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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테비 Jun 14. 2024

갑자기 퇴직 통보

퇴사를 쓸 줄이야(1)

아.. 지금 교수에게 전화해야 되는데. 언제가 좋을지 계속 고민 중이다. 나에게 2024년 5, 6일은 힘이 쭉쭉 빠지는 달이다. 누구에게도 나는 성실하고 꾸준함을 이야기했는데, 연재를 몇 주 째 거르고 있으니. 지금도 꾸역꾸역 쓰기 시작했다. 다시 글을 쓸 힘을 받으려면 한 번이라도 써야 하니까.


5월 중순 우리 집 거북이가 죽었다. 온 가족이 실의에 빠진 듯 일주일은 거북이 생각으로 우울했다. 이것과 함께 실험은 많았다. 논문 투고 막바지라 재요청 들어온 실험을 다시 한다고 실험실에서 엉덩이 한 번 붙이지 못하고 몸을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거북이 병원 가려고 반차를 쓰던 날, 실험실 분위기가 싸했다. 나만 몰랐을 뿐. 다음 날 실험실 박사가 늦은 퇴근 하면서 샌드위치 먹고 가자고 했다. 카페에 들어갔고 샌드위치가 되지 않아 진열된 빵을 고르고 음료까지 주문을 마쳤다. 내가 계산을 하려고 했지만 극구 말려서 계산은 박사가 했다. 2층에 자리 잡고 받아온 음식을 놓고 사진까지 찍었다. 참... 사람 앞 날 어떻게 될지 모른다더니. 지금 생각하면 분위기 파악 못하고 좋다고 먹었나 싶네. 박사가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순간! 알았다. 올 것이 왔구나. 그날이구나. 지금의 대통령은 R&D 연구비를 무자비하게 삭감했고, (근데 지금 석유 탐사? 에 조 단위를 쓴다며?!!) 2월에는 급기야 인건비 삭감 이야기를 들었다. 9프로(거의 10프로잖아) 삭감되고 차액은 지자체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20년 가까이 학교 실험실에 있으면서 인건비 삭감은 또 처음 듣는 말이다. 그렇다고 나의 도시 시장은 어림 반푼어치도 해 줄 생각 없는 사람일 텐데. 다행히 말이 나왔을 뿐, 실행되지 않았다. 말 뿐이구나, 생각했다.


매년 돌아오는 연구비 신청 기간. 우리 방도 연구비를 신청했다. 교수와 박사가 연구비 신청했고 결과는 5월 초에 보통 나온다. 이상하게도 올해 연구비 신청 결과가 몇 주 연기되었다. 조마조마 신경 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박사는 퇴근하면서 연구비 되어야 할 텐데,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결과는 모든 연구비 신청 불발. 가지고 있는 재원도 연구비 삭감으로 줄어들었다. 연구비가 떨어졌다는 말에 나, 나가야겠네 하는 마음이 생겼다. 별말 없이 몇 주가 지나서 괜찮나? 했을 뿐. 박사가 '선생님, 할 말 있어요.'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은 걱정이 빠방! 하고 나타났다. 처음 얘기 들었을 때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박사도 내게 '쌤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들어서 자신도 민망하다.'는 내용의 말을 했을 정도다. 박사는 내게 언질을 준 거다. 아직 교수 연락은 받지 못한 상황임을 박사는 알고 있었다. 6월 말까지 같이 일할 상황인데 하루라도 빨리 알려줘야 내가 구직 활동을 하든 뭘 하든 할 것이라고. 그의 배려가 고마웠고 이 상황을 그에게 탓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니 최대한 덤덤하게 말하는 수밖에.


박사와 헤어지고 차에 타는데 마침 남편에게 전화가 온다.

"나 회사 잘렸어."

"어? 갑자기?"

"어, 방금 들었어. 연구비가 없어서 내가 그만둬야 된다."

"그래, 이 참에 쉬어라."

그래, 별 거 아니다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다음 날, 출근했다. 기운이 빠진다.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거북이 죽고 내내 울어서 눈이 부었다. 세포배양실에 들어가 앉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치미면서 눈물이 난다. 왜 하필 나냐고 말하고 싶지만, 애매한 위치에 실험만 하는 나다. 그러니 나에게 가장 쉽게 나가라고 말하겠지. 화가 나는 건 누구를 탓할 수 없음이다. 탓한다면 연구비 줄인 그에게 있다. 평생 정규직으로 살 수 없는 직종인데, 일방적으로 연구비 없으니까 나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에 화가 난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이루고 살았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이거라니. 자격증도 하나 없고. 실험실에서 실험만 하고 논문만 내다가 이제 사회에 가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40대 중반을 받아주는 회사는 과연 있나. 무한한 공간에 덩그러니 혼자 서 있는 기분이다.


내가 하는 일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싶었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적고 싶었던 글이 퇴사 일기가 될 줄이야. 박사와 퇴근하며 먹을 샌드위치와 음료 사진은 집에 와서 지웠다. 뭐가 좋다고 사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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