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별이 좋다. '별'이라 발음할 때의 입술과 혀의 감촉, 귀에 꽂히는 소리까지 미치게 좋다.
어릴 때부터 별이 좋았다. 별이 나오는 동화나 노래, 별 모양 장신구, 별 그림이 있는 옷과 가방, 심지어 건빵 속 별사탕까지 좋았다. 학교 다닐 때 유행하던 별 접기도 놓치지 않았다. 색색가지 별을 꼼꼼하게 접어 예쁜 유리병에 모아두었다가 친구들에게 생일선물로 줄 때의 기쁨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별이 좋던 내가 실망한 건 별의 정체를 처음 알게 됐을 때인데, 예컨대 별은 거대한 수소 덩어리가 타고 있는 것이라든지 스스로 타는 천체가 별이라든지 등의 과학적인 정의를 듣고서다. 과학이나 수학의 지식을 빌어 감히 정의할 수 없는 막연한 무엇, 세상을 초월한 신비스러운 존재가 별일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내겐 정말 재미없고 맥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별에 대한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정체가 무엇이든, 별은 내게 여전히 빛나는 존재였다.
초등학교 1학년 무렵이었다. 동화책을 보다가 문득, 주인공처럼 나도 달님 별님에게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소원 몇 가지와, 꼭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간절한 부탁도 종이에 적어 베란다 장독 위에 놓아두었다. 별들이 달빛을 조명 삼아 내 편지를 보며 서로 속삭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별 이상한 짓을 다한다는 엄마의 핀잔을 듣고야 말았지만, 그날 밤의 설레던 기분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성경에도 별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예수가 태어난 곳으로 동방 박사들을 인도했던 별 이야기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쌔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 마태복음 2:9-10). 그래서일까, 그 무엇보다 밝게 빛났을 그날 밤 베들레헴의 별을 대신해 별 장식과 전구들이 크리스마스트리에서 반짝이는 건.
별을 좋아하는 내 마음과 책 속 캐릭터가 만나 스파크가 일기도 했다. <어린 왕자> 같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어린 왕자가 여행한 행성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미지의 세계를 그려보고,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읽으며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을 담았을 시인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도 했다.
어릴 때 친구들과 인형놀이를 하던 생각이 난다. 된통 아프고 나서 힘든 검사들을 견뎌야 했던 일곱 살 무렵이었다. 아빠가 사주신 마론 인형을 시작으로 인형 옷, 침대, 옷장, 갖가지 소품들을 모았다. 같은 마론 인형이나 바비 인형을 가진 친구들과 모여 놀았는데, 각자의 소품과 인형을 예쁘게 꾸미고 배치하는 것으로 놀이를 시작하곤 했다. 우리는 즐겁게 이야기하며 매우 바쁘게 이 일을 수행했다. 가구는 어떻게 배치하는 게 좋을까, 옷은 어떻게 진열하는 게 좋을까, 인형들의 오늘 일정은 무엇 무엇으로 할까 등등을 진지하게 의논했다.
자, 세팅이 근사하게 마무리되고 본격적으로 뭔가를 해야 할 때가 왔다. 우리의 인형 친구들이 파티에 간다는 설정을 해놓았으니 입을 옷을 골라야 하는데, 친구들은 아무도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재미있었고 만족스러웠다. 즐거운 상상과 수다 속에 인형을 만지고 서로의 소품을 구경하고 아기자기한 공간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놓은 예쁜 세상을 그저 바라보며 간식을 먹거나 배를 깔고 누워 만화책을 보기도 했다. 그때 나는 배운 것 같다, 어딘가를 향해 가는 기쁨과 기다림의 설렘을. 인형 친구들이 꼭 파티에 가지 않아도, 파티를 상상하고 준비하는 과정만으로도 재미있다는 걸.
별도 그런 것 같다. 곧 닿을 수 없더라도, 내 것이 되지 않더라도, 그 존재가 그냥 좋은 것. 그가 있으므로 내 안에 추억과 동경과 그리움이 있어 다행이라 여기게 되는 것.
그러므로 별은 내게 자유, 별은 내게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