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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Nov 03. 2024

빛의 마법에 걸리다.

우리들의 낭독극 공연을 기대하며

“친절이 할머니, 올해 연세가 얼마셔요? “

“57년생이어요. 57년.”

“57년? 그럼 우리 엄마랑 동갑인 거네요. 우리 엄마가 57년 닭띠. 닭띠 맞죠? “

“맞아요. 내가 57년 닭띠.”


그러고 보니 우리 학교에 우리 엄마 친구들이 많다. 57년 닭띠들이 곳곳에 부지런히 살아가고 계신다.


철마다 보리수도 따다 주시고, 옥수수 세 자루 쪄서 나를 챙겨주시는 유치원 하모니 선생님도,

아들과 며느리는 돈 버느라 타지에 가고 손주 키우고 계신 친절이 할머니도 모두 57년 생이시다.

우리 엄마 친구들이 이렇게 왕성환 활동을 하고 계시면서 학교에도, 가정에도 도움을 주고 계시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감사하고 반갑다.


어제와 오늘 내 마음과 머릿속에 아주 선명하게 기억되는 ‘빛’이 있다면 바로 친절이 할머니의 핸드폰 불 빛이다.

늘 일 벌이기 좋아하는 나와 은미는  이번에도 또 일을 벌였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었고, 우리 학교에 가장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바로  보호자 문해력 교실!

대다수가 다문화가정인 우리 학교. 그 상관관계가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는 몰라도 전교생의 문해력이 많이 부족한 모습이다.

아이들만 탓할 수 없고 우리는 그 시작점이 어디인지 잘 알고 있다.

가정과 학교가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더 이상 마냥 손 놓고 있어서도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우리이다.


총 4회기의 교육을 계획하며, 한글, 어휘, 문해력 지도에 대해서 교육을 하기로 하며

나는 생각 없이 “우리 그럼 이 어머님들과 같이 낭독극을 하면 어때?”라는 의견을 던졌다.

그렇게 우리는 마주했다.


교사 2, 보호자 3.

참으로 단란한 모습이다. 교사와 보호자라는 관계는 이미 이 자리에 성립되지 않는 그런 모임이 되었다.


문해력에 관한 연수를 마치고, 낭독극 공연에 대한 계획을 이야기하는 순간

“아우~ 나 못해. 나는 돋보기 안 쓰면 못 읽어요. “ 친절이 할머니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시고

“나는 못해요. 내가 무슨 공연을 해요.” 부끄러움 많은 타조 엄마도 거두신다.

“나는 아직 한글 잘 못 읽어요.” 필리핀에서 온 둥이 엄마가 말씀하신다.


“그런 건, 없어요. 아이들도 이미 몇 번을 했는걸요? “


그렇게 연습이 시작되었다.

원고를 뽑아 드리고 처음 맞춰보는 자리이다.

네? 아까 못한다고 하신 분들 어딜가신거죠?


필리핀에서 온 둥이 엄마가 해설을 맡았다. 다소 문장이 길지만 또박또박 읽어 내려간다.

우리 엄마랑 동갑인 57년생 친절이 할머님은 고양이 역할을 맡으셨다. 돋보기 없이는 못한다고 몇 번을 큰소리 내시더니  슬그머니 핸드폰 불빛을 켜시고는 글을 보신다.

중국에서 온 타조 어머니는 할머니 역할을 맡았다.

세상에, 어쩜 이렇게 발음이 또렷하신 거지? 너무나 똑소리 나는 할머니다. 야무지다.


첫 페이지가 다소 수줍고 자신이 없었다면 한 장, 두 장 페이지가 넘겨질수록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자신이 붙는다.

그렇게 첫 번째 연습을 마쳤다.


나의 아들과 동갑인 손주를 돌보는 할머니는 늘 씩씩하다.

이 공연에서도 손주를 위해 핸드폰 불빛을 반짝이며 글을 읽어 내려간다.

평소에도 모두에게 친절한 아이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그 불빛에 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손주를 향해 늘 반짝이는 할머니의 마음을 아이는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을 반짝이는 그 사랑에 아이도 늘 모두를 향한 친절로 사랑으로 답을 한 것이겠지.


만족스러운 연습을 마치고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후,

교실을 정리하고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그리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고, 책을 읽는 순간에도

할머니의 핸드폰 불빛이 나를 비춘다.


어렵지만 해보고자 하는 그 불빛

두렵지만 용기 내는 그 불빛

세대를 아우르는 그 불 빛

관계를 하나로 엮어 주는 그 불 빛


자신의 몫을 다하기 위해 비추던 그 핸드폰 불 빛이 내 마음을 비추었다.

더욱 따뜻한 사람이 되라고, 아이들에게 더 눈을 맞추라고 그렇게 이야기한다.

조금 더 괜찮은 교사가 되라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함께 나눌 이야기가 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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