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 1월이었기에 학우들에게 생일 축하를제대로 받은 적 없었다. '내 생일'을 떠올리자니 단지 엄마, 아빠, 동생이삼삼오오 작은 케이크 하나로, 초를 켜는 게전부였다. 속상했다.방학에 내 생일이 있었기에, 친한 친구들마저도생일을 종종 잊곤했다.개학하고"방학 중에 왜 내 생일 때 연락안 했어?" 하고 묻자니 쪼잔했고, 무엇보다그러기엔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대학생쯤이었을까. '카톡 생일' 기능이 생긴다고 했다. 카톡이 드디어 일 냈구나 싶었다. 여태 받지 못했던 축하를 받을 수 있겠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카톡 생일' 기능은 나날이 발전했는데, 프로필 사진에 귀여운 꼬깔콘을 씌어주는가 하면, 나중엔 하루 동안 생일인 친구들을 한 번에 모아보는 기능도 생겼다.
그 이후부터였을까? 생일 친구를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그렇게 친하지는 않지만, 모르는 척하기에는 민망한, 그런 친구들에게 선물을 주기 시작했다. 실낱같은 추억을 억지로 끄집어내며 식상한 축하 멘트와 함께.
기다리던 내 생일이 왔다. 여러 생일 축하 카톡과 함께 많은 기프티콘을 받았고 화장품, 먹거리등 많은 선물이 집으로 도착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딘가 찝찝했고 의문이 생겼다.
'걔는 왜 안 오지?'
친하지도 않은, 하지만 내가 챙겨줬던 친구들의 선물을 내심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생일이 지나고 나서 미안하다며 연락 오는 친구도 있었지만, 안 오는 친구가 더 많았다.이제는 '방학이어서 몰랐겠지' 하는 희망을 꿀 수도 없었따.섭섭함을 감당해야 하는 건 오로지 내 몫이었다.
몇 년쯤 흘렀을까.문득 생일이라는 게 원래 이런 건가 싶었다.선물을 수거하고, 있어야 할 선물이 없으면 찝찝해야 하는, 그런 날. 내 생일을 위해 공들여 탑을 지었으니, 또 네게 선물을 줬으니, 선물을 받는 게 당연해야 했다. 서로 비슷한 금액과 비슷한 멘트는 덤이다.
카톡 생일 기능을 한 번 꺼보기로 했다.
절친한 친구들을 제외하고, 다른 친구들의 생일 알림은 선택적으로 무시했다.카톡을 켜면 생일인 친구들이 항상 새롭게 등장했지만, 석연치 않고 스크롤을 내렸다.
그렇게 또 다시 내 생일이 왔다. 프로필에는 생일을 알리는 문구가 표시되지 않았다. 당연히 어딘가 허전했지만, 영혼 없는 답장과 선물을 굳이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진심으로 아끼는 친구들은 문자나 전화가 왔다. 무엇보다 그들의 문자나 목소리가 더 진심어리게 다가 왔다.참 고마웠다.
결국, 내가 여태 받고 싶었던 타인의 관심은 날 구속했고, 더 상처받게 했다.
살면서 모든 사람 어떻게 다 신경 쓰고 살겠는가. 이 짧은 인생 소중한 사람들 만큼이라도 잘 챙기면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