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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한 세계, 그리고 나아갈 세계

「김영란 법」에 관한 생각

by 새내기권선생

선배들이 3월에 아이들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에 그 말이 싫었지만, 나중에서는 결국 이를 굳게 믿게 되었다. 그때를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베풀고 친근함으로 다가가려 했지만 결국 만만이 교사가 된 때를. 이후 나는 면학 분위기 조성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런 쓰라린 실패의 이후 '퍼주는 교사가 좋은 교실을 만들 수 없다'는 신념이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여전히 '좋은 교사'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되묻고 있다. 악성 민원, 각종 업무, 주변의 눈치 속에서 교사들이 무너지고 좌절했기에 이런 현실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게 좋은 교사인지 끊임없이 질문한다. 예전의 나였다면 학교에서의 어떤 권위도 반대했을 테지만, 지금의 어떠한 힘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교사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 학창 시절(2000년대) 속 씁쓸한 장면들도 부정할 수 없다. 스승의 날은 물론, 교육과는 거리가 먼 밸런타인 데이나 빼빼로 데이 날, 선생님 자리는 과일 바구니와 꽃바구니로 가득 차 있었다. '들고 오지 말라'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마다하지 않는 장면이 눈에 보였다. 어떤 선생님은 선물을 하나씩 들어보며 누가 들고 온 것이냐며 이름을 수집했다. 전설처럼 들어왔던 '육성회비', '기성회비'라 불렸던 것들이 그저 다른 형태로만 바뀌어 있는 거 같았다.

교사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아 「김영란 법」이 만들어졌다. 부패를 방지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법이라고 했다. 나는 그 순간부터 아이들에게 가장 작은 사탕조차도 받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에 의해 어떤 아이를 향한 마음가짐이 혹여나 달라지지 않을까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그렇게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몇 해가 흘렀을까. 학창 시절 친구들이 웃으며 내게 물어봤다. "그래도 교사는 할 만하지 않아? 촌지도 많이 받고" 화가 날 때쯤, 그의 표정을 보니 몇십 년 전 학교에서 받았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런 무기력한 현실 속에서 「지켜야 할 세계」라는 소설을 만났다. 윤옥이라는 인물을 통해 1980년대 한국 사회를 그려내는데, 뇌병변 장애 동생을 찾는 과정에서 부도덕한 제도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대로 움직이는 주인공을 만났다. 그녀가 무뚝뚝하고 소심해 보이지만, 사회 속 부정의에는 예민한 모습을 보니 왠지 나와 닮아있는 거 같았다. 그럼에도 결정적인 차이는 '실천'에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사실, 문제를 빠르게 인식하지만 악성 민원이나 주변 눈치가 두려워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윤옥을 생각한다. 그녀였다면 하고. 윤옥은 그녀가 원하고 바랐던 교육을 실천하며 변화를 위해 애썼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지는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윤옥의 마지막 대사가 종종 떠오른다. "내가 지켜야 할 세계란 말입니다."

악성 민원과 각종 업무, 주변의 눈치에 치여 내 세계는 자꾸만 옅어지는 거 같다. 어느덧 튀지 않고 가장 보통의 교사가 되는 게 목표가 되어있었다. 교육에 대한 내 신념은 완전히 지워져 나의 세계라고 할 만한 것이 남지 않았다.

옅어지는 내 세계를 굳건히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용기가 필요하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용기, 편하지 않은 결정을 내릴 용기. 지금 나는 나에게 다시 묻는다. 좋은 교사란 무엇인가. 그 답을 찾아가는 길에서, 나는 윤옥의 용기를 본받고 싶다. 내가 지켜야 할 세계가 무엇인지 묻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한 발씩 나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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