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많은 영훈씨의 세상을 기다리며
작년 여름은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였다.
한 번이면 끝날 줄 알았던 걸음이, 두 번, 세 번, 이어졌다.
들려오던 동료들의 이야기에 함께 화가 났고 슬펐고 우울했다.
이 길을 기쁘게 걷던 나였음에도, 하루하루 화딱지가 났다.
어쩌면 나는 내 기쁨만 돌보느라 옆 반 선생님의 마음은 살펴볼 여유가 없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자책 아닌 자책이
더 힘들게했던 그런 여름이다.
그런 불편한 마음과 일상 속에서 여름방학을 맞은 아이와 찾았던 파주 여행.
특별한 목적지 없이 출판단지에 있는 출판사를 돌아보고, 지지향 게스트하우스에서 오랫동안 책을 읽는 정도의 간단한 스케줄이었다.
‘보림 출판사‘에서 낭독극 공연이 있다는 게시물을 보고 아이와 함께 향한 곳에서
나는 영훈 씨를 만났다.
일종의 직업병처럼 영훈씨는 마음과 몸의 돌봄이 필요한 청년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의자에 앉아 아코디언을 연주하기 전 눈을 잠시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쉰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큰 숨을 들이셨을까?
사람의 ‘숨’이란 것이 참 묘하다.
내가 살기 위한 숨이기도 하지만 그 숨을 통해 다른 사람도 살아난다.
나는 무대 위에서 그가 깊게 들이시는 그 숨이 관람석에 앉아서 갑갑하게 조여오던 내 숨통을 트여 주는 듯한 힘을 받았다.
그렇게 영훈씨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의 아코디언 연주가 시작되기도 전에 나는 마음이 뜨거웠다.
영훈 씨의 연주는 ‘장애가 있는데도 이 정도 해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닌 마음을 움직이는 연주였다.
무대가 끝나고 나가며 영훈씨와 다시 마주했다.
그의 어머니께 “꼭 영훈씨의 연주가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하고 인사 나누었다.
그 뒤 나는 종종 인터넷 검색창에 영훈씨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장애인 김영훈’ ’ 장애예술인 김영훈‘ ‘발달장애인 미술가 김영훈’
어느 날 영훈씨와 관련된 기사가 올라왔다.
‘마스터피스’라는 장애예술가를 지원하는 단체에 소속되었고 H호텔 미술 직무 취업에 성공했다는 정말 감사한 소식이었다.
음악 연주만 잘 하는 줄 알았던 영훈씨는 그림도 잘 그리는 화가였다.
그런 영훈씨가 개인전을 연다는 소식으로 나를 또 설레이 기했다.
연휴가 있던 10월의 첫 일정을 영훈씨의 개인전으로 고정해 두고, 그의 그림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렘으로
일상의 바쁨을 달래며 지내온 것 같다.
그렇게 다시 영훈씨의 음악이 아닌 그림으로 다시 만났다.
그림으로 소통하는 영훈씨는 조금 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그의 독특한 시선, 터치감, 그리고 색으로 이야기를 걸어온다.
그의 그림은 발달장애인이 그린 그림이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발달 장애인이 이 정도 그렸구나, 대단하다는 시선이 아닌
한 작가의 이야기로 보아도 훌륭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림이다.
언젠가는 그의 그림이 동등하게 세상과 마주할 것이라 생각한다.
혼자서 그림을 그리기 좋아하던 영훈씨가 세상으로 나왔다.
그의 그림이 세상으로 향했다.
이제 영훈씨의 그림 이야기는 영훈씨의 이야기만이아닌 그의 색, 선, 붓 터치 하나하나에 담긴 그의 마음이 더해져 모두에게 닿을 것이다.
영훈씨의 개인전은 이제 ’첫‘ 시작일 뿐, 끊이지 않고 그의 행보가 전해졌으면 한다.
처음 영훈씨의 아코디언 연주를 들으며 나도 하나의 울림이 있는 ‘점’이 되고자 다시 일어서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여전히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나와 함께 하는 아이들과 마주하며
이 아이들이 또 다른 영훈씨가 되어
세상과 이야기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며 나의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
세상에 더 많은 영훈씨의 걸음이 이어가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