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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있다면 꿈은 이루어지는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에 대하여

by 새내기권선생
간절히 원하는 건 이뤄진다고
이룬 이들은 웃으며 말하지
마치 너의 꿈은 꿈이 아닌 것처럼

-자우림 김윤아 '꿈'

한때 자기 계발서를 인생 나침반으로 삼은 적이 있다. 성공한 이들의 삶을 교훈 삼아 그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기 계발서를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그들에게는 큰 공통점이 있었다. 꿈을 이루기 위한 '간절함'. 특히 한 책에서 강조한 'R=VD'라는 문장이 이를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Realization = Vivid Dream'

생생하게 꿈을 꾸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의미였다. 아주 강력한 문장이었다. 내 의지와 상상력이 현실을 만든다고 믿게 해 주는 문장이었다. 간절함이 충분하면, 결과는 자동으로 따라온다는 필연적 사건처럼 들렸다. 그 말에 감동을 받아 철석같이 믿었고, 좌우명으로 삼기까지 했다.


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질문이 생겼다. 과연 우리의 꿈이라는 게 정말로 열정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걸까. 나의 경우는 학창 시절 나는 입시를 위해 정말 피나는 노력으로 공부했다. 눈을 뜨고 잠에 드는 순간까지 내 머릿속은 온통 수능과 대학으로만 가득 찬 적이 있었다. 당시, 그만큼 간절했던 게 없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처참했다. 3년 동안 밤잠을 새 가며 흘린 눈물과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렇다면 내게는 간절함이 부족했던 걸까.

대학생 때만 하더라도 대만으로 교환학생을 가고 싶었지만 떨어졌고, 아프리카 해외 봉사에 최종합격했지만 건강 문제로 떠나보내야 했으며, 교사가 된 이후 꼭 이루고 싶던 대학원 파견에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각종 영상과 글쓰기 공모전도 우두두 떨어졌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에 완벽히 동의할 수 없었다. 정말 간절했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았다.


몇 년 전까지 투표로 가수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유행했다. 나 또한 즐겨 보며 좋아하는 가수를 응원했다. 투표로 등수가 높은 가수일수록 우승에 가까워졌다. 그렇다면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라는 논리에 비추어본다면, 앞 등수 가수가 뒷 등수 가수보다 더 간절했을 테다. 하지만 'Produce 101' 투표 조작 사건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간절함이 등수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었다. 투표 조작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한때 유행했던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단어를 생각해 본다면, 성공에 미치는 배경의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간절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산, 학연, 혈연, 지연 같은 배경이 미치는 영향도 사실 상당하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이런 것들이 세상을 움직일 때가 애석하게도 많다. 열정 있는 수많은 이들이 현실 앞에서 좌절한다. 그들이 부족한 게 아니다. 세상이 그렇게 작동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세상 속에서 나 같은 평범한 시민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에 마주한다. 오랜 고민 끝에 다시 생각난 말이 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이 단어를 처음 접한 건 재수 기숙학원에 있을 때였다. 아빠가 응원차 보내주셨던 편지에 적혀 있었다(당시 기숙학원에서는 휴대폰을 쓸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다음,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의미였다. 어릴 땐 이 말이 아리송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의미가 선명해졌다.

처음엔 R=VD와 비슷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말은 결정적으로 다르다. R=VD는 "결과를 보장한다"라고 말한다. 간절하면, 꿈꾸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진인사대천명은 "결과를 내 손에 있지 않다"라고 말한다. R=VD는 결과 중심이다. 성공이라는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반면 진인사대천명은 과정 중심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에만 집중한다면 그 결과가 무엇이든 받아들이게 된다.

무언가를 이루고 싶을 때, 내가 해야 하는 건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한 다음, 그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것이다. 열정이 아니라 몰입이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결과에 목을 매지 않으면서도 최선을 다한다는 건, 역설적이지만 오히려 더 자유로운 삶에 가깝다. 내가 제어할 수 없는 것들, '시대, 배경, 운'에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제어할 수 있는 것 '노력, 태도, 과정'에만 집중해 보자.


그래서 지금의 나는 그저 묵묵히 이렇게 글을 쓴다. 물론 작가라는 꿈이 반드시 이루어질 거라고는 믿지는 않는다. 다만 오늘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나머지는 하늘에 맡긴다. '간절함'이 보장하지 못하는 것들을 '몰입'으로 채우는 것. 그것이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이 시대를 살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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