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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Sep 12. 2024

너는 나의 신데렐라~데렐라!

끄응 차. 딱 맞는 운동화를 찾아라

옆 마을에 있는 학교와 공동교육과정의 일환으로 함께. 체험학습을 가는 날이다.

두 학교 모두 학생수가 적은 학교이다 보니 각 학교의 두 학년씩 모여도 학급으로는 3학년  2개 반, 4학년 2개 반이지만 학생수는 25명도 되지 않는다.

도시의 학교 한 학급의 학생수와 비슷할 것이다.

두 학교 학생들이 함께 공주 무령왕릉과 국립공주박물관 견학을 가기로 하였다.

도보로 걷는 거리가 꽤 있기도 하고 체험학습 시에는 활동하기에 편한 운동화를 신는 것이 국룰이라 할 수 있다.


어젯밤부터 비가 세차게 내리더니 아침 출근길도 비가 왔다.

아이들과 함께 체험학습 나갈 것이 걱정이다.

아이들도 날씨를 탄다고 비가 오거나 날씨가 궂은날은 뭔가 이상한 일이 하나씩 벌어지기도 하니 걱정이다.


교실에 모두 모인 아이들의 수를 확인하고 1. 화장실을 다녀온 후 2. 신발을 신고 3. 우산을 챙겨 4. 중앙 현관에 모이기로 했다.

수행할 과제가 네 가지.

역시 이 네 가지의 단계적 순서를 차례대로 수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

아이들 수는 10명이 겨우 되더라도 100번은 반복해야 출발 준비가 완료되는 것이 바로 체험학습니다.

“신발 신고 오라고 했죠?”

“화장실 다녀와야 해!”

“비올텐데 우산 안 챙기니?”

“교실에 놓고 온 거 아니니?”


휴… 똑같은 이야기를 무한 반복하고 확인을 하던 때

띠용. 힘찬이의 신발이 눈에 들어온다.


운동화도 아니고, 샌들도 아닌, 아버지 실내화를 신고 왔다.


“힘찬 아. 왜 아빠 실내화를 신고 왔어? 이 신발 신고는 갈 수가 없어.”  

“이거 신고 갈 거예요. 엄마가 사준 거란 말이에요.”

뾰로통해진 힘찬이가 힘주엉 말한다.

여기서 감정싸움이 시작되면 출발 시간만 더 늦어지기에 나를 달래고 달래고 달래며

아주 부드럽게 말했다.

“힘찬 아~ 이 신발을 신고는 걷기가 어려워. 다른 신발을 신고 가자. “

“난 우리 엄마가 사 준 이 신발이 좋단 말이에요.”

웬만하면 그냥 신고가라고 할까 했지만 이 실내화로는 도저히 걸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고민을 하다가 번뜩 생각이 났다.

“힘찬아, 선생님 운동화가 엄청 멋진데 그걸 힘찬이가 신어주지 않을래?”

“선생님 운동화요? 그럼 그거 신으면 갈 수 있어요?”

녀석… 체험학습을 못 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긴장을 하긴 했던 모양이다.

“그럼 그럼, 갈 수 있지.”


키가 유독 큰 힘찬이는 나와 발 사이즈가 같다.

나는 샌들을 신기로 하고, 힘찬이에게 운동화를 건넸다.


대근육 운동의 움직임이 불안하여 앉아서 신발을 신기 어려운 힘찬이가 바닥에 철퍼덕 앉는다.

그리고는 발을 턱 하니 뻗어서는 신발을 신키라는 자세를 취한다.

‘이건 뭐지? 요 녀석 봐라.‘ 싶지만, 이미 다른 아이들이 우리를 바라본다.


그 신발을 빨리 신어야 우리가 출발한다는 무언의 협박이 담긴 눈으로 말이다.


어느새 힘찬이가 발이 더 컸는지, 아니면 발 등이 높아서인지 내 운동화도 반사이즈가 큰 것인데도 잘 들어가지 않는다.

꽉 묶어놓은 신발끈을 다 풀어서 왕처럼 앉아서

내가 신발을 신겨주길 기다리는 힘찬이의 발에 손수 운동화를 신겨주고 끈을 조여주며 묶어주었다.


한쪽이 끝나니 다른 쪽 발도 척하니 내놓는다.

양 쪽 발 사이즈가 다른 걸까?

오른쪽은 그래도 들어갔는데 왼쪽 발은 도통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가 낑낑거리고 있으니, 교장 교감 선생님도 함께 신발을 신기기 위해 힘을 쓰신다.


이것 꼭 그림책의 한 장면 같다.

‘마을 사람들~ 우리 왕발이에게 신발을 신깁시다.’ 하는 장면처럼 서로 끄응 차 끄응 차 힘을 쓴다.


일어나서 콩콩콩해보라고도 하고, 그것도 어려우니 다시 앉아서 힘을 준다.

힘찬이가 아닌 내가.

하나 둘 셋! 성공 드디어 신발을 신겼다. 신발끈을 다시 정비하고 리본으로 예쁘게 묶어주었다.


힘찬이의 기분이 좋다.

“우와 선생님 고맙습니다. 멋지다. 선생님 신발.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를 찾듯,

힘찬이에게 그 유리구두를 신기기 위해 나는 마치 신데렐라 언니들의 못된 엄마처럼 온 지구의 힘을 모았다.

그래도 그 덕분에 무령왕릉도 모두 둘러보고 박물관도 도보로 이동했을 것이겠지?


어느새 힘찬이가 자라서 발 사이즈가 나와 같아졌다.

문득 시간의 흐름이 느껴진다.


선생님 신발을 신고 하루를 보낸 힘찬이의 발은 오늘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조금 답답하기도 할 테지만, 그래도 사무실용 실내화를 신고 왔더라면 걷지도 못하고 혼자 앉아 있어야 했을 텐데

덕분에 친구들과 함께 보고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교사는 언제든 무엇이든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때론 이렇게 여분의 신발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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