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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스 Dec 16. 2020

29살의 간장게장

기절하는 간장게장 레시피

'처형, 저거 맛있겠죠?'

6시 내고향 재방송을 함께 보던 제부가 내게 한 말이었다.

서해 어디매 쯤 갓 잡아올린 꽃게로 간장게장을 만드는 장면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라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동생과 부모님은 약속이 있어 외출했던 것 같다.

친정에 모여 저녁을 먹기로 한 날이라 제부는 먼저 처가에 와 동생을 기다리며 할 일이 딱히 없던 나와 티비나 보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짧게 사연을 말하자면, 동생과 제부는  나보다 5년 먼저 결혼 한 커플이다. 둘 다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속도위반이란 오해를 받았지만, 그저 둘이 사랑했을 뿐 결혼의 다른 목적이나 이유는 없었다. 동생부터 제부, 나 줄을 서면 1살씩 터울이라 친구처럼 어울려 다니는 일도 많았기 때문에 나와 제부는 꽤 친한 편이었다.


오늘 아침 신문 사이 마트전단지에서 본 활꽃게 광고가 떠올랐다. 활꽃게가 얼마랬더라 신문을 펼쳐들며

'갈래?'

'갈까요?'


제부는 시동을 걸고 마트로 나를 데려갔다. 가는 도중 나는 모바일로 간장게장 레시피를 검색했다. 사실 집에서 마트까지 걸어서 15분인데, 둘 다 뭐에 홀렸는지 주차를 하자마자 매장으로 뛰었다.


꽃게가 파는 매대에 아주머니들이 바글바글했다.

이게 좋니, 저건 암게니...

그날까지도 전기밥솥으로 밥 한 번 해 본 적 없는 내가 꽃게는 먹을 줄만 알았지 고를 줄은 알았겠냐고.

어물전 아저씨한테 두손을 공손히 모으고 골라달라고 부탁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단 말은 이럴 때 하는거겠지.


아저씨는 배딱지가 세모난 놈이 숫게, 둥근 놈이 암게, 이런 놈은 커도 살이 없어! 큰소리로 가르쳐주시며 꽃게를 골라주셨다. 그래, 물어보길 잘 했다며 제부와 나는 게장에 필요한 간장, 구기자, 사과, 배, 생강 등등의 재료들도 구입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간~장~게~장이라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동생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언니가 살아있는 저 게를 어떻게 손질할꺼냐부터, 제부한테도 너희들을 생각이 있냐없냐 등등... 실컷 쏟아붓더니 자기 모르는 일이라고 한 잠 자겠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동생의 눈치를 보며 제부도 따라 들어갔는데 곧 코고는 소리가 온 집에 퍼졌다.




어쩔 수 없다.

간장게장 불을 질러놓고는 나 몰라라 코를 고는 제부가 미웠지만, 엄마가 이 광경을 보기 전에 어떻게든 해치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나 혼자 간장게장 만들기를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본 순서대로 간장물부터 끓였다.

게랑 설탕은 상극이래서, 감초, 구기자와 계절 과일 같은 단 맛을 낼 갖은 재료들을 잔뜩구입했다. 이게 다 얼마치냐...엄마의 곰솥을 꺼냈다. 간장과 재료들을 다 때려넣고 부르르 끓였다. 살짝 맛을 보니 달달한 것이 제법 괜찮다. 성공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살아 있는 꽃게! 꺼내려다 식겁했다. 어찌나 팔딱거리던지.

간장물은 끓여 식히면 끝이지만, 꽃게 손질은 어쩌란 말인가.


[활꽃게의 손질이 어려우면 냉동실에 넣어 1시간 정도 기절시킨 뒤 세척하세요.]

친절한 네이버의 안내에 따라 3키로의 꽃게를 냉동실로 밀어넣었다. 문 밖으로 팔딱거리는 아이들 소리가 들렸지만  1시간을 꽉 채워 마주한 아이들은 그대로 멈춰라~ 상태로 죽은 것만 같았다.

고무장갑을 끼고, 실해보이는 녀석 한 마리를 들어올렸다. 정말 기절했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가위로 녀석의 배를 강타했다.


'으악~~~~'

집게발을 팔딱이며 나를 바라보다 다시 기절하는 꽃게.

이 녀석아 내가 기절할 뻔 했잖아!

다시 깨어나기 전에 재빠르게 손질을 해야만 했다. 미안해 미안해가 절로 나왔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꽃게를 닦았다. 물이 닿으니 녀석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음은 그만두길 원했지만 세 마리째 꽃게를 손질할 때 이미 내 손은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손질한 게를 용기에 차곡차곡 담아 식힌 간장물을 붓고, 곱게 썬 향신채를 올리는 과정 쯤이야 꽃게 손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너무나 뿌듯했다. 밥도 한 번 해 본 적 없는 내가 이 고급진 간장게장을 만들었으니.


다 해냈다는 안도감에 잔뜩 긴장했던 어깨를 내리고 거실 바닥에 퍼져버렸다.

주방은 전쟁판이 되어 있었고, 간장 냄새가 가득한 집은  환기가 필요했지만 나에겐 오직 휴식이 간절할 뿐이었다.


이후 상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외출에서 돌아온 엄마는 주방꼴에 기가 막혀 하셨고, 3일을 참지 못하고 오픈한 간장게장은 너무 맛나서 가족들 모두 우리 게장집 차리자고 웃었던 정도...

이제 와서야 하는 말이지만 게장 한 번 만든다고 산 재료만 10만원이 훨씬 넘었던 것 같다. 10년차 주부가 되고 보니 그 돈 썼는데 맛 없으면 바보 아니였나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첫요리, 간장게장은 그렇게 맛있었다.


우리집에는 세 명의 게장 킬러가 산다.

남편은 바다에서 난 먹거리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데 아이들은 날 닮아 그런지 꽃게 살을 쭉쭉 짜서 밥에 슥슥 비벼주면 금새 한 그릇을 다 먹고 리필을 외친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해마다 꽃게철이면 게장을 만든다. 실한 게를 5키로 쯤 사서 절반은 쪄서 먹고, 나머지는 게장을 만들면 한 달은 반찬 걱정이 없다.


올해도 아이들이 환장하는 간장게장을 만들며 나의 첫 간장게장을 떠올린다.


13년 전, 나랑 눈 마주쳤던 그 꽃게의 명복을 빌며.

내년에 만나자, 간장게장.



Bonus. 기절하는 간장게장 레시피


1. 1시간 냉동시킨 꽃게는 살이 없는 발 부분을 자르고, 깨끗이 닦아 용기에 배가 위로 올라오게 담는다.


2. 꽃게2키로 기준, 물1리터/간장, 배즙, 양파즙 각 300미리/소주100미리/마늘, 사과, 생강, 마른고추, 감초 등의 향신채를 넣고 한소끔 끓인다.


3. 2의 간장물이 미지근하게 식으면 게 위에 붓고 썰어둔 향신채를 올려 3일간 냉장보관했다 먹는다.


+위 레시피는 꽃게를 한 마리 다 먹어도 입술이 따갑지 않은 저염간장게장 레시피이다. 보통맛으로 먹고 싶다면 간장을 반 컵 정도 추가해서 끓인다.

+3일간 숙성 후, 오래두고 먹을거라면 게를 건져내고 간장물을 한 번 더 끓여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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