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보통의 차별」을 읽고
'차별'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불편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상한 끌림도 있었다. 아마 '그래도 교사인데…'라는 설명하기 힘든 직업 속 고질병 때문일 수도 있고, 바르게 살고 싶어 하는 얄팍한 내 신념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마음으로 「가장 보통의 차별」이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가장 보통의'라는 문구가 교실 속 학생들에게 나름 무난하게 잘 대처해오고 있다는 내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보통의 차별조차 하지 않고 있을까 하고.
노키즈존(No Kids Zone)이라는 개념이 세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발견했다. '어른들도 쉴 공간이 필요하지.' '아이들 소란스러운 건 사실이잖아.' 성인 고객의 편안함을 중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말했던 게 생각났다. "그러면서 배우는 거야." 실패하고 낙담하는 학생을 향해, 수도 없이 강조하는 문장이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고, 백 번 보는 것보다 한 번 경험하는 것이 낫다는 뜻이다.
그러다 책을 읽다 문득 깨달았다. 노키즈존에서 아이들은 실패의 경험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아이들이 소란을 피우며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잘못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느끼며 공부해야 하는데, 우리 어른들이 어쩌면 그 기회 자체를 차단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른들의 안락을 위해 그들의 배움은 철저히 거부당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대중교통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본 적이 있는가. 거의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에는 100만 명이 넘는 지체 장애인이 대한민국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만, 실제로 우리는 그들을 잘 보지 못한다. 휠체어를 끄는 장애인이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때는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매시간 '저상 버스'가 오지 않기에 기다려야 하고, 그렇게 기다려 도착한 버스의 시설은 잘 작동하지 않아 그냥 보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지하철은 어떨까. 장애인이 승강장으로 이동할 때 돕기 위해 만들어진 엘리베이터는, 정작 장애인이 쉽게 이용할 수 없다. 휠체어에 앉은 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그들에게 배려해 주는 사람은 드물다.
국내 자폐성 장애인의 평균 수명이 23.8세라는 통계를 보았을 때, 숨이 막혔다. 평균 기대수명 100세 시대에, 장애인의 삶은 4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이것이 과연 그들의 '장애'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가 그들을 살 수 없게 만든 것일까.
예전에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양의 탈을 쓴 늑대 한 마리를 한 자신을 발견했다. 선하게 살고 모범이 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면서도, 차별을 했던 순간들이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관념적으로 써오던 단어들, 아무렇지 않게 했던 말과 행동이 사회의 누군가에게는 아주 큰 상처를 줄 수 있었다.
「가장 보통의 차별」을 읽으며 그 느낌이 다시 밀려왔다. 다만 이번에는 더 생생했다. 기자인 저자는 직접 목격하고 취재한 내용을 생동감 있게 들려주었다. 2025년 현시대에도,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수많은 차별이 존재한다. 여성, 어린이, 노인, 장애인, 노동자, 노숙인, 성소수자, 외국인, 난민, 그리고 채식주의자까지. 이렇게나 많은 사례들이 현재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게 맞나 싶지만,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사실은 그저 내가 이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교실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우리 모두 다르고, 그게 더 자연스러운 거야." 하지만 정작 나는 '다름'을 얼마나 인정하고 있었던가. 나도 모르게 선을 그었던 순간들, 무심코 내뱉었던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벽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산산이 부서진다'는 말이 있다. 완전히 깨져 흩어진다는 뜻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산산이 부서지는 경험. 그것이 독서가 주는 선물이 아닐까. 모진 세계가 산산조각 부서지고, 그 후에는 지금보다는 더 단단하고 아름다운 사회가 올 것이다. 부서진 조각들을 다시 맞추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섬세해질 것이고, 더 따뜻해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책을 읽는다. 그리고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말해야겠다.
"그러면서 배우는 거야."
나 자신에게도 같은 말을 건넨다. 부서지면서, 배우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