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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스 Mar 11. 2022

80의 피자

5분반죽의 맛난 피자도우



고향이 멀어서라는 핑계도 무색하게, 가족들과 떨어져 산 시간도 이젠 10년이다.

나도 내 가정을 꾸려야하다보니, 400키로 달려 6시간이란 공식에서 오던 외로움도 이젠 느낄 사이가 없다.


하지만 유난히 사람을 좋아하는 나의 아이들은 늘 부산의 가족들을 그리워한다.

좀 크면 덜 하려니 했는데, 우습게도 좀 크니 더 하달까.


거리도 멀고, 이젠 양가부모님도 연세가 있으시니 우리가 내려가지 않으면 얼굴 뵙기가 힘들다.

그래도 피치 못 할 사정이 생기면 기한을 정해 1년에 한 두번 다니러 오시긴 한다. 그 중 조금 더 젊은 친정부모님이 한 번이라도 더 오시고, 시부모님은 뭣하러 며느리 불편하게 늙은이들이 다녀가냐며 늘 방문을 미루신다.



작정해서 부탁과 사정을 해서 시부모님을 모시는 날.

나는 하루라도 더 붙들어 보려 온갖 수를 만들어본다. 일단 잠자리를 바꾸면 변비로 고생하시는 여든셋의 아버님 몫으로, 유산균과 요구르트, 양배추와 푸룬주스를 냉장고 가득 채운다. 하루 쯤 화장실 못 가도 죽지 않는다는 어머님과 달리 하루만 화장실을 못 가셔도 어머님을 들들 볶는 분이시라 '그 하루'가 얼마나 중요한지 며느리 10년차는 알고 있지. 그리고 집에선 맛난 커피 드시기 힘드시다는 어머님을 위해, 정말 맛있는 원두를 종류별로 구비한다. 물론 식단을 세워 냉장고 가득 장을 보는 것은 아주 기본 옵션이다.


그렇게 힘든 발걸음인데도 3,4일이면 가겠다는 의사를 밝히신다.

3,4일 계시다 가실 거면 왜 오셨냐며 일주일은 계시라고, 나 같은 며느리가 어딨냐며 애교 섞인 으름장을 놓고서야 간신히 한숨을 돌린다.  하지만, 여지없이 7일째의 밤이 내리면, 10년 째 이어온 레파토리를 읊으신다. 아버지가 집에 가자고 성화야. 기차표도 빨리 끊으래, 의 10년 째 반복하시는 그것^^


그치만 나 역시 10년 동안의 내공이 생겼다.

서로 깜빡 죽는 조부모와 손자, 그 손자를 다음 타자로 내세운다. 할아버지~ 딱 세 밤만 더 주무시고 가세요.


아이들의 마음은 진심이다.

등하굣길 따숩게 맞아주는 할아버지의 인사와 아침 저녁 잠자리와 먹거리를 살펴주며 그 많은 조잘거림을 다 들어주는 할머니의 웃음. 처음 이 곳으로 오고 양가부모님들이 차례로 다녀가셨을 때, 친정엄마는 물론 시어머니 가시는 발걸음에도 나는 펑펑 울었다. 피붙이며 일면식있는 사람 조차도 없는 낯선 땅에 갓 태어나 버려지는 아기가 된 것 같은 느낌. 울음을 삼키고 또 삼키는 나를 당시 세 살이었던 큰 아이가 달랬다. 아이들은 울진 않았지만 짧은 만남 후면, 사나흘 씩 할머니 타령을 하는 그런 날들의 반복이었다.



이번엔 아버님은 죽어도 가시겠다고 선언하셨다. 이때 큰 아이가 묘수를 던진다.

할아버지, 우리 엄마 피자 진짜 잘 만드는데 그럼 피자만 드시고 가세요~


아, 맞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여든 셋, 우리 아버님의 소울푸드는 피자였잖아.


결혼하고 두 번째 시댁방문, 당당하게 피자를 사서 가자는 남편의 제안에 '이 사람이 제정신이야. 난 며느리라고 그리고 올해 일흔이신 아버님이 무슨 피자를 드셔' 라며 만류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피자를 사서 시댁 문턱을 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거리 살림을 나고서는 종종 피자를 배달시켜 드리기도 했다.


아버님은 피자매니아셨다. 가장 큰 사이즈의 피@헛 피자를 앉은 자리에서 반을 드실 수 있으시다. 사실 처음에 깜짝 놀랐다. 피자를 드시는 것 자체도 놀라웠지만 그렇게 큰 피자를 젊은이처럼 뚝딱뚝뚝 헤치우시니. 이제는 연세가 지긋하셔서 예전처럼 밀가루가 주재료인 피자를 즐겨드시진 않으신다. 하지만 피자를 사랑하는 그 마음은 여전하시지.


'허허, 며느리가 또 피자를 구워준다니 안 먹을 순 없지'

못 이기는 척 그러자 하셨지만, 여든셋의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반달모양 눈가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팔순의 몸으로 하나 밖에 없는 아들집에, 기차만 2시간 30분을 타고 오셨다. 본인 목숨보다 소중하다는 손자 녀석도 둘이나 있는데... 그리 쉽게 발걸음이 떨어질리 없지.


결혼 생활 10년, 둘째 몸조리 한답시고 시댁에 3개월을 드러눕고, 지금 아니면 못 간다며 애 둘 맡기고 유럽을 한 달 씩 다녀오는 눈치없는 며느리가 나였다. 이런 나를 '공주같은 막내딸'이 생겼다고 말씀하시는 아버님과 너는 앉아 있거라가 입에 붙은 어머님. 그런 시부모님께 나는 그저 늘 병든 닭 같은 아픈 손가락이었다. 효부가 아니라 애물단지였다. 그래도 며느리도 자식이라며 당신들 욕심은 넣어두시고 자주도 아니 오시고, 오래도 아니 계신 그 깊은 마음을 나도 알고 있다. 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에, 나는 피자라도 구울 수 밖에.


아버님, 제가 피자 진짜 많이 구워드릴게요.

못난 며느리가 건강하게 효도 하는 그날까지 부디 건강하게 오래 사십시다.




여든의 어르신도 좋아하는 담백한 5분 반죽 피자


1. 강력분 3컵 + 물 3/2컵 + 설탕 1큰술 + 소금 1작은술 + 인스턴트드라이이스트 1작은술을 숟가락으로 섞어 대충 한 덩이로 만든다.

2. 1에 올리브유 1큰술을 넣고 한 덩이로 만든 다음 5분 신나게 반죽한다.

3. 반죽을 볼에 넣고, 젖은 면보를 덮은 다음 반죽이 두 배가 될때까지 따뜻한 곳에서 발효시키면 피자 도우 완성.

4. 필요한 양만큼 원하는 피자 모양으로 성형하고, 220도로 예열한 오븐에 5분 굽는다.

5. 초벌한 도우에 소스와 토핑을 올려 220도에서 10분 더 구우면 홈메이드 피자 완성!


+5분의 손반죽 없이, 반죽의 네 귀퉁이를 접고 15분을 발효시키는 것을 4번 반복하는 방법으로 무반죽 방법으로 도우를 만들 수도 있다.

+남은 반죽은 꼼꼼하게 밀봉해서 냉장고에 7일 정도 보관 가능, 굽기 전에 차가운 기운이 가시도록 실온에서 충분히 식힐 것.

+초벌없이 가정용 오븐으로 피자를 굽게되면 살짝 눅눅한 도우로 피자가 완성되거나 도우가 덜 익을 수도 있다.

+피자의 소스로 토마토 소스도 좋지만, 디종머스타드를 살짝 펴 바르면 약간 시큼한 맛이 치즈의 고소함과 만나 제법 근사한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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