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되고 나니 주변에서 해외여행 이야기가 온통 들려왔다. 누구는 일본을 가봤다고 했고, 이번 방학에는 대만을 간다고 했다. 또 누구는 한 달 동안 유럽 배낭여행을 떠난단다. 해외여행을 못 가본 건 아니었지만, 괜히 또 가야 될 거 같은 조바심에 휩싸였다. 아니나 다를까, 휴대폰을 켜고 해외 여행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검색해 보니 유럽은 최소 몇 백은 들었다. 잔고를 들여다보니, 아르바이트비로 번 돈 고작 몇십만 원이 끝이었다.
'기껏 해봐야 일본밖에 갈 수 없다니' 하는 현실에 절망하던 그때, '띵똥' 하고 알림이 울렸다. 항공권 특가 관련 알림이었다. 마구마구 '날짜', '검색', '선택', '결제'를 클릭하고 말았다. 큰 폭풍이 지나가 있었다. 배가 어디로 향하는지도 몰랐다. 예약 내역을 들어가 보니, '1인 항공권'이 예매되어 있었다.
그렇게 혼자 캄보디아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예약 후에 같이 갈 친구를 구해보려 했지만, 다들 일정이 맞지 않았다. 나중에 다시 들어가 보니 항공권 가격이 3배 이상 올라 선뜻 가겠다는 친구가 없었다. 고민 도중 나는 '그래, 혼자 여행 한 번 다녀보지 뭐. 다들 혼자 여행 한 번씩은 하잖아?' 하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진짜 속마음은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길을 못 찾으면 어쩌지?', '이상한 사람이 내게 돈을 요구하면 어쩌지?', '여권 잃어버리면 어쩌지?' 같은 걱정의 꼬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예상과는 달리, 여행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예약했던 툭툭 기사님이 나를 기다리고 계셨고, 숙소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상상했던 위험 상황은 전혀 없었고, 모든 것이 괜찮았다. 툭툭 기사님과 친해질 수 있었고, 관광지를 가던 중 혼자 온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 친해지기도 했다. 일정이 겹치는 날에는 함께 다녔고, 우연히 그분의 지인들을 만나 함께 놀며 자유롭게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앙코르와트의 신비로움과 웅장함을 일출과 함께 사진으로 담기 시작할 때였다. 이곳저곳을 찍으며, 모든 풍경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마지막으로, 앙코르와트의 전경과 나의 모습을 사진으로 함께 찍고 싶었다. 셀카 모드로 휴대폰을 손을 쭉 내밀어보았지만, 아무리 내밀어도 웅장한 앙코르와트와 내 모습이 한 프레임에 담기지 않았다. 고민하다 지나가는 외국인에게 부탁을 드렸다. "Can you take picture for me?" 타지에서 다른 나라 언어로 낯선 사람에게 내 사진을 찍어 달라 부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색한 포즈를 취하며, 페이스북에 올릴 생각으로 가득 찼다. 어떤 사진을 올리면 부러움을 가득 살까 하고.
그리고 사진을 찍는 순간 옆을 돌아봤다. 아주 화목하게 치아를 보이며 웃고 있는 가족들이 보였다. 또 어깨동무를 하며 브이를 하고 있는 여행자들이 보였다. 내 깊은 곳에서 무언가 끓어올랐다. '부러움', '외로움'이었다. 그에 쓸쓸함이 더해져 이는 나를 더욱 처량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저 좋은 점만 찾으려고 했던 내 마음이, 그때야 폭발하고 말았다. 허탈감이 밀려들어왔다. 내가 지금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남들만큼 하고 싶었던 내 욕망은 결국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여행의 욕망은 애초에 내 욕망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후 몇 년이 지났을까. 나는 대학교를 졸업했고, 직장인이 되었다. 여러 업무에 치여 힐링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오고 말았다.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딱히 관광지를 가고 싶지 않았다. 그저 도시를 떠나고 싶었고 조용한 공간에서 하루를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숙소에 도착한 후, 근처를 걷기 시작했다. 딱히 목적지는 없었다. 강가를 걸으며 꽃들을 보고 벌레 소리를 들었다. 함께 밥을 해 먹고, 후식으로 수박을 먹었다. 근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었고, 보드게임으로 설거지 내기를 했다. 밤이 된 후 우리는 무서운 이야기를 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야 할 것들'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건 참 행복했다. 내가 바라던 여행이란 이런 것이었을까. 모든 순간이 좋았다.
최근에 동료 선생님께서 이번 여름 방학 때 본인은 유럽 여행을 간다고 하시며, 내게 이번에 어디 가냐고 물어보셨다. 연수를 받아야 한다고 하니, 그래도 며칠이라도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게 어떻겠냐고 거듭 권하셨다. 그저 웃으며 넘어가려 했지만, 내 마음을 전혀 모르시는 눈치였다. 굳어진 표정에, 솔직한 내 마음을 전달했다. "그렇게까지 여행을 다니고 싶지 않아서요."
다들 가봤다 하는 곳은 기어코 가봐야 직성이 풀렸다. 남들이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건 꼭 해야만 했고, 친구들이 갖고 있는 건 왠지 모르게 나도 가져야 했다. 하지만 어떤 행위의 의미와 목적은 사람마다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의 욕망이, 내 것이 아님을 지금의 나는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