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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새 Jan 10. 2024

아이와 대중목욕탕에 가는 이유

말없이, 따뜻하고 시원하게 알려주는 선배들이 가득한 곳

아이는 바비인형을 가지고 논다. 마론인형들은 대게 백인 여성인 경우가 많고 비정상적으로 잘록한 허리와 긴 다리를 가지고 있다. 아이는 그것이 인형이라고 생각했다가 사람의 축소라고 생각하는 등 왔다 갔다 하는 거 같다. 물론 어린 시절 나도 그랬다. 어찌 보면 당연한데 아이는 실제 사람 몸을 볼 기회가 좀처럼 없다. 기껏해야 엄마랑 샤워할 때 보는 게 다다. 

그런 아이를 대중목욕탕과 수영장에 데리고 간다. 

그곳에서는 의도하지 않아도 타인의 몸을 보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건 생애 주기에 따른 다양한 여성들의 몸을 보는 것이다. 아이는 엄마 또래의 아줌마들은 대부분 뱃살 튜브를 다양한 사이즈로 두르고 있는 것을 알아채곤 엄마 것을 다시 확인한다. 자기보다 몇 년 큰 언니들의 몸이 자기랑 어떻게 다른지도 설핏설핏 살핀다. 인형의 몸이 아닌 리얼 사람의 몸을 보는 것이다. 

대중목욕탕에는 특히 어르신들이 많이 오신다. 

아이는 늘 우리아이 하나다. 요새 아이들은 목욕탕에 잘 오지않는다. 우리 어린시절만 해도 반친구 한명은 무조건 만났는데 (간혹 남자아이도ㅎ) 나도 한동안은 뚝 끊었지만 코로나가 잠잠해지면서 아이가 먼저 대중목욕탕 이야기를 줄곧 해댔다. 아이는 따뜻한 물에 들어갔다가 냉탕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발그래해진 양볼을 가지고 맥반석 달걀에 살얼음 식혜를 먹으면서 여기가 달걀 맛집이라고 행복해한다.  세상 꿀맛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백희나 선생님의 장수탕 선녀님 책을 보며 자기도 덕지처럼 선녀님을 만나지 않겠냐며 기대하곤 했다. 장수탕 선녀님을 뵐수는 없었지만 레벨이 비슷한 동네 어르신들은 많이 뵈었다. 



동화 [장수탕선녀님_백희나]장수탕 선녀님`은 동문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2020년 수상하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목욕탕은 재미있는 곳이다. 평소 우리는 남에게 자신의 몸을 보여주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지만 목욕탕에서는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가벗고 있는다. 모두가 벗고 있으니 여기서는 옷을 입고 있는게 오히려 이상하다. 공간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룰이 바뀐 것이다. 이런 바뀜의 재미를 아이도 아는거 같다. 변신 체인지가 따로 없다. 그런데다 우리가 좋아하는 물이 가득가득 차 있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두 돌 될 무렵부터 데리고 다녔다. 비록 양껏 내 시간을 보내지 못해도 모두가 호모사피엔스가 되어 발가벗고 있는 건 왠지모를 신선함이 가져오는 재미와 편안함이 있다. '몸에 걸친 것 하나 없어도 어떠한가 이렇게 만족스러운것을' 

세월이 새겨진 할머님들의 몸은 안쓰럽다가 어쩐지 감동스럽다. 숱한 세월, 가족을 위해 헌신하신 노력이 몸에 오롯이 새겨졌다. 그것은 벗으면 더 여실히 보인다. 숭고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굽으신 허리로 얼마나 많은 사랑들을 엎으셨을까. 마디마디 고목처럼 변해버린 손가락들로 수많은 칼질을 하고 쌀을 씻어 밥을 지어 생명을 살리셨겠지. 누군가의 몸을 보는 건 실례이지만 스치기만 해도 우리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나이 드신 몸과는 다르게 빠글빠글 생동감 넘치는 까만 파마가 대조적이라 귀엽다. 나는 목욕탕에 있는 할머니들이 귀엽다고 몰래 생각하고 모르는 분들이지만 고맙고 대단하고 존경한다. 

 잠시나마 모든 것을 훌훌 내려놓고 따뜻한 큰 물에 들어가면 모든 상념도 걱정도 녹아버린다. 이것은 대를 이어주고 싶은 문화이다. 나의 아이도 나처럼 어미가 되면 작고 몽실몽실한 아이를 데리고 수많은 엄마들과 세상을 먹여살리는 선배들이 가득한 대중목욕탕에 왔으면 좋겠다. 찐하게 목욕을하고 시원한 바나나우유를 마시며 세상으로 나오면 얼마나 상쾌한가.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 그 따뜻함과 끝마치고 나서의 상쾌함을.



Iceland, Blue Lagoon © LAPLANDKOREA꼭 가보고싶은 대중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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