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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라는 이름 아래의 폭력

by 새내기권선생

퇴근 후 그리고 주말에는, 굳이 무언가를 찾아 나서지 않는 편이다. 따뜻한 이불속에 파묻혀 뒹굴거나, 좋아하는 영화를 보거나, 창밖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지루할 때도 있지만, 나는 고요한 삶의 이 리듬이 참 좋았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평온을 깨뜨리는 무례한 언어를 자주 마주한다. 곱씹을수록 화가 치밀어 오르는, 그러나 그 상황에서는 도저히 화를 낼 수 없는 모순된 상황들. 이런 무례함은 늘 장난 혹은 나를 위해주는 조언인 것처럼 교묘하게 둔갑하여 불쑥 나타난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다가오기에 우리는 늘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며칠 밤을 대화의 조각에서 뒤척이며 그때 스스로를 지켜주지 못한 자신을 후회한다.


한 부장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을 때였다.

“이번에 소프트웨어, 영상 제작 같은 공문들이 내려왔어. 네가 하면 딱 좋을 거 같아. 그리고 아, 참! 전에 내가 말했던 교사 연구회 가입도 생각해 봤어?”

부장님이 알려주신 연구회는 하고 싶었던 활동이 맞았지만, 당시 새 학교 발령과 함께 첫 업무가 많아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다음을 기약하자며 조심스럽게 거절했다.

“아, 부장님. 저도 고민 많이 해봤는데요. 요즘 시간이 좀 많이 안 나네요. 연구회는 다음에 가입해야 할 것 같아요.”

돌아온 대답은 놀랍도록 단호했다.

“응? 시간이 없다고? 너 하는 거 없잖아? 뭐가 바쁜데? 지금 같이 열정 넘칠 때, 해야 해!”

그리고 마지막에 덧붙여진 한마디가 비수처럼 박혔다. “그리고, 너는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없잖아.”

불과 10초도 안 되는 대화로 나는 열정은 있지만, 핑계를 대는 한가한 교사가 되어 있었다. 부장님은 정말 결혼과 육아를 하는 사람만이 바쁘고, 그 외의 사람은 모두 한가하다고 생각하시는 걸까. '저는 올해 처음 맡는 과목에 부담이 크고, 업무 때문에 매일 초과 근무하고 있어요. 지금 주어진 일정만으로도 에너지가 소진됩니다.' 하지만 그 어떤 항변도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는 후회만이 쓰라리게 남았다.


또 다른 날, 다른 선생님은 주말 일정을 내게 물어왔다.

“쌤, 주말에 뭐 해?”

“보통 그냥 집에서 쉬어요.”

“심심하겠다. 재미없게 혼자 뭐 하는 거야. 우리는 가끔 거제 가서 다슬기 캐고, 자전거 타고 그래.”

나의 고요한 휴식은 그들의 기준으로 '심심하고 재미없는 게으름'으로 순식간에 재단되었다. 왜 자꾸만 누군가는 타인의 삶의 영역에 깊숙이 관여하려고 할까. 분명 나름의 속도와 방식으로 잘 살고 있는데, 그들의 말 한마디 때문에 문득 '나 잘 안 살고 있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들의 관심은 마치 "너는 부족하다", "너는 재미없다"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관심이란 건 겉으로는 배려인 척 포장되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교묘한 폭력이 될 수 있다. '나를 위해주는 말'이라는 명목 하에, 자신들의 기준을 들이대며 은연중에 누군가의 삶을 재단하고 괴롭히는 방식인 것이다. 타인의 삶의 속도와 방향은 그 사람의 몫이인 걸, 원하지 않는 조언은 부담이 될 수 있다. 불필요한 조언이나 재단은 친절이 아닌 침범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내 삶은 내가 가장 잘 알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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