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써서 우리의 공간을 직접 만든다. 이젠 제법 익숙해져서 40분이면 대략 다섯 평 정도의 두 번째 우리 집이 만들어진다. 오늘은 짙은 녹색 빛의 소나무 숲이다. 어디선가 장작 타는 냄새가 솔솔 피어오른다. 이 냄새를 맡으면 나는 그대로 주저앉고 싶어진다. 몸의 근육은 풀어지고 입꼬리는 올라간다. 연쇄반응처럼 타닥타닥 불꽃이 텐트마다 피어오른다. 처음 불을 발견했을 인류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불꽃 춤에 잠시 넋을 놓는다. 참나무는 타기 시작하면 향이 아주 좋다. 그것이 숯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던 불꽃들은 어느새 하얗게 노쇠한 장작을 따라 잠잠해진다. 하지만 뜨거움은 여전하다. 자칫하다간 데일 수 있다. 그 열기에 고기를 굽기 시작한다. 참나무 향이 은은하게 배어든 삼겹살은 언제 먹어도 환상적이다. 캠프장은 최고의 고기 맛집이다. ‘겉바속촉’의 삼겹살은 탱글탱글하고 고소한 지방 부분과 육즙이 충분한 살코기의 콜라보로 표현할 길 없는 황홀함 그자체이다.
눈까지 감아가며 맛의 축제에 흠뻑 빠져있는데 딸아이가 옆에서 물었다.
“엄마, 돼지는 몇 살까지 살아?”
“응...? 우리가 먹고 있는 이 돼지...? 잘 모르겠네...”
아이는 그러냐는 듯 다시 오물오물 씹었다. 그런데 나는 맛의 축제에서 단숨에 튕겨 나왔다.
마트에서 100그램당 2,900원 주고 사 온 이 고기는 나에게는 살아있던 생명이기보다는 라면이나 소시지처럼 공장에서 만들어진 공산품 느낌이다. 싱싱한 상추나 붉은 당근은 흙이 연상되기도 하고 햇빛이 느껴지고 했지만 하얀 스티로폼 위에 포장되어있는 고기는 그저 인간이 만든 상품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것이 몇 살이었는지,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해본 적 없었다.
우리가 먹고 있는 돼지고기 대부분은 6개월 미만의 돼지들이다. 돼지의 수명은 개와 비슷한 평균 10~15년이고 소의 자연 수명은 무려 25년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는 30개월을 넘기지 못한다.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는 한 달 만에 우리 식탁에 올라온다. 충격적인 건 닭은 길게 살면 30년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축산동물의 수명은 경제성에 의해 결정된다.
이동호의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를 보면 우리나라 돼지의 99퍼센트는 평생 흙을 밟아보지 못하고 사방이 막힌 시멘트 방에서 분말 사료만 먹으며 6개월의 생을 산다. 우리 법은 동물을 흙에서 기르는 것을 금지한다. 인간이 돼지를 길들인 만년의 세월 동안 인간과 가축, 자연 사이에 오염은 없었다. 오염은 동물을 과도하게 밀집시켜 키우면서 생겨났다. 돼지는 자신들이 배설한 분뇨의 늪 위에 발판을 놓고 산다. 고농도의 암모니아 가스와 분뇨 먼지 속에서 살아간다. 겨우 6개월 살뿐인데도 도축 시 반 이상이 폐질환이 있다. 99퍼센트의 돼지는 무창돈사라는 창문 없는 축사에서 평생을 살다가 도축장에 가는 날 햇빛을 처음 본다.
우리나라에서 하루 7만 마리의 돼지가 잡힌다고 한다. 과연 나는 몇백 혹은 몇천 마리의 돼지를 잡은 걸까. 고기 없이 남은 생을 살 수 있을까. 좋아하는 캠핑하러 가서 고기 대신 두부를 먹자고 가족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저자는 작은 선택으로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힌트를 준다. ‘뒷다릿살을 먹는다면 돼지의 전체 사육 마릿수를 줄일 수 있다. 자연 양돈으로 기른 돼지고기를 먹는다면 돼지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 나는 가족 몰래 계획을 짠다. 전체 섭취량은 서서히 줄여가되 삼겹살은 오늘부터 당분간 사지 않겠다. 여전히 마트의 고기들은 생명이 아닌 상품처럼 느껴지지만 그것들은 인간들이 만든 끔찍한 환경에서 살다 죽은 생명이었음을 상기하려고 노력한다.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확고해지고 있다. 속도는 더디지만 방향은 틀어졌다. 삼겹살과 이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