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a Lee Sep 29. 2024

가을, 책

New York New York 20

북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브루클린 다운타운에 갔다. 그런데 구글 지도를 들고 아무리 헤매봐도 북 페스티벌은커녕 책 한 권 종이 한 장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날짜를 착각한 거였다. 이런, 지하철을 갈아타며 40분이나 걸려 왔는데, 다리에서 힘이 쭉 빠져버렸다.

속도 타고 목도 타서 근처 카페를 찾던 중, 한글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 집.' 뭐 하는 델까 호기심에 이끌려 가까이 가보니 안에 사람과 책이 가득했다. 아시안 아메리칸 북 컨벤션(Asian American BookCon)이 열리고 있었다. 하나 집(Hana House)은 전통적인 한국 음식과 아시안 퓨전 음식을 파는 식당이며 막걸리 브루어리로도 유명하다. 친선모임, 모금 행사, 인디 영화와 다큐멘터리 영화 시사회 등 이벤트도 자주 열리는 곳이다.


아시안 아메리칸 북 컨벤션이 열린 이곳에는 아시아인의 혈통을 갖고 미국에서 태어난 작가들의 책과 아시아 작가들의 번역본이 전시돼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동화책이었다. 작가들이 책을 사는 사람들에게 직접 사인을 해주기도 하고, 아동도서를 출판하는 독립출판사의 직원들이 사람들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주고 책도 골라주었다.


독립출판사 직원들, 작가들, 북클럽을 운영하는 사람들, 프린팅 전문업체 직원 등이 모여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은 온통 책에 대한 열기로 가득했다.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아랍 작가들의 책이 많이 보였는데, 그중에는 이미 널리 알려진 책들도 있었다.

미셸 자우너(Michelle Zauner)의 <H마트에서 울다(Crying in H mart)>
레베카 쿠앙(R.F. Kuang)의 책들과 할레드 호세이니(Khaled Hosseini)의 <연을 쫓는 아이(The Kite Runner)>
한야 야나기하라(Hanya Yanagihara)의 <A Little Life>


아시아 작가들의 책을 읽고 서평을 나누며 홍보의 역할도 하는 북클럽 부스도 있었다.


Yellow Peril Books 부스에서 황보름 작가의 책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발견했다. 브루클린의 여러 서점과 협업하여 도서 유통에 참여하고 있는 Yellow Peril Books는 내년 5월 브루클린에 독립서점을 열 예정이며, 아시안계 미국 작가들의 책이 서점의 70퍼센트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한 중국 작가가 다가와 다음 달 나올 자신의 동화책을 Yellow Peril Books를 통해 판매할 수 있겠냐는 제안을 하자, 직원들이 그 자리에서 흔쾌히 수락하기도 했다.

내 옆에서 부스를 둘러보던 사람이 황보름 작가의 책을 가리키며 "이 책은 가는 곳마다 다 있어요. 이 책이 마치 나를 따라다니는 것 같아요" 하며 미소 짓자, 직원 중 한 사람이 "회사를 그만두고 독립서점을 꿈꾸며 고민할 때 이 책을 읽고, 내가 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감했어요" 하고 말했다. 옆에서 듣고만 있었는데 왠지 가슴이 뛰었다.

황보름 작가의 책이 놓여있는 Yellow Peril Books 부스


이모저모 둘러보며 책의 다양한 판매 방법과 유통 경로에 대해서도 들어볼 수 있었다. 우연히 얻은 횡재가 아닐 수 없다.

미국 내 아시아 문화권의 형성과 그 발전되는 모습을 접하니 뿌듯했다. 한편으론 멋진 책을 쓰고 국경 너머 사람들에게까지 사랑받는 작가들이 부러우면서, 다른 한편으론 그들을 보며 꿈꿀 수 있다는 게 행복하기도 했다.


오늘 토요일은 하루종일 비가 내린다.

무엇을 읽고 무엇을 쓸까 설레는 건, 순전히 어제의 북 컨벤션과 오늘 내리는 가을비 탓이다. 손에 책이 들려있지 않아도, 아직 머릿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스토리가 있어도, 오늘은 이 설렘을 즐기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