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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이차 Dec 22. 2020

향기의 중요성

마음을 움직이는 향기의 힘

   책을 좋아한다. 차가운 액정의 전자책보다는 손 끝에서 사락사락 넘어가는 종이책을 좋아한다. 집에서 자기 전 집어 드는 책도 좋지만, 서점에서 신간 코너를 둘러보며 이것저것 맛보며 읽는 책을 좋아한다. 서점에서 읽는 책은 꼭 사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어서 좋고, 평소 읽지 않는 분야의 책도 둘러볼 수 있어서 좋다. 또한 서점에서는 색색깔의 표지 디자인들을 주욱 훑으며 이슈가 무엇인지 빠르게 접할 수 있다. 부동산이 활황이라는 말은 뉴스의 한토막을 접할 때보다 경제분야의 매대가 부동산 관련 서적으로 가득 채워져 있을 때 더 와닿는다.


   서점에서 읽는 책을 좋아하는 이유 또 한 가지. 서점에서는 책 향을 느낄 수 있다. 종이 더미와 잉크가 조합되어 나는 콤콤하고 편안한 냄새. 서점 매장에서 특별히 조향한 아로마 향과 이 책 냄새가 어우러져 향기롭다. 개인적으로 영풍문고보다 교보문고를 더 좋아하는데, 그 이유 중에는 향기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자주 가는데, 매장의 여러 출입구 중에서도 나무 계단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가장 좋아한다. 나무계단을 내려가 회전문을 지나면 콧 속으로 교보의 향이 밀려들어온다. 이 향을 맡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교보에서 여느 때처럼 신간 코너와 북모닝 코너를 둘러보다가 제목에 이끌려 집어든 책이 있다. 로베르트 뮐러 그뤼노브의 '마음을 움직이는 향기의 힘'. 책 향이 좋아 교보를 찾는 것처럼, 향기에 꽤나 예민한 편이라 느끼기에 궁금증이 일어 책을 집었다. 표지에 적혀있는 부제가 책 내용을 설명한다. '인간관계부터 식품, 의료, 건축, 자동차 산업까지 향기는 어떻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가?'

"향에 스며든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향기를 다룬 책답게 목차가 마치 향수처럼 탑, 미들, 베이스 노트로 구성된 점이 독특하다.

향기는 기억을 일깨운다. 미약하게 스쳤던 향이 몇 년, 혹은 수십 년이 훨씬 지난 과거 기억의 한 자락을 순식간에 일깨운다. 향에 스며든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저자가 사과파이 향을 떠올리며 할머니의 부엌을 기억하는 것처럼, 나는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톡 쏘는 산초 향에서 떠올린다. 서울에서 딸네 가족이 내려올 때마다 반가운 마음에 손수 추어탕을 준비하시던 할머니.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 집을 들어서면, 집에서는 항상 추어탕에 넣는 산초 냄새가 진하게 났다. 지금까지도 추어탕집을 들어서면 명절날 할머니 집에 들어서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손에 잡힐 듯 떠오른다. 향기가 불러오는 기억은 다양하다. 향수는 그때 그 시절로 기억을 돌리는 강렬한 수단이다. 보랏빛 동그란 통의 에끌라 드 아르페쥬를 뿌리면 대학생 언니의 향수를 몰래 뿌리던 고등학생 시절이 떠오른다. 랑방의 메리미는 설레던 대학 신입생 때의 기억. 개학의 설렘이 담긴 봄날의 북적이는 대학가를 떠올리게 한다. 킬리안의 굿걸 곤 배드를 맡으면 겨울철 그와 걷던 거리를 떠올린다. 손목에 살짝 뿌린 향이 사라지는 게 아쉬워 다음날 아침까지 킁킁대던 기억. 시작하는 사랑의 설렘이 담겨있어 특별하다.


   책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향을 활용하는 일의 중요성을 다룬다. 오렌지 껍질과 정향을 이용하여 집의 따스함을 만들거나, 재스민향을 활용하여 수면의 질을 높이는 방법. 페퍼민트향을 이용하여 다이어트를 하는 방법 등 생활에 가까이 스며드는 내용뿐 아니라, 비즈니스에서 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효과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교보의 책과 유칼립투스 향, 포시즌스 호텔에 들어서면 느껴지는 시더우드 향 등 특정 향기는 브랜드를 직접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즉, 브랜드를 대상의 무의식에 각인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은 향기다. 브랜드를 대상에게 각인시키는 것 이외에도, 향기는 오프라인 매장에 방문하는 고객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다. 책에서도 은행 지점 실험의 예시를 들어 이 부분을 다룬다. 은행의 몇 개 지점에는 향을 뿌리고 몇 개 지점에는 향을 뿌리지 않은 상태에서 내점한 고객들에게 지점의 인상에 대해 묻는 설문조사를 한다. 설문 결과, 향이 나는 지점에서 '신뢰감이 가는', '호감이 느껴지는' 등의 긍정적인 개념이 빈번히 언급되었다. 즉, 향기는 방문자의 긍정적인 감상을 이끄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최근 재미있게 본 드라마, 에밀리 인 파리에서도 신규 론칭하는 호텔에 어울리는 조향을 영업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아파트를 팔고 싶으면 쿠키 냄새가 나게 하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에밀리의 엘리베이터 스피치가 인상적이었다. 오프라인 비즈니스를 구상할 때, 방문자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을 때는 반드시 향기가 가진 중요성을 고려하여 효과를 배가시켜야겠다. 사업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향기가 가진 힘을 통해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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