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걸'의 성공이 외치는 아우성
못생겼잖아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끼리의 소소한 대화 끝에 좋아하는 가수를 묻는 질문이 나왔다. 나는 다채로운 음색과 무대 위를 가득 채우는 힘 있는 목소리가 좋았기에 가수 'A'를 말했다. 특히 자신감 넘치는 특유의 표정과 행동을 지닌 그녀의 모습에 단시간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짧은 대답 뒤로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나는 그 침묵 속에서 곧 터져 나올 말을 직감했다. 예상했지만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 기어이 툭 튀어나왔다.
"못생겼잖아."
그 한 마디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초토화되었다. 다들 그의 외모 평가에 동감했고, 화제는 실력 대신 외모를 비난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요즘 이런 애들도 연예인이 될 수 있냐느니, 그래도 공인인데 너무한 거 아니냐는 등 편견으로 가득한 말이 대화를 메웠다.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해당 가수가 수많은 대중으로부터 얼마나 이런 말들을 들어왔을까 싶어 마음이 갑자기 미어졌다. 반박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가수가 실력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나 친구들의 대답은 너무나 명료했다.
"얼굴로 먹고사는 사람들인데 당연한 거 아니야?"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한 채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외모 평가'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익숙한 관습이다. 유튜브 댓글은 물론 신문 기사의 사진과 영상 속 인물에 대한 평가로 난무한다. 사회적 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충고'로 둔갑한 채 비난이 되고, 그 반대라면 '칭찬'으로 위장하여 또 다른 평가가 서슴지 않게 이뤄진다. 죄책감조차 희미해지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의 판단이라는 잣대 위에 놓여있는 셈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마스크걸>의 주인공 김모미와 주오남의 이야기가 전 세계인의 공감을 얻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은 사회가 정한 미의 기준에서 벗어난 인물들이었고, 능력과 관계없이 꾸중을 듣고 비난받는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모미가 마스크 뒤에 얼굴을 숨긴 채 춤을 출 때 비로소 사랑받고, 끝내 대중의 미의 기준에 맞추고자 성형수술을 감행하는 사실이야 말로 현실이 얼마나 외모 중심적인지를 서글프게 보여준다. '마스크걸'이 외친 아우성 <마스크걸>은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마스크걸>의 세계적인 성공을 단순히 재미 때문이라고만은 해석할 수 없다. 이면에는 '외모 중심주의'에 질려버린 전 세계 사람들의 자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블라인드 채용'과 '취업 성형'이라는 단어가 몇 년 전부터 떠올랐다. 상반되어 보이는 이 단어들은 언뜻 보면 정반대의 의미 같다. 하지만 '취업에 외모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전제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둘은 사실상 같은 맥락 위에 놓여있다.
외모를 평가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반면 많은 걸 놓치고 있다. 목소리의 울림을, 무대 위의 열정을, 진심 어린 표현을.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외친 용기 내어 외친 질문으로 나는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외모 중심주의를 깨는 것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작은 질문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왜 외모가 먼저인가?" "능력과 가치는 왜 뒷전일까?" 하는 말들. 웹툰, 드라마 <마스크걸>도 아무 이런 질문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 우리 모두 외모로 판단받는 것에 지쳤고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공통된 열망에서 이 작품은 시작되었을 것이다.
가수 A를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더 이상 침묵이 흐르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작은 질문들이 모인다면 조금씩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을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