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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새 Jul 22. 2022

그들의 마지막 집

작은 집과 넓은 정원에 살 던 거인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 손수 지었던 작은집의 크기는 길이 15피트, 너비 10피트, 높이 8피트로 대략 4.2평이다. 법정 스님이 마지막까지 머무셨던 송광사의 불일암도 그와 비슷하다. 현대 도시를 고안해낸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의 마지막 집도 4평이었다. 4평은 아파트에 안방 크기 정도이다. 그곳에서 세 분은 공간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하셨다.


 세 분 모두 작은집에 오롯이 혼자 기거하시며 가구와 물건을 거의 두지 않았다. 르 코르뷔지에의 집은 어머니를 위해지었던 것으로 집과 가구가 일체화되어있다. 작은 침대 하나, 글을 쓰고 식사를 할 수 있는 식탁 하나 작은 욕실과 그보다 작은 주방으로 구성된 집으로 르 코르뷔지에가 가장 유명했던 시기에 15년을 사셨다. ‘욕심’을 ‘필요’로 바꿔치기하여 구매한 우리 집 물건들을 쭉 둘러본다. 나중에 혹은 추억이란 꼬리표를 붙여서 물건에 내어준 공간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치워지지 않는 산만한 공간을 매일 치우고 있는 나를 바라본다. ‘너무 많다. 줄여야 한다’라는 결론이 절로 든다.


 그들의 집은 아담했지만, 정원은 매우 컸다. 소로는 호수를 품었고 법정 스님은 산을 품으셨고 르 코르뷔지에는 프랑스 남부 바다를 품었다. 소로는 <워킹>에서 하루 4시간 이상 숲과 들을 걸어야 한다고 했다. 그가 걸었을 호숫가와 숲길을 상상해본다. 그때 했을 사유가 ‘월든’에 일부 담겼으리라. 진짜를 찾아가는 길은 ‘매일 걷기’라는 행동이 필요했던 거 같다. 그것은 집 주위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행동이어야 했을 것이다.   

  

 우리의  번째 집도 4평이다. 집의 무게는 20킬로그램이다. 집을 짓는 모습은 기존주택과 똑같다. 바닥을 다지고 구조를 세우고 외피를 마감한다. 창문도 있고 커다란 문도 있다.  창문으로 숲이 보일 때도 있고 바다가 보일 때도 있다. 우린 매번 진지하게 순서에 맞춰  흘리고 협력해서 공간을 만든다. 집을 지을 때는 노동이라기보다는 흡사 종교의식 같다. 말은 적어지고 생각은 단순해진다. 순간만큼은 욕망도 사라지고 동시에 근심도 사라진다. 언제부턴가 집을 짓는 순간이 기다려진다. 몸은 힘들어도 정직하게 결과물이 보인다. 전기까지 끌어들이면 겨울에는 전기장판을 틀고 여름에는 선풍기를  수도 있지만 없어도 문제는  된다. 충전해온 전등 하나면 책도   있고 보드게임도   있다. 그래도 눈이 어두워지면 달을 보다가 자연스럽게 잠든다. 작은 공간이라도 침실과 주방과 거실이 보이지 않는 경계로 나뉘어 있다. 아이도 신발을 벗는 공간과 신을 공간을 자연스레 이해한다.  쓰는 공간은 이웃들과 함께 쓰지만 불편하지 않다. 최소한의 기본만 지키면 공유하는 공간에서 인상을 찌푸릴 일은 생각보다 없다. 불편하여지려고  사람들이라 그런지 수긍하고 이해하는 분위기이다. 단순하지만 튼튼한 우리 집은 강풍과 폭우에도 얼마 정도 견딜  있다. 매번 아늑하고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상 필요한  없어 보인다. 물건으로 가득  집에서는 필요한  투성이었는데 말이다. 적게 소유한  공간이  편안하다.


 인간이 만든 것은 최소한으로, 나머지는 자연으로 채운 두 번째 집에서 하룻밤 자고 오면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진다. 뒤처지고 있는 거 아닐까 하는 보이지 않는 불안감도 사그라진다. 그러면서 첫 번째 집의 물건을 비로소 덜어낸다. 비울수록 풍요로워진다는 뺄셈 소유법을 생각하며 두 번째 집을 닮아가려 한다.  

   

 언젠가 첫 번째 집이 두 번째 집처럼, 소로와 법정 스님과 르 코르뷔지에의 집처럼 되면 나는 나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며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을 거 같다. 글을 마치고 우리의 두 번째 집으로 가야겠다. 이번에는 스무 발짝만 걸어 나가면 태평양이 보이는 곳에 집을 지을 것이다. 보이는 전부가 우리의 정원이 된다. 삐질 흘릴 땀으로 끈적인대도 마음은 충만하고 너그러워질 것이다. 홀로 일출을 보며 커피를 마시겠노라고 계획도 세워본다. 아이가 좋아하는 쫀드기도 챙겨야지. 자연의 품으로 쏙 들어갈 생각에 두근두근 신난다.  

                                                                                                                                  Photo by Mark Ol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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