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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지드래곤)가 양산을 써 주면 좋겠어

by 새내기권선생

땀을 뻘뻘 흘리며 그늘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잎이 듬성듬성 난 나무 밑이나 건물 모퉁이의 그림자를 간신히 찾았고 그에 의지했다. 뙤약볕을 걷다 보면 견딜 수 없이 뜨거워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건 물론이고, 정신이 아득해지기 일쑤였다. 마침 그늘에 겨우 도착해 열어 본 유튜브에는 기가 막힌 썸네일이 떠 있었다.

남자라면 양산 쓴다 VS 안 쓴다

내 마음이라도 읽었던 걸까. 뒤이어 한 피부과 의사가 등장해 말했다. "선크림은 몇 시간마다 자주 덧발라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햇빛을 차단하는 게 더 확실할 수 있습니다." 양산을 권하는 내용이었다. 그 말을 듣고도 나는 '남자가 양산을 어떻게 쓰냐'며 속으로 비웃었다.


예전부터 지드래곤은 패션의 대명사로 불렸다. 항공 재킷, 에어 조던이나 에어포스 같은 스니커즈, 비니 등 그가 입거나 신으면 곧바로 대세가 되곤 했다. 그래서 이런 우스갯소리가 댓글에 꾸준히 달려왔다. "GD가 양산을 쓴다면, 다른 일반 남자들도 패션을 핑계로 당당히 쓸 수 있을 텐데." 이 말만 봐도, 대한민국 사람들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고 있는지를 단 번에 알 수 있다. 원하지만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웃긴 건 이 말이 나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고, 나도 감히 양산을 쓸 수 없었다.


그러다 하루는 정말 미친 듯이 햇빛이 내리쪼이는 날이었다. 폭염 경보 문자가 쉴 새 없이 오는 그런 날이었다. 내가 갈 동선을 계산해 보니 그늘이 전혀 없는 상황. 생존 본능이 부끄러움을 이기던 순간, 나는 눈 딱 감고 가방 속의 작은 우산을 머리 위로 펼쳤다.

순간, 나만의 고요한 그늘이 머리 위로 만들어졌다. 신체 온도가 확실히 낮아지고 땀도 덜 났다. '와, 신세계네!' 하고 생각하며 걸어가는데, 저 멀리서 젊은 여자들이 양산을 쓴 채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 순간, 나는 어떻게 할지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자연스레 우산을 앞으로 기울여 얼굴을 가렸다. 생존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잡는 방법은 그것뿐이라고 믿었다.


며칠 뒤, 나는 여사친과 길을 걷다가 문득, 이 친구는 이에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방금 지나간 남자분 양산 쓰던데, 어떤 생각 들어?" 그녀는 너무나도 태연하게 답했다. "방금? 아, 양산 쓰고 있었어? 아무 생각 없었는데?"


생각보다 남의 일에 그렇게 관심이 없었다. 그래 맞다. 양산을 쓴다고 해서 누군가 나를 유심히 쳐다보거나 뭐라고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듣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를 힘들게 한 건, 내가 스스로 만든 벽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내가 만들어낸 어설픈 벽을 허물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는 작은 우산을 매일 가방에 챙겨두자고 마음먹었다. 양산이 필요한 날에는 당당하게 펼치고 걷자고. 편견은 언제나 타인이 아닌, 내 안에서 가장 굳건하게 자라나는 법이다. 원하는 것을 시도하지 않은 채 미련을 남기는 후회라는 걸 이제는 덜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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