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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도 안 하고 결혼도 안 하고 싶은데요

by 새내기권선생
"30대 후반 남교사입니다. 요즘 고민이 많네요.


퇴근 후, 교사 커뮤니티에 오랜만에 접속했다. 첫 번째 인기 글 제목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30대를 코앞에 두고 있는 나에겐 참 궁금한 제목이었다. 얼른 클릭했다.

"주변 또래들은 결혼도 하고, 승진도 준비하며 사는데, 그들을 보며 사실 비교됩니다. 저는 딱히 이룬 것도 없고, 승진 생각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꼭 결혼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차라리 연애하며, 지금처럼 꾸준히 행복하게 살고 싶네요. 그런데 부모님이나 주변의 압박이 들어와서, 여러모로 걱정이 많은 연말입니다."
(커뮤니티의 글을 재구성했습니다.)

왠지 나도 그때가 되면 비슷한 고민을 할 것 같아 묘하게 공감되었다. 어떤 댓글이 달려 있을까 궁금해서 스크롤을 얼른 내렸는데, 흠칫하고 말았다. 글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신 '압박'을 댓글을 통해 단번에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교사이시면 더 고민되겠어요.. 40대 중 남교사가 결혼 안 하고 있으면 조금 이상하게 보는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승진이라도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또 주위에서도 인연을 다시 한번 찾아보세요. 선생님 생각해서 말씀드리는 거예요ㅜㅜ"

결국 결혼도 하고, 승진도 하라는 이야기를 담은 댓글이었다. 공감을 가장한 차별이 듬뿍 묻은 조언이었다. 다른 댓글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떤 일이 있었냐고 묻는 댓글, 심지어 키와 몸무게를 묻는 댓글까지. 차별로 가득한 그 댓글들을 보며 멍하니 휴대폰 화면만 바라보았다. 그러다 공감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댓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건 자유 아닌가요? 선생님이 지금 행복하시면, 지금처럼 행복하시면 됩니다."

문득 며칠 전 수업이 떠올랐다. 차별 관련 책을 가지고 반 학생들과 '온 책 읽기 수업'을 마무리하던 날이었다.

"책을 읽으며 여러분은 어떤 사실을 알게 되었나요?"

"역사적으로 많은 차별이 많이 존재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신분, 인종, 성 차별 같이 여러 차별이 있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맞습니다.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우리가 차별하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요?" "차별받을 때, 그건 차별이라고 알려주고 싶어요. 사실 저희 할머니도 여동생 몰래 제게 맛있는 걸 챙겨주실 때가 있었거든요." "저는 사실 축구를 좋아하는데, 여자라고 축구를 못하게 한 어른이 있었어요." "저는 십자수를 좋아하는데, 남자가 왜 그러냐고 했어요."

독서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은 자기가 받은 '차별'에 대해 되돌아보며 여태 참았던, 숨겨왔던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10살 꼬마들이 어릴 때부터 받아온 차별이 이렇게 많았나 싶어, 어찌나 할 말이 많아 보이든지 '진작 알려줄 걸' 하고 후회했다.

"맞아요. 차별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분명 변할 거예요."


하지만 교사 커뮤니티의 댓글들을 보며, 씁쓸한 아이러니를 발견했다. 차별에 대해 가르치는 교사에게조차도 형언할 수 없는 검은 것들이 보여서. '남교사는 결혼해야 한다', '40대에 결혼 안 하면 이상하다', '승진은 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이 차별하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을까. 오히려 생각해서 말하는 거라고, 조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차별이라는 건 우리 곁에 정말 뿌리 깊숙이 내려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또 그들은 이게 차별인지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다. 차별할 때도, 차별받을 때조차도. 댓글들을 보며 부끄럽게도 나는 특별한 댓글을 달지 못했다. 차별받을 때 차별이라고 말하겠다던 아이들과 달리 말이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은 분명 말했다. "차별받을 때, 그건 차별이라고 알려주고 싶어요." 그러다 생각했다. 이 선생님들도 어쩌면 어릴 때 평등에 관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게 아닐까 하고. 그들이 자라던 시절에는 이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차별이 무엇인지, 편견이 어떻게 사람을 아프게 하는지 배울 수 없었던 거라면. 지금 교실에서 배우고 있는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조금은 다를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은 있다. 우리의 다음 세대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배우고 있으니까. 차별이 무엇인지, 차별받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그들이 어른이 되는 때에는 조금 더 따뜻한 말들이 오가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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