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소방으로 약 2년을 소방서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의무소방원' 제도는 화재진압과 구조·구급활동 등의 업무를 보조하기 위한 전환복무 제도였다. 출동차량을 지키거나 현장 진압에 필요한 장비를 나르고, 사고 현장을 기록하는 등의 현장 보조 업무가 주 역할이었다.
그날도 역시 출동벨이 울렸다. 그날의 해 질 녘 출동벨 소리는 무언가 달랐다. "긴급 출동". 출동벨을 듣자마자 차량에 부리나케 뛰어갔다. 부장님은 액셀을 밟고, 팀장님은 본부와 무전을 하고, 주임님은 신고자와 통화했다. 그런데 신고 장소에 도착했을 때쯤 새로운 무전이 들려왔다. "기존 장소와 다른 장소인 A아파트에서 사람이 떨어진 것 같다는 신고가 접수됨." 더 긴박해진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방향을 바꿨다. 도착하자마자 구급대원들이 장비를 챙겨 달렸다. 아파트 출입구 앞 쪽에서 누군가가 보였다. 의식이 없었다. 즉시 CPR을 시작했다. "하나! 둘! 셋!" 구급대원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팀장님과 함께 사고가 발생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현장 위쪽으로 올라갔다. 깜깜한 복도 쪽으로 랜턴을 비추자 차마 눈을 뗄 수 없는 장면들이 보였다. 복도창 앞으로는 외짝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벗겨진 신발 두 켤레가 나란히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으로는 어두운 절벽이 펼쳐져 있었다. 몇 분 전까지 의자 위로 두발을 딛고 서 있던 그의 모습이 떠 올랐다. 그리고 벽의 경계를 넘은 모습까지도. 떨리는 손으로 현장 사진을 찍었다.
아래로 내려왔을 때, 주임님이 남편 분과 대화하고 있었다. 남편의 얼굴이 창백했다. "어떻게 되었나요?" 주임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무거웠다. "경과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지만.." 그 순간, 남편 분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버렸다. 오랫동안 담아두었던 모든 것이 터져 나오듯 눈물이 흘러나왔다. 옆의 지인은 "아이고아이고" "미안해. 정말 미안해"라는 말을 반복했다. 아무 말 없이 그 장면을 바라봤다.
소방관들은 정기적으로 심리 상담을 받고 강연을 듣는다. 끔찍한 현장을 자주 목격하기 때문이다. 그날은 강연하시는 선생님께서 '너 혹시, 자살 생각해 본 적 있어?'라고 묻는 게 자살 방지에 매우 효과적이라는 말씀을 했다. 그 상대방이 솔직하게 '사실 있어'라고 대답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심리를 표출하기 때문에 그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심어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얼마 후, 우연히 자살 관련 글을 다룬 인터넷 기사를 보게 되었다. 자살 관련 기사 아래에는 "이분들은 사회적 타살입니다. 자살이라고 할 수 없어요"라는 댓글이 있었고, "그래도 본인이 선택한 거 아닌가요?"라는 대댓글이 달렸다. 또 다른 누군가는 "자살도 권리죠"라고 주장했고, "과연 권리라고 할 수 있을까요?"라는 반박이 이어졌다.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나는 의문이 생겼다. 타살과 자살의 구분, 사회가 만들었는지 개인이 선택했는지의 문제, 그런 것들이 그렇게 중요할까에 대한. 더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 결정까지 간 사람이 느꼈던 고통의 무게와 얼마나 외로웠을지에 대해서. 그 선택에 도달하기까지 그들은 얼마나 추웠을까. 우리가 자세히 봐야 하는 건 그 지점이지 않을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죽음을 원한 게 아니라 현재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일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그들도 사실은 살고 싶어 한 것이 아닐까. 그들도 더 나은 내일을 원했을 것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매우 높은 나라다. 매년 10,000명에서 15,000명이 목숨을 끊는다(일 27명~42명)고 한다. 이 통계 뒤에는 수많은 개인의 절망이 숨어 있다. 어쩌면 그들은 멀리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 멀리 있지 않다. 현재 당신이 다니는 직장의 옆자리 동료일 수도 있고, 친했던 학교 친구일 수도 있고, 어쩌면 당신의 가족일 수도 있다. 또 우리 모두가 그 누군가가 될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나 주변 누군가가 극단적인 생각에 빠져 있다면 질문하고, 말해주기를 바란다. 그런 생각을 한 적 있느냐고. 혹시 힘드냐고. 그리고 이들이 "나 힘들어"라고 말하는 자체만으로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또 "혹시.. 너 지금 괜찮아?"라고 묻는 한 마디가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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