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 New York 21
지난 주말 맨해튼 파크애비뉴에 있는 포토그라피스카 사진박물관(Fotografiska New York: The Contemporary Museum of Photography, Art & Culture)에 갔다.
포토그라피스카가 들어있는 건물은 눈에 띄게 고전적이고 아름다웠다. 1894년 지어진 이 건물은 처음에는 교회 선교 빌딩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사람들의 모임 장소로 디자인된 이 빌딩의 벽들은 지금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에 널리 알려진 사진과 예술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여섯 개 층 전시장 중 6층은 닫혀 있었고 2층은 레스토랑, 1층은 기념품 가게와 카페였다. 나는 티켓을 사며 받은 안내에 따라 위층부터 둘러보기 시작했다. 외관과는 다르게 건물의 내부는 몹시 현대적인 느낌이 드는 신기한 곳이었다.
박물관에 머무는 내내 나의 눈길을 붙잡고 나의 머릿속을 끊임없이 가동했던 작품들은 비비언 마이어(Vivian Maier; 1926-2009)의 것이었다. 그녀는 프랑스계 미국인이며 20세기의 뛰어난 사진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박물관 4층과 5층에는 1950년대 초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의 그녀의 작품 200여 점이 전시돼 있었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모습과 빗나간 아메리칸드림의 이미지가 담긴 사진들이었다. 거리의 풍경, 인물사진, 자화상 등의 기록을 통해 그녀가 살던 시대를 생생하게 엿볼 수 있었다.
비비언 마이어의 자화상은 그녀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한 올의 실과도 같다. 그녀는 빛과 그림자, 이미지의 윤곽과 투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사진 속에 집어넣어 시각적이고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
나의 이야기를 글로 쓸 때뿐 아니라 픽션을 쓸 때도, 거기 어딘가 나 자신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떠올랐다.
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거리는 관찰하기에 이상적인 장소다. 맨 처음 살던 뉴욕, 1951년에서 1956년까지 살았던, 그리고 2009년 생을 마감한 곳 시카고 등, 비비언 마이어는 자신이 살던 도시의 노동자 계급(working-class) 이웃에 관심이 많았다. 그녀는 거침도 지침도 없이 도시의 거리들을 모든 앵글을 동원해 탐험하고 사람들의 움직임을 포착해 냈다.
삶의 무대에서 부지불식간에 인물들이 각자의 역할을 해냄으로써, 일상의 평범한 순간이 사진 속 특별한 순간으로 바뀌었다. 한 휴머니스트 사진가의 인간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긴 사진들이었다.
사진을 보러 온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다. 사진 속에서 그리운 시절을 찾아보려는 듯한, 같이 온 친구와 함께 즐거운 회상에 빠져드는 듯한 그들에게서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함이 보였다.
무려 40년 동안 가정교사로 일했던 비비언 마이어는 아이들의 생활에 관심이 많았다. 감정이 담긴 아이들의 얼굴, 그들이 짓는 표정, 몸짓, 놀이 등 그들만의 세상을 빠짐없이 기록하려 했다.
어린 시절은 상상과 환상이 일어나는 곳이며 놀이와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오랜 시간 아이들과 가까이 지낸 덕분에 그녀는 어린아이와 같은 감수성을 가지고 세상을 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관찰하기보다 발견하고, 인생의 자유롭고 가능한 측면들을 바라보려 한 그녀였으니 말이다.
1960년대 초 미시간 호숫가에 살고 있을 무렵, 비비언 마이어는 사진의 구조를 바꾸기 시작한다. 영상이 사진의 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한 그 시대의 영향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녀는 움직임의 연속성을 만들기 위해, 영화적 특성을 사진에 대입하듯 스냅샷 기법을 활용했다. 움직임과 시간의 흐름을 사진 속에 재현하기 위해 짧게 여러 번 찍는 방법을 썼다. 이 시기 작업들은 그녀의 작품활동이 진화하는 디딤돌이 되었다.
비비언 마이어의 흑백사진 작품들이 침묵과 같다면, 그녀의 컬러사진 작품들은 소음이 가득한 공간과도 같았다. 그녀가 추구한 컬러의 음악적 컨셉은 작품들 속에서 도시의 비트, 시카고 거리를 채우는 블루스가 되어 울리고 있는 듯하다.
전시된 작품은 컬러보다 흑백이 더 많았다. 그리고 그녀가 표현한 사진 속 시대와 흑백은 잘 어울려 보였다.
나는 몇 개의 흑백사진에서 마치 환영처럼 컬러를 느끼기도 했는데, 이렇듯 나만의 색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게 흑백사진의 매력이 아닐까 싶었다.
비비언 마이어의 작품을 감상하고 1층으로 내려오니 카페에 앉아있거나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거대한 프레임 속 작품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세계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던 탓이리라.
지금 쓰고 있는 글도 기록으로 남아 먼 훗날 나 자신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특별한 시간을 선물해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비비언 마이어의 작품들이 지금 우리에게 그러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