이 쌓여온 불편한 마음들은 더 이상 지나칠 수 없을 만큼 커져버렸다.
창을 통해 새어 들어온 빗물이 남긴 자취와 에어컨 호스를 타고 내려온 물기를 따라 자리한 곰팡이, 내가 남긴 불식 간의 잔재들이 빚어낸, 집안 곳곳에 스민 언제 생긴건지 모를 얼룩과 자국들이 그랬다. 함께 살기로 결정했던(이 전 주인에게 인수받은)그러나 어느 것 하나 나 스스로 고르고 선택한 것과는 거리가 먼 가구들도 한몫했다.
하지만 당장 이사를 갈 수 있는 상황이 못됐다. 계약 기간도 남아있는 데다 코로나까지 덮쳐 이사라는 큰 결정을 하기에는 많은 부분 망설여졌다. 못해도 1년은 더 살아야 할 것 같았다. 떠나고 싶은 마음이 한 번 생기자 신경 쓰이는 부분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4년 동안 어떻게 참고 산 거지?
그래, 이사를 못 가면 집을 바꾸자.
하루를 더 살더라도 이곳을 재정비해야 내가 더 행복할 것 같았다. 버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화장대, 선반, 책꽂이, 옷, 커튼, 침대 시트, 의자.. 마음에 안 들지만 참고 살았던 대부분의 것들을 버렸다. 몇몇 버리지 못한 고가의 가전이나 교체할 수 없는 더러워진 벽지, 장판은 패브릭, 포스터, 러그를 활용해 눈에 띄지 않게 가렸다. 조리 공간의 곰팡이 낀 타일 위로 네모난 격자 디자인의 접착 시트를 붙이고 얼룩진 침대 벽면에 손바느질 한 하얀 리넨 천을 걸어두는 식이다.
난생처음으로 새하얀 호텔식 침구를 샀다. 그동안은 늘 회색 아니면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색이었다. 그나마 때가 덜 탈것 같다는 이유로, 오래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유로, 기분이 좋은 것보다는 늘 실용적인 것에만 눈을 두었다.
마음에 드는 컬러와 자재로 제법 만듦새 있게 제작된 가구들을 구매했다. 마음에 쏙 들었다. 원래 같았으면 절대 사지 않았을 가격의 제품이었다. 조약돌 모양의 곡선 거울과 무드 조명, 주방도구와 식기, 인테리어 소품들까지 많은 물건들을 구매했다. 버려진 만큼의 새로운 물건들이 하나 둘 빈 공간을 채워가며 점차 나의 마음에도 평온이 찾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때 알게 되었다. 집을 돌보는 것이 나를 돌보는 것임을.
다음에, 나중에, 더 좋은 걸로 -
'다음에', '나중에'를 주문처럼 뇌며 나 자신을 설득해왔다. 그렇게 잘 살아낸 것이 스스로 대견하면서도 어쩐지 나를 방치해온 것은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행복은 내일로 미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얼마 전 집에 돌아오는 길, 꽃집에 들러 보라색 스토크를 사 왔다. 며칠 보지도 못하고 시들어버리는 꽃은 나에게 사치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꽃을 고르고 화병에 꽂아 집안 곳곳에 놓아두는 모든 과정은 그 자체로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었다. 내가 고른 꽃을 봐줄 손님은 바로 나, 내가 가장 대접해줘야 할 '나'에게 주는 선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였더라 자기 자신에게 선물을 하기 시작하면 어른이 된 거라는 말을 했던 사람은, 그 말을 이런 의미로 사용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의 나의 해석에 따르면 이렇다.
'나'라는 존재의 귀함을 알고 보듬고 귀 기울여 주는 것, 그것이 자신에게 주는 선물에 담긴 의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