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사가 되기까지 약 10년.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이 기간 동안 한국 교육계에는 정말 큰 변화가 생겼다. ('라떼~'로 이야기를 한다면 꼰대라는 뭇매를 맞겠지만, 변화를 알려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라떼는 교실 앞으로 불려 나가 손바닥을 맞거나 벌을 서는 일이 흔했다. 숙제를 안 했을 때는 물론, 종소리에 제대로 앉아 있지 않거나 오늘 공부할 페이지를 펴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벌을 받았다. 지금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인권 탄압'이 그때는 사실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었다.
그중 단연코 최고로 비현실적이고 정점을 찍은 건 ‘두발 규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신입생 OT 날의 일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학교에 도착하니, 선생님들은 아주 심플한 학교 매뉴얼 책자 하나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다. 제일 앞장을 펼쳐보니 ‘용의’, ‘복장’ 등 딱딱한 단어들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왔다. 그리고 쭉 내려다보니 ‘두발 규정’이 나왔다. 나는 초스피드로 스캔하여 ‘cm’라는 단어를 찾았다. 그런데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비슷한 문자를 발견했다. ‘mm’.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앞에 쓰인 숫자가 어딘가 좀 이상했다. ‘15’. 필통 속의 자를 꺼냈다. 그리고선 소중한 머리카락 한 올을 뽑아 바로 재어 보았다. 당시 나는, 신입생 OT라고 나름 단정하고 짧게 잘랐다고 생각했지만 15mm, 즉 1.5cm 기준으로 한참을 초과하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말이 쉬워 1.5cm이지, 고등학교 모든 학생의 머리털이 전부 1.5cm라는 걸 상상할 수 있을까. 내 고등학교 1학년은 그렇게 억울함과 절망으로 시작되었다.
신입생으로 등교하는 첫날. 교복을 입고 함께 등교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이곳은 학교인가 절인가. 학생들의 모습이 승려와 다름없었다. 교과서 공부가 아닌 불경 공부를 하러 간다고 해도 믿을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교문 앞에 서 계신 학생부 선생님은 대충 눈대중만으로 1.5cm를 넘어선 학생들을 귀신같이 잡아냈다. 마치 눈에 AI라도 장착한 듯, 기준 이상과 이하를 정확히 구별했다. 나중에 통과하지 못한 학생들의 말을 들어보니, 기준은 심플했다.
머리를 빡빡 밀었는가
빡빡이가 아니라면, 학생이 될 수 없었다. 평생 밀어보지도, 밀어보려고 생각조차 않던 머리를 그렇게 밀게 되니 너무 억울했다. 무엇보다 주변의 시선이 너무 신경 쓰였다. 버스를 타면 사람들이 나만 힐끔 보는 것만 같아 부끄러웠고, 자신감이 바닥을 쳤다. 학교에서는 공부하라는 의미로 머리를 밀게 했지만, 그 덕에 공부가 잡히지 않았다. 거울 속 내 모습 자체가 충격적이어서, 외출 때마다 큰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왜 나만 이렇게 이상한 모습이어야 하지?’
그렇게 억울함 속에서 시간이 흘러 4월이 되었다. 또다시 머리 검사 시즌이 되었다. 어느 정도 '사람다워진' 모습이 되자, 학교에서는 다시 머리를 자르게 시켰다. 이번에는 기준이 더 심플했다. "머리가 손에 잡히지 않아야 한다." 역시 이 학교는 우리가 사람답게 보이는 걸 원치 않은 게 분명했다.
그리고 내 마음이라도 읽은 걸까. 교실로 돌아가는 길, 복도 벽에 ‘두발자유’라 적혀 있는 포스트잇이 덜렁 붙어 있었다. '정말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하며 달콤한 상상을 했다. 하지만 단 5초 뒤에 그 상상은 바로 산산조각이 났다. 모퉁이를 돌자 코너에서 학생부 선생님의 큰 목소리가 들렸다.
“이게 뭐야!”
선생님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해당 포스트잇을 보고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역시, 그럼 그렇지.’ 그런데 다음 날의 복도에는 포스트잇이 1개가 아닌, 3개가 붙어 있었다. 문구는 똑같은 4글자, ‘두발자유’. 하지만 어제 본 글씨체와 확연히 달랐다. 이번에는 다른 학생이 붙인 게 틀림없었다.
놀랍게도, 날이 갈수록 포스트잇 개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복도를 넘어 엘리베이터, 각 교실, 심지어 교무실 입구까지 곳곳에 붙기 시작했다. 포스트잇은 늘어났지만, 붙이는 걸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학생부 선생님은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하냐며, 걸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의 강압감은 오히려 반감을 사 학생들의 묘한 유대감을 형성했다. 내 마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마조마했지만, 나도 이 작은 혁명에 동참하고 싶어졌다. 가방에 있던 포스트잇 하나를 꺼내 들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게 팔로 가린 채 또박또박한 글씨로 ‘두발 자유’ 네 글자를 적어 몰래 붙였다.
학생부 선생님들이 이번에는 더 씩씩대며 쉬는 시간에 교실 문을 열어젖혔다. 그들은 모든 학년의 교실을 돌아다니며, 큰소리로 말했다. CCTV를 돌려 볼 거고, 해당 학생들 무조건 찾아내 징계할 거라는 엄포였다. 대입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단단할 것 같았던 우리 익명의 연합은 이 한마디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징계'와 '대입'. 대입을 위해 생기부 한 줄 한 줄이 매우 중요했던 당시, 징계는 이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는 단어였다.
아름다웠던 혁명은 그렇게 쇠하기 시작했다. 포스트잇 개수는 줄어들었고, 교사의 눈치를 보는 묘한 분위기가 생겨났다. 그럼에도 이 혁명이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학생부 선생님들의 두발 검사가 꽤 느슨해졌기 때문이다. 횟수가 줄어들었다는 건 우리 모두가 체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두발 규정 수정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우리의 작은 인권 운동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포스트잇에 기대어 얼굴도 모르는 서로를 믿었고, 그 믿음은 끈끈했다. 자신의 솔직한 의견 표출에 대한 경험은 어디서도 바꿀 수 없었다. ‘어떤 경로로든 변화를 외치는 사람이 있어야 변화는 일어난다’는 용기를 배웠다.
우리의 투쟁은 실패로 귀결된 듯 보였지만, 사실상 승리라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 깨달음 때문이었다. 우리의 부당한 시절, 잠시나마 이상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되었던 그때가 자꾸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