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키우다 보니 엄마의 언어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나는 말을 예쁘게 하는 편이 아니지만, 사는데 큰 불편은 없었다.
적어도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말이다.
말을 예쁘게 한다는 게 애교스럽게 말한다거나 아부성 발언을 잘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예를 들면, 친구와 대화 중인데 아이가 말을 거는 경우
나는 "엄마 지금 이모랑 얘기 중이잖아. 이따가 얘기해."라고 명령조로 얘기하는데 반해
내 친구는 "엄마가 지금 이모랑 재미있는 얘기 중인데, 급하지 않으면 이따가 대화해도 될까?"
뭐 이런 식이다.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 내 딸들은 많이 무안했을 것이다.
화가 난 것도 아니고, 훈육의 목표를 가지고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듣고자란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나의 아빠는 "자식은 잘 때 이뻐하는 거야."라는 이상한 철칙을 갖고 계셨기에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 듣고 자랐지만, 나를 믿어주고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불만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살았다.
엄마 또한 어려운 살림에 억척스레 살아서 예쁜 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같이 자란 동생이나,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동네 친구들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예쁜 말을 들은 바 없이 자랐으니 몰랐던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사는 데는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는 얘기다.
두 딸을 낳고 키우면서 그제야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말을 저렇게 할 수도 있구나.
나도 저렇게 말할 걸... 그럼 애들이 덜 민망했을 터인데.
남편한테도 이런 표현이나 말투는 쓰지 말걸 들으면서 자존심 상했겠다.
이런 생각들이 자주 들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가 손발이 오그라들 만큼 어색하고, 당최 입에서 말이 안 나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연습을 해보는 중이다.
다행히도 우리 가족들은 이런 말투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더 높이 쳐주고,
부지불식간에 센 말이 튀어나오면 고 1 큰딸이 입술로 내 입을 틀어막는다.
또 미운말 했구나를 인지할 수밖에 없도록 웃음으로 지적해주는 분위기라서 조금씩 고치고 있다.
젊은 사람도 그렇지만, 말을 예쁘게 하는 어르신들을 뵈면 정말 근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꼰대와 어른" - 작지만 큰 차이
오늘도 나는 말을 예쁘게 하는 어른이 되기 위해 어색한 연습을 계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