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마을도서관 도토리 운영위원회 회의
어쩌다 꿈꾸는마을도서관 도토리와 인연이 되었는지(기억이 또렷하지만) 여하튼 관장님께서 북토크나 다른 데 가서 나를 도토리도서관 활동가라고 소개하면 된다고 했다. 명함이나 파주고 그런 얘기를 하시던지, 참… 그만큼 내가 도토리도서관에 하는 일이 많다. 한 달에 한 번 모여 회의하는 운영위원회, 두 달에 한 번 도서관 토요일 관장 대행(?) 사서 대행(?) 봉사활동, 야생화 그리기 동아리 진행, 글쓰기 모임, 청소년 분야 책 선정 위원회, 마지막으로 도서관 일 년 농사 길 위의 인문학 기획팀까지. 소소하게 감자처럼 손이 필요할 때 도와주러 갔다가 이만큼이나 참여하고 있으면 정말 명함이라도 파주던지.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에 두 종류로 사업 공모를 신청했다(올해부터는 예산 삭감으로 길 위의 인문학이 되었다. 박물관, 서점 신청 가능). 주제를 정해서 강연과 탐방을 하는 일반적인 프로그램, 글쓰기 기반으로 에세이 내고, 그림책 만드는 결과물까지 내는 프로그램 두 개를 몇 년 동안 진행했다. 작년에 강연과 탐방하는 프로그램 선정에 떨어졌다. 시작이었다. 올해 우리는 재미난 프로그램을 기획했지만 떨어졌다. 두 개 모두 똑! 떨어졌다. 우선 관장님이 침울해했고 나머지 기획팀 사람들은 모르겠다. 나는 반반이었으니까. 길 위의 인문학을 몇 년 동안 꾸준히 준비해 온 우리 팀이니까 매뉴얼이 있다. 공모 기간이 4월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3월부터 회의에 들어간다. 아이디어를 내고 프로그램을 짜서 공모에 신청한다. 작년과 올해와 같은 불운이 없던 해는 선정되면 모시고 싶은 작가에게 메일을 보내며 섭외에 들어갔다. 6월부터 강연이 들어가 보니 작가 섭외와 강연 일정까지 촉박해 작가에게 메일이 늦게 오거나 거절의 메일이 오면 불안하고 초조하다. 다음은 또 어느 작가에게 메일을 보내야 하나. 작가 메일을 받기까지 며칠이 걸릴 수도 있고 말이다.
우리는 올해 매뉴얼을 바꾸었다. 공모를 신청함과 동시에 작가 섭외를 동시에 진행했다. 일이 꼬이려고 하면 어디서부터 꼬이는지 모르듯이 올해 작가 섭외는 다른 해에 비해 순조로웠다. 모시기 어려운 작가들도 긍정적이라 기뻤고. 그런데!! 결과 발표가 몇 주 연기되더니 단톡방에 뜬 떨어졌다는 결과에 순간 멍했다. 결과와 함께 관장님께서 섭외된 작가에게 강연 취소 메일을 다시 보내달라는 알림이 왔다. 아, 매우 난감하다. 정확한 단어는 불편하다. 내가 거절하는 건 뭐든 불편하다. 더구나 모시기 어려운 사람들 아닌가. 나는 2명 작가 섭외를 맡았는데, 뭐라 메일을 보낼까 고민하는 사이 다음 날, 작가 한 분이 문자로 연락 왔다.
“길 위의 인문학 선정 결과가 나온 것 같아서 강의 진행 여부를 문의드려요.”
이런, 내가 먼저 보내려고 했는데.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문자를 봤다. 밥 먹는 내내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메일로 알려드리려고 했는데 문자로 알려드려도 되나. 나는 도서관에서 상주하며 일하는 활동가가 아닌 다른 직업이 있는 자원 봉사자에 가깝다. 이 작가는 내가 도서관 직원이라고 생각하고 계실텐데, 소식을 왜 이렇게 늦게 알려주냐고 생각하면 어쩌지. 아, 정말 곤란하다. 첫 문장은 뭘로 시작해야 되나.
직장 동료들과 밥을 먹으면 내가 항상 숟가락을 가장 빨리 놓는다. 밥 먹는 속도가 이들보다 빠르다. 문자를 열고 답장을 하기 위해 자판을 쳐다본다. 뭐라고 쓰지, 뭐라고 쓰나.
“안녕하세요, 작가님. 도토리도서관 담당자 김미진입니다. 도서관 관장님께 연락받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도서관이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에 선정되지 않았습니다. 기쁜 소식으로 연락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다음에 다시 좋은 기회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라고 답했다.
감사하게도 작가는 다음에 꼭 좋은 기회가 있을 거라고,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다시 해 주셨다. 정말 감사했고, 긴장된 어깨가 풀렸다. 기획팀 단톡방에 상황을 알렸다. 이제 다른 작가 한 분 남았다. 관장님도 잘 말씀드려달라고 했다. 더 어렵다. 메일을 보낼까, 문자를 보낼까 다시 고민했다. 하루가 더 흘러 문자를 남겼고, 마찬가지로 잘 마무리되었다
우리와 주제가 같아서 강연이 겹칠 것을 걱정했던 나에게 먼저 연락 온 작가가 우리 말고 다른 도서관은 선정되어 강연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궁금해서 길 위의 인문학 홈페이지에 들어가 검색했다. 도서관 이름은 모르지만 주제를 알기 때문에 검색어로 찾아봤다. 거기도 되지 않았다. 선정된 주제는 무엇인지 읽어 내려갔다. 와!! 진짜 고루한데. 이런 것만 붙었다고?! 길 위의 인문학 의미 모르나. 길 위잖아. 길 가다가 만나는 사람이 나의 스승이 될지 모르는 우연이 있는 곳. 그런 게 길 위 아니야!! 뭐 죄다 역사, 철학이냐고. 정형화된 교육은 입시로 끝냈어야 되는 거 아니냐고. 언제까지 우리나라는 이런 것들만 예찬하며 살런지. 글을 적으니 부화가 나네. 이런 거 할 거면 길 위의 인문학 꼭 해야 하나. 그만하고 싶다. 재미없다. 우리 주제가 결코 일상의 인문학과 멀다고 생각하지 않고 참신했으므로 심사위원 탓해야겠다.
심사위원 탓은 이쯤 하고 실질적인 생각을 해보자. 그럼 올해 도서관 굵직한 프로젝트가 없는데. 나, 도서관 덜 가도 되나. 앗싸!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을 거의 5개월 동안 진행하는 동안 가장 먼저 요가를 못 간다. 수강권 끊어놓고 이 기간에는 거의 반은 날리다시피 한다. 못 채운 부분을 11월 이후부터 길 위의 인문학 강연 전까지 다닐 수 있는 대로 안 빠지려고 한다. 이번 해도 마찬가진데, 스쿼시에 빠져있는 요즘 운동 못 가면 정말 아쉬울 것 같았다. 강연 요일을 화요일로 정하려고 하시길래 나는 안 된다고 했다. 은근슬쩍 발 빼려고 했는데 강연 날짜를 월요일로 바꿨다. 그럼 또 요가를 요리조리 옮겨가며 나가야 한다. 그래도 유동적인 요가니까 다행이다. 강연이 취소됐으니 운동 고민이 좀 사라지겠는데. 올해 정말 지방레벨 낮출 절호의 찬스는 어제 낮까지였다(하하하하).
저녁 회의를 하며 ‘길 위의 인문학’ 결과에 대한 갑론을박(?)을 펴다, 우리끼리 할 수 있는 작은 모임들을 짜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관장님은 회의를 위해 챗gpt에게까지 물어보셨다. 긴 글로 무언가를 장황하게 알려줬지만, 이미 우리가 다 알고 있고 하고 있는 거 아닌지 갸우뚱하며 들었다. 여러 가지 안이 나왔고 구체화시켜 조만간 프로그램을 열 것 같다. 홍보를 위해 현수막을 활용할 예정이다. 앗!!! 또 사람들 많이 오는 거 아니야!!!
아!! 나 진짜 도서관에 새로운 사람 만나고 하는 거 은근 부담스러운데. 나의 하반기는 여전히 도서관과 함께 하겠네. 그렇지 뭐, 내가. 일을 줄이기는커녕.
어제 운동 끝나고 도서관 갔더니 김밥이 없다. 회의 때마다 제공되는 김밥 한 줄. 회의는 의외로 길어 10시 다 되어 끝났다. 집에 가려다 너무 배고파서 도서관 밑에 1층 김밥천국에서 제육덮밥 먹고 집에 갔다. 진짜! 어제 너무 했다. 도토리 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