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요리의 절묘한 조합, ‘줄리앤줄리아’
코로나 시대의 취미
모두 멈춰야 할 때 라니. 시집이나 소설에서 자주 만나던 문장이다. 그러나 이제는 가까운 현실이 되어버렸다. COVID19의 폭발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밖에서의 만남과 다채로운 경험의 즐거움을 추구하던 일상은 집이라는 공간으로 무대가 좁아져버렸다. 단지 휴식과 재충전의 공간이었던 집이 즐거움을 찾아야 하는 공간으로 역할이 확장됐다. 그전까지 집에서만 노는 것이 익숙지 않았던 터라, 어떻게 놀아야 집에서 지루하지 않게 놀 수 있을까 고민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콘텐츠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단어는 한정적이다. '영화', '드라마', '홈쿡', '청소', '뒹굴거림', '책 읽기', '티타임' 등. 영화와 드라마는 종종 보지만, 하루 종일 보기엔 힘들지. 홈쿡은 글쎄, 의욕이 생기지 않네. 청소라고는 눈에 보이는 먼지를 쓸어보는 정도이므로 패스. 뒹굴거림이나 책 읽기, 티타임은 지금도 매일 하고 있는 걸?
소파에 드러누워 어떻게 창의적으로 놀 수 있는지 고민하다가 문득 아이디어가 스쳤다. 저 단어들을 연결해보면 어떨까. 의욕이 생기지 않아 도전의 문턱이 높았던 홈쿡을 영화와 연결한다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된 생각으로 넷플릭스에서 요리 영화를 뒤지다 '줄리앤줄리아'를 발견하였다.
영화, 줄리앤줄리아
줄리앤줄리아는 요리하는 두 여자의 이야기다. 좀 더 자세히 적자면 요리, 그리고 기록을 통해 인생의 길을 찾는 얘기라 할 수 있겠다.
이야기의 시작은 줄리아다. 줄리아는 외교관 남편의 부인으로, 남편이 프랑스로 발령 나게 되며 고향인 미국을 떠나 프랑스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상을 지겨워하던 줄리아는 자신이 가장 즐거울 때가 맛있는 걸 먹고, 요리할 때임을 알고 무작정 프랑스 명문 요리학교인 르꼬르동 블루에 입학하게 된다. 남성 위주의 셰프 문화 이기에, 르꼬르동 블루의 선생님과 수강생들은 여성 수강생인 줄리아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심지어 줄리아는 전문적인 요리 영역에서 초심자가 아닌가. 그러나 줄리아는 이러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양파 썰기 장면에서 그녀의 뚝심에 감탄했다- 우수한 점수로 르꼬르동 블루를 졸업, 전설적인 프렌치 셰프로 거듭난다. 줄리아는 자신의 요리 경험을 담은 미국인들을 위한 프렌치 요리 레시피 책을 낸다. 이 책이 바로 줄리아와 줄리의 연결점이 된다. 줄리는 뉴욕에 사는 콜센터 직원이다.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주위 잘 나가는 친구들과 비교되는 일상과 생활고에 지쳐있다. 요리가 취미인 그녀는, 지루한 일상을 탈출하기 위한 방법으로 요리 블로깅을 시작한다. 팬심으로 시작한 줄리아의 레시피를 따라 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연재하는 블로그. 1년 동안 524개의 레시피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줄리의 블로그는 점점 유명세를 타게 된다.
영화의 레시피로 만드는 요리
줄리가 되어보기로 했다. 줄리처럼 요리 블로그를 시작한 건 아니지만, 그녀가 한 요리에 영감을 받아 홈쿡을 했다. 요리 유투버 꿀키(@꿀키honeykki)님의 레시피를 참고했다.
재료를 준비한다. 닭가슴살 두 덩이에 신선한 버터, 마늘 두어 톨, 양송이버섯 한팩, 이탈리아 파슬리 한 줌 그리고 먹다 남은 레드와인 조금. 진한 맛이 느껴지는 페이장 브레통의 크림은 빠질 수 없는 주 재료이다. 닭가슴살을 소금 후추로 밑간 하고, 양송이와 마늘을 적당한 두께로 자른다. 적당한 열기로 데워진 팬에 버터를 올리니 더운 여름의 아이스크림처럼 녹는다. 밑간 한 닭가슴살을 팬 위에 얹으니, 고소한 냄새와 함께 버터에 닿아 살코기가 익는 기분 좋은 소리가 들린다. 팬을 기울이면 넉넉히 녹인 버터가 아랫부분에 고인다. 녹은 버터를 부지런히 닭고기 위에 끼얹어가며 고루 익힌다. 닭고기의 양 표면이 먹음직스러운 갈색이 되면, 접시에 옮겨 담아 한 김 식힌다. 그동안 육즙과 버터가 엉겨 붙은 팬에 양송이와 마늘을 볶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재료가 부드러워지면, 준비한 레드와인을 넣는다. 와인이 졸아드는 소리. 레드와인을 머금어 양송이의 표면이 윤기 나는 젤라틴처럼 붉게 반짝이면 크림을 팬에 붓고 접시에서 한 김 식은 닭가슴살을 넣는다. 간을 맞추기 위해 살짝 맛을 보니 눈이 동그래지는 맛이다. 식탁에 올리기 전 마지막 스텝, 향기로운 이탈리안 파슬리를 툭툭 찢어 흩뿌린다.
완성된 요리를 한 입 떠먹으니 녹진한 버터와 크림이 입을 감싼다. 버섯의 풍미와 살짝 스치는 와인향이 일품이다. 향기로운 냄새와 맛으로 풍족해지는 기분. 혀끝을 맴도는 고소한 버터향에, 마음에 남는 영화의 명대사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Julie, you are the butter to my bread, and breath to my life. 당신은 나의 버터이자 나의 숨이다”
마음이 따듯해지는 홈쿡
홈쿡, 익숙한 단어로는 집밥. 단어에서 훈김이 난다. 집밥이라는 단어에는 따듯하고 몽글한 마음이 담겨있다. 어스름한 저녁이면 가족을 위한 식사를 분주히 준비하는 엄마의 뒷모습에.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운 땀을 흘리며 한 끼를 준비하는 사람의 뒷모습에 그 마음이 담긴다.
요리를 한다는 일이 아직은 멀게 느껴진다. 엄마 밥을 먹고 자란 시간의 관성인지, 주는 것보다 받기에 더 익숙하다. 이제는 받기에 익숙한 만큼 주는 것에 취미를 들여보고 싶다. 요리를 빌려 사랑하는 이에게 따듯하고 몽글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줄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그의 버터이자 숨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