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한달 뒤 자살한다 2회 (D-17)
도박, 섹스중독자의 도피여행
지금 필리핀의 이름 모를 섬에 와 있다
지난 13일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카톡과 연락처는 모두 지운채 필리핀 유심으로 인터넷 정보만 찾아보고, 숙소는 현금으로 결제한다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카지노에 가고싶다는 강한 충동이 들었지만 나와의 마지막 약속은 지키고 싶어 버텨냈다
도피여행이 즐거울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지금 하루하루 보내는 것이 참 괴롭다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도망쳐 왔지만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다
필리핀 물가가 예전보다 많이 올랐다
이곳은 필리핀을 수없이 와 봤던 나도 처음 온 곳인만큼 숙소도 별로 없고, 무엇보다 한국관광객이 거의 없는 듯해 좋다
여기서 나는 과거의 여행과는 다르게 철저히 혼자이다
가끔씩 이 곳 브런치에 글을 쓰는 순간이 내가 한글을 사용하는 순간이다
이곳에서 내가 보내는 하루 하루는 무척이나 단조롭고 심심하다
어차피 별로 남지 않은 시간 예전처럼 좋은 몸을 가지거나 과시하기 위한 마라톤 연습이 아닌 그냥 걷고 가끔 땀 흘리고, 수영하고 그렇게 지낸다
이 곳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일 없이 멀찌기서 그들의 삶을 바라본다
내가 한국에 있었으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렇도 도피여행을 떠난 나를 부러워할까? 아니면 도망치지 않은 나를 자랑스러워하며 하루하루 이겨내고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생각보다 한 달이란 시간은 길고 생각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신기한 것이 하루 하루는 빨리 가는 것 같은데 일주일은 긴 느낌이다
이렇게 떠난 도피 여행의 유일한 장점은 시간의 흔적과 흐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닐까?
지금은 식욕, 수면욕도 별로 없는 상태이다.
원래는 매일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려 했는데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이제부터라도 글을 자주 써 보려 한다
글쓰기를 좋아하던 편이었는데 항상 시간에 쫓겨서 쓸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안 쓴 것 같다
이제 시간이 남아도니 글이나 실컷 써보면서 남은 시간 나를 찬찬히 탐구해 볼 생각이다
이곳을 언제 떠날지는 모른다
이 곳 숙소를 일주일 단위로 연장하는데 일단 15일일날 결정할 생각이다
다음 행선지는 어디인지 중요하지 않다
이곳이 익숙해지기 전에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한다
왜 떠나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래야 한다
일단 갈 때까지 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