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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내기 권선생 Jul 08. 2024

열등감 가득했던 그때 그 시절

기숙 학원 재수생의 첫 휴가 이야기

  수능 재수생에게 정말 큰 고통은 소속된 곳이 없다는 사실이다. 고등학교도 졸업했으며, 대부분의 다른 친구들은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스마트폰이 날 고통스럽게 했다. 가령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은 물론이며, 가뜩이나 카톡만 열어도 자랑으로 가득한 그 대단한 프사들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이렇게 단시간에 박탈감을 선물해 준다는 점에서 스마트폰이란 다른 의미의 대단한 발명품이었다. 


 그래서 재수할 때, 더욱 기숙 학원을 선택하고 싶어졌다. 나와 같은 친구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다는 것. 반강제적으로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장점이라 생각되었다. 물론, 2013년 당시 거금 250만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내야 한다는 불효를 저질러야 한다는 점이 흠이었지만.


거액의 돈을 내는 건, 매 시간 더 집중하게 만들었다. 정말이지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교실에 올라와 공부를 했으니까. 그렇게 하루하루가 열정 가득한 날들로 채워지는 거 같았다. 하지만, 슬프게도 6월 모의 평가 후 슬럼프는 찾아오고 말았다. 수능 공부에 한계를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내신 공부 때와 달리 어떤 공부를 하더라도 계속해서 새 지문이 나왔기에 시험칠 때마다 계속해서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6월 모의고사 후에 '정기 외박'의 시간이 찾아왔다. 3박 정도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올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경기도 광주에서 부산까지 가기에 너무 멀었고, 이 시간과 비용 또한 아까웠다. 수도권에 사는 친구들은 삼삼오오 모여 순식간에 집으로 향해 기숙학원이 텅 비었다. 밖에 산책이라도 가볼까 생각하던 도중, 나와 비슷한 또래들이 같이 사우나 가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기분 전환하기에 꽤 괜찮은 방법 같아 수락했다.


 우리는 학원 근처의 크고 유명한 스파랜드로 향했다. 뜨거운 탕에 들어가 몸을 지지고, 땀을 뺐다. 우리의 묵었던 피로가 풀리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고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별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통하는 게 있었다. 수험생으로서 겪는 입시에 대한 불안함이었다. '시험을 잘 칠 수 있을까'.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까' 하는 그리고 부모님께 실망드리고 싶지 않다는 소망도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불안을 털어놓다 보니, 해결할 수는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조금씩 안정감이 생겼다.  


 우리는 사우나에 그칠 수 없었다. 아직 3개월 동안의 마음고생이 전부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근의 노래방으로 향했다. 우리는 1시간짜리 방을 빌려, 아주 큰 소리로 정말 목청이 떨어져 나가도록 노래를 불렀다. 탬버린을 흔들고 너나 할 것 없이 호응해 줬고, 우리는 그 순간을 즐겼다. 기숙 학원에 들어간 이후에 처음으로 공부 생각 없이 그렇게 놀기에만 집중해 본 순간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놀다 보니 늦은 밤이 되고 말았다. 한 친구가 재밌는 제안을 했다. "우리 근처에서 자고 갈래?" 결국 우리는 인근 모텔의 문을 두드렸다. "방 있나요?" "4명이서 잘 건가? 학생은 아니지?" 아주머니의 의심스러운 눈치로 보니, 분명 '고등학생'이 아니냐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당시 열등감이 가득 찬 상태였기에 당연히 대학생이 아니냐고 묻는 줄 알았다. 옆에 있던 한 친구가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대학생이어야만 쓸 수 있어요? 그런 게 어디 있나요?" 아주머니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의 상황을 자초지종 설명해 드리자, 아주머니는 호탕하게 웃으시며 본인이 미안하다며 모텔에서 제일 큰 온돌방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는 무려 인당 1만 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방에 들어왔다. 그리고 TV를 틀었다. 얼마 만에 보는 TV인가 싶으면서도, 돌리다 보니 눈길이 가는 프로를 발견했다. 바로 '히든싱어'였다.


 어떻게 이런 프로가 있을 수 있냐며, 우리는 감탄했다. 그리고 금방 프로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평소에 노래를 많이 듣는 편이라 그래도 꽤 쉽게 맞출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정답을 공개할 때마다 족족 다 틀렸다. 진짜 모창의 달인이 최종 우승할 것만 같았다. 가수보다 가수처럼 더 잘 부르는 사람이라니,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다행히 가수가 우승했다. 하지만, 달인의 인터뷰를 듣고 우리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달인은 그 가수를 진심을 다 해 좋아했고, 성심껏 연구하고 정말 셀 수도 없이 연습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자, 놀라운 것을 떠나 경이로움이 들었다. 어떤 걸 잘하기 위해선 저 정도의 열정과 노력이 필요하구나 하고 싶었다. 물론 내가 공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는 했지만. 또 왜 진작 내게 이런 쉼을  주지 않았나 후회가 되었다. 20살의 당시의 내가 필요했던 건, 채찍질뿐만이 아닌 휴식이라는 걸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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