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오랫동안 필라테스를 여자들의 운동이라고 단정해왔다.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단지에는 여성 코치님이 다리를 유연하게 길게 뻗고 있었고, 내 주위를 둘러봐도 필라테스를 다닌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열에 열이 여자였기 때문이다. 분명 호기심은 있었지만, '남자가 필라테스를 한다고?' 하는 시선이 두려워 늘 선택지에서 가장 먼저 지워지곤 했다.
하지만 고정관념이 깨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필라테스'는 조셉 필라테스라는 이름의 남자 운동가가 창시한 운동이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부상병들의 재활을 돕기 위해 이 운동을 고안했다고 한다. 그 순간, 필라테스가 '여성들만을 위한 운동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오랫동안 굳었던 나의 편견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평소 잘못된 자세를 교정하고 싶었고, 늘 뻐근했던 허리를 가볍게 하고 싶었던 터라 필라테스를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첫 필라테스는 시작되었다.
첫 수업에 들어갔을 때, 수강생은 전부 여자였다. 역시나 싶었지만, 애써 민망함을 숨긴 채 구석 자리로 몸을 숨겼다.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으나, 이내 그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운동이 시작되자 스스로에게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필라테스는 헬스처럼 강한 무게로 몸에 자극을 여러 번 주는 운동은 아니었다. 하지만 필라테스 기구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무게를 반복적으로 주는 동작은 고통이 상상을 초월했다. 단순 스트레칭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땀을 뻘뻘 흘리고 지친 기색이 역력한 내 모습을 거울로 쉽게 볼 수 있었다. 특히 코어를 사용하는 동작을 할 때는 온몸이 미세하게 떨릴 정도로 내 근육의 한계를 경험했다.
하지만 놀라운 발견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가장 좋았던 건 심신 안정 효과였다. 호흡을 하며 진짜 나를 찾아가는 듯했다. 마시는 숨에 준비하고, 내쉬며 동작을 반복했다. 묵혀두었던 긴장이 풀리고, 마음가짐이 자연스럽게 정돈됨을 느꼈다. 날숨과 들숨을 반복하며 동작을 이어가니 제법 상쾌한 기분이었다. 굽었던 등이 조금씩 펴지고, 자세가 점점 바르게 형성되는 것을 감지했다. 운동이 끝나고 나면 몸이 가벼워진 것 같았는데, 가장 놀라웠던 건 실제로 내 키(신장)가 0.7cm 정도 커진 것이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굳었던 척추가 바르게 펴지고 잘못되었던 평소 습관들이 교정되면서 나온 결과일 것이다. 신체가 바르게 되고 있음을 눈으로 목격하니, 이 운동 참 좋은 운동이구나 싶었다.
예상치도 못했던 도전으로 시작된 운동이었지만, '필라테스'는 내 삶에 제법 큰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아팠던 허리가 조금씩 회복되었고, 운동 후에 주는 상쾌함 덕에 다음 필라테스 수업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몸이 가벼워지니 일상이 달라졌다. 아침에 일어날 때 뻐근하지 않았고, 오래 앉아 있어도 허리가 덜 아팠다.
운동을 시작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생각보다 남자 회원 또한 꽤 보였다. 5:1 그룹 강의 중 절반 이상이 남자 회원인 경우도 가끔 있었다. ‘다들 이렇게 세상에 이야기를 안 하고 있는 걸까?’ 싶어졌다. 결코 '여자 운동', '남자 운동'처럼 성별을 나누는 운동은 존재하지 않는 거 같다. 그저 편견에 사로잡혀 도전을 포기했던 과거의 시간들을 돌아보니 부끄러워졌다. 만약 '남자가 필라테스를 하면 이상하다'는 생각에 시작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아픈 허리를 안고 살고 있었을 것이다.
내 마음속에 눌러 두었던 무언가를 시도하는 건 제법 가치 있는 일인 것 같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부족해 망설였던 일일지라도, 한 번의 시작이라도 한다면 몰랐던 큰 변화가 생길지도 모른다. 내게는 '필라테스'였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는 그 무엇이든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