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유 없이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즐거움을 넘어 뿌듯하기도 하다. 왠지, 나의 좋은 행동으로 인한 산출물 같기 때문이다. 나를 좋아하는 이들은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며, 그들과 함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편안함을 준다. 또 가끔은 그런 순간들이 모여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반면 가끔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만나기도 한다. 그들은 말을 걸어도 짧게 대답하거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온도로 나를 대한다. 가끔은 이유를 알 수 없어 괴롭기만 하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하며 되짚어보지만, 그 답은 사실 알 수 없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건, 당연하게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치 정규분포 곡선처럼 말이다.
통계학에서 말하는 정규분포처럼, 인간관계도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고 한다. 사람들의 호감도 역시 중간 지점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조직 관리와 리더십 분야에서 흔히 거론되는 '20-60-20 법칙'이 있다. 이 법칙은 경영학에서 널리 알려진 파레토 법칙(80-20 법칙)에서 파생된 것인데, 집단 내 구성원의 태도나 반응을 설명할 때 주로 사용된다. 이 법칙은 정규분포를 따르는 집단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상태를 수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인간관계에 이를 적용해 보면 이렇다. 어떤 집단에 들어가든 대략 20%의 사람들은 당신을 좋아하고, 60%는 중립적이며, 20%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내 잘못과 관계없이 나를 싫어할 사람은 통계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생각해 보자.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 집단에서의 모든 사람들을 당신이 사랑하는가. 아마 아닐 것이다. 반면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싫어하는가. 그것 또한 아닐 것이다. 우리 또한 말투가 마음에 안 들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행동이 부담스러운 사람이 있을 수 있으며, 이유 없이 불편한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저 당신이 '20%'에 속했을 뿐일 수도 있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묘하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 그럴 수밖에 없구나.' '누군가 나를 싫어하는 건 내 잘못이 아닐 수도 있구나' 하고. 물론 직장 내 괴롭힘이나 명백한 차별이라면, 적극적으로 신고하고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냥 서로 맞지 않는 것뿐이다. 집단에서 20%가 우연히 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사랑받으려고 애쓰는 건 참 피곤한 일이다. 더 잘 보이려고 애쓰고, 친절하게 굴어도 그럴수록 지치는 법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건 결국 나를 잃어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관념처럼 쓰이는 말이지만, 나를 싫어하거나 무심한 사람들에게 굳이 애쓰며 사랑받을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에게 더 잘해주며 살아가는 게 더 의미 있을 거 같다. 그들의 호의와 사랑에 보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고 소중한 삶일 테다.
우리 모두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고, 미움받고 싶지 않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건 불가능하다. 통계가 그렇게 말하고, 현실이 그렇게 증명한다. 그러니 이제는 조금 가볍게 생각해 보자. 누군가 나를 싫어한다면, '아, 이 사람에게 나는 20%구나' 하고. 그리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돌려보자. 그들이야말로 내 삶의 진짜 의미니까.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존재한다. 반면 이유 없이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도 공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