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몇 백개의 배구공을 받은 다음,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번 직원 체육 시간에 강당으로 나설 때에는 나름 비장한 마음이었다. 승리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어코 민폐는 끼치지 말자는 굳건한 마음을 가진 상태로. 그래도 피멍이 들도록 연습했던 200개의 공이 헛으로 돌아가지 않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내 배구 실력은 정말 단 한 세트 경기만에 탄로 나 버렸다. 떨어지는 공에 손을 댈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건 맞지만 민망하게도 받는 족족 다른 곳으로 튕겨져 나가 버렸다. 그 덕에 나는 또다시 우리 팀에서의 독보적인 패착이 되고야 말았다. 공을 못 받을 때면 2~3초간 적막함이 흐르기도 했는데 그 부끄러움은 역시 말로 표현할 수없었다.
역시나 몇 번의 연습만으로는 실력이 느는 게 아니구나하며 배구라는 커대한 벽에 가로막혀 다시 한 번 자신감을 잃고 있었다. 다음 세트가 되었다. 아주 가끔가다 운 좋게 한 번씩 받아지는 공들이 있었다. 그리고 어떤 감각으로 도대체 왜 잘 받아지는 건지는 전혀 모른 채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우리 팀 선생님께서 미소를 지으시며 내게 응원을 건넸다. "선생님! 나이스!" , "권샘, 많이 연습했나 보네". 그러고 나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감사합니다.."
방금 내가 한 건 배구에서 제일 기초적인 리시브였는데도, 선생님들이 보시기에 정말 기특해 보이셨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칭찬 한 마디에 어딘가 힘이 샘솓기 시작했다. 미소가 지어지고, 전보다 경기에 임하는 내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더 잘하고 싶어졌고 이기고 싶어졌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경기에 임하다 보니 벌써 시간이 1시간이 흘러 있었다. 물론 경기에서는 패하고는 말았지만 달라진 게 한 가지 있었다.배구 경기에 대한 내 마음가짐이었다. 어딘가 한결 가벼워지고조금 더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또 선생님들이 왜 직원체육을 배구를 좋아하시는지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동료가 해주는 작은 응원에는 아주 큰 힘이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건넸던 아주 작은 말 한마디는 여태 내가 배구를 향했던 증오를 씻겨 주었다. 그 말 한마디가 내 노력에 대한 아주 달콤한 보상과 같았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내가 이를 악물며 배구 연습을 하고, 경기에 임했던 이유도 그 칭찬 한 마디를 듣고 싶어서였다는 걸.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속담을 볼 때는 사실 칭찬의 본디의 장점보다는 부작용에 대해 더 생각해 왔다. 어떤 칭찬을 했을 때, 같이 있는 누군가에게는 비교가 될 수 있다는 맹점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칭찬을 잘 해주지 못했다. 원최 칭찬을 잘 안 하는 탓에, 어떤 미술 시간에 우리 반에서 미술적 재능이 제일 뛰어난 친구가 내게 찾아와 조용히 내게 말을 건넸다. "선생님, 선생님이 보시기에는 어떤 작품이 제일 멋진 거 같아요?". 조용한 그 공간에서 만큼은 네가 제일 멋지다고 해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만약 내가 그 친구의 작품에 대해 진심 어린 칭찬을 해줬다면 그 친구에게는 또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을까. 그러지 못했던 게 후회가 되었다.
동료(친구)가 팀 분위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비난이나 핍박보다는 응원을 해주는 동료가 많이 생긴다면 이렇게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가 될 수 있음에 신기했다. 이런 화기애애할 수 있는 분위기라면 행복하게 운동을 할 수 있을 텐데 하며 여태 겪었던 험악했던 배구 분위기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그저 직장인 동아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데 그들은 왜 그렇게 목숨을 걸었던 걸까.
그렇게 나는 이후에 배구에 더 흥미가 생겨 자발적으로 직장인 배구 동아리를 찾아 나섰다. 배구를 그렇게 싫어하던 나는 이제는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화목을 도모하고, 일의 능률을 올릴 수 있는 '직원 체육 동아리'의 의미를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 좋은 동료 선생님을 만났음에 다시 감사해졌고, 나 또한 좋은 동료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