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작은 일로 베푸는 방법
외할머니께 문자메시지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드린 적이 있다. 당시 할머니는 그때까지만 해도 오래된 폴더폰을 쓰고 계셨다. 못하겠다고 손사래를 치시던 할머니와 나는 식탁에 마주 앉아,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함께 눌러보았다. 숫자 패드를 하나씩 눌러 한글을 만드는 과정은 느렸지만 포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결국 우리는 해냈고, 다음 날부터 할머니는 마치 자신이 해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으신 것처럼 내게 여러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하셨다.
할머니의 문자메시지가 울릴 때마다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물론 자랑스러웠고 뿌듯했지만, 어딘가 죄송하고 뭉클한 마음도 함께 들었다. 왜 진작 알려드리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할머니께 스마트폰으로 휴대폰을 바꿔드리고 나서부터 이상한 일이 잦아졌다. 가족들에게 잘못 전화 거는 일이 늘어났고, 받아도 말씀을 하시지 않거나 조금 걸다가 끊어버려 부재중 전화가 생기곤 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버튼이 저절로 눌러진다는 것이었다. 휴대폰을 바꿔드린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고장 난 건가 하고 아리송했다. 그리고 그때까지 나는 할머니가 보내는 신호를 알아채지 못했다.
며칠 전, 우연히 유튜브를 보다가 한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10분 안에 자녀에게 백만 원을 보내시오."라는 제목을 가진 영상이 자극적인 썸네일들 사이에서 묘하게 다르게 빛나고 있었다. 영상에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모바일 뱅킹을 사용해 본 적 없는 70대 아버님과 60대 어머님 두 분이 등장했다. 두 분에게는 미션이 주어졌다. 계좌를 개설하고, 자녀에게 백만 원을 송금하라는 것이었다. 아주 단수하게 보이는 이 미션들이 두 분에게는 꽤 험난한 여정이었다.
안경을 끼시고 손으로 찬찬히 화면 속 글자를 짚어가는 모습이 누군가를 연상하게 했다. 두 분은 홈 화면에서 5분 동안 애플리케이션을 찾으며 "못하겠어요"를 자꾸 외쳤다. 손가락은 떨렸고, 눈은 작은 글씨들을 좇느라 금세 지쳐 보였다. 하지만 제작진이 한 단계씩 천천히 알려드렸고, 두 분은 그제야 조금씩 따라가기 시작했다. 영상을 지켜보던 내 마음도 조마조마했다. 제발 꼭 성공했으면 하고. 왠지 이들이 성공해야 스마트폰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누군가에게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줄 수 있을 거 같았다. 두 분은 여러 번 화면을 들여다보고, 배운 것들을 떠올리며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과는? 성공. 그들은 송금 완료 화면을 보며 글썽이며 감사합니다를 말했다. 감사하다는 그 한마디가 이렇게 사람 마음을 울렁거리게 할 줄이야.
영상을 끝난 지 오래되었지만, 한참을 휴대폰 화면 앞에 앉아 있었다. 어르신께서 혼자서 해냈다는 감동도 있었지만, 미안함이 밀려왔다. 깊은 마음속 어딘가에 꽁꽁 숨겨두었던 죄책감이 영상을 통해 수면 위로 떠오른 것만 같았다. 그리고 할머니의 목소리가 겹쳐 들려왔다. 저절로 휴대폰이 눌러진다는 그 말이.
아, 그랬구나.
저절로 눌러진다는 할머니의 말은 고장을 알리는 신호가 아니라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였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할머니는 창피해서, 혹은 폐를 끼칠까 봐 직접 말씀하지 못하셨던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순간 패스트푸드점에서 키오스크를 사용하지 않고 바로 직원에게 가는 어르신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들을 보며 '그래도 좀 시도해 보시지' 하고 속으로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들에게 제대로 알려준 사람이 있었던가. 평생 익숙해졌을 아날로그 방식에서 몇십 년 만에 갑자기 바뀐 터치스크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준 이들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요즘엔 다 이렇게 쓴다'며 기기를 쥐어준 채로 말이다. 그들을 그저 새로운 세상에 내던져 놓고, 적응하지 못한다고 핀잔을 줬던 건 아닐까.
영상 속 댓글 중 하나가 기억에 오래 남았다. "성공까지 시간이 걸릴 뿐, 한 번, 두 번 하다 보면 충분히 하실 수 있을 거예요." 맞다. 어르신들도 할 수 있다. 충분한 시간과 인내, 그리고 곁에서 함께 천천히 눌러볼 누군가만 있다면.
다음 주, 할머니댁에 가기로 했다. 스마트폰을 사드리기만 했을 뿐, 어떻게 쓰는지 알려드리지 않았던 과거의 내가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저절로 눌러진다"라고 말씀하신 그날, 나는 "휴대폰이 고장 났나?" 하고 생각했다. 할머니의 휴대폰은 고장 난 게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 천천히 알려주길, 6년 전 그 겨울날 식탁에 마주 앉았던 것처럼 다시 한번 함께해 주길 기다리고 계셨을 뿐이었다.
우리가 매일같이 하는 아주 작은 일들로도 누군가에게 쉽게 베풀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천천히 옆에 앉아, 한 번 더 설명해 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들에게는 충분하다. 그것이 어쩌면, 새로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이들에게 우리가 건넬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손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