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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daum Mar 09. 2022

둘째,

품 안에 자식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있다.

초등 5학년부터 쑥쑥 크기 시작하더니 이제 나의 키를 넘어선 녀석이다.


둘째가 어렸을 적에는  누나와 어울려 지냈던 터라 굉장히 여성스럽고 섬세한 아이였다.

눈물 많고 애교 많고 아기자기한 놀이를 좋아했다.


한번   아이를 내손으로 보낸 경험 뒤에 얻은 아이라서 그런지   소중하고 귀했다.

[첫째 아이가 덜 귀하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렇게 귀하고 소중했던, 애교만점인 아들과  어느 날부터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 몸이 커지면서부터였다.

5학년 정도부터 슬슬 반항끼  깔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누나 말에 끽소리 한번 안 내던 순한 녀석이 누나에게 말대꾸를 하고 뾰로통한 표정을 곧잘 지으며  이 어미의 이야기에  대답을 안 하거나 불만 섞인 대답의  빈도수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 나는 그런 아들의 모습을 용납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커갈수록 사이가 좋아지는 첫째 딸이 옆에 있어서  그런지  첫째와 둘째는 어느 순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과 못 알아주는 사람으로 구분 지어졌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소리 지르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스멀스멀 시작된 녀석의 사춘기는 5학년 말부터 6학년에 걸쳐 절정에 다 달았다.


아이는 요구하는 것도 많아지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집요함도 보였다. 

완벽적 성향이 높고 교육자형인 나는 타당하지 않은 요구를 받아들이긴 힘들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부딪히는 아들과의 관계에  강하다고 생각한 나 스스로는 무너질 것만 같았다.

6학년 1학기.  감정은 절정을 치닫고 감정적으로 힘들던 시간.  남자 마음은 남자가 더 잘 알 테니 남편에게 부탁했다.


다행인 것은 잠시나마 아빠와는 뭔가 대화가 되었나 보다.

며칠 순한 아들, 대화가 되는 아들로 돌아왔다.

나도 한발 물러나 아이와 중간지점에 만나 협상을 했다.


협상 테이블은 긴장감 가득한 순간,


나는 아들에게 물었다.

"우리가 예전처럼 잘 지내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잠시 후  아들이 말한다.

"나는 게임을 좋아하니까., 우리 가족이 뭔가 같이 하는 놀이가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나도 엄마랑 사이 안 좋은 거 싫은데., 갑자기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것 같아."


"그랬구나.. 그래! 그럼 우리 어떤 게임을 하면  좋을지 생각은 해봤어? 음.. 엄마는 막 어려운 건 안되니까~  적당한 걸로 함께 골라보자~"


그 뒤 우리 가족은 저녁식사 후 모이기만 하면 카트라이더/루미큐브를 하며 소통을 시작했다.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내가 한번 빠지기 시작한 루미큐브에.. 아이들이 없는 시간에도  접속해서 하고 있는  나를 돌아보며 헛웃음도 났다.


작년 가을 번지점프 하는 아들

그렇게 몇 개월,

하루가 멀다 하고 부딪혔던 그때에 비해  우리 관계는 정말 많이 좋아졌다. 가끔이지만 옆에 와서 살갑게 굴 때도 있고 농담도 곧잘 한다.


둘째가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였다.

교복을 맞추고 외모에 관심을 가지고 사고 싶은 물품이 많아지고 자기주장도 6학년 때에 비해 더 분명해졌다.


"품  안에 자식"
자식이 어렸을 때는 부모의 말을 따르지만 자라서는
제 뜻대로 행동하려 함을 이르는 말

속담에 "품 안에 자식"이라는 말이 뼛속 깊이 느껴지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커버린 아이가 대견하고 든든하면서도 또 서운하고 아쉽다.

무조건 엄마! 엄마! 하던 4살 엄마 바라기 아들은 이제 없다.

다 커버려서 여드름도 조금씩 나고 겨드랑이 털  한두 가닥을 신기해하던  녀석이 이제는 제법 셀 수 없을 정도로 자란  녀석이다.


내가 자랄 때, 엄마 아빠 품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인생을 살아나갈 때, 우리 부모님도 이랬을까?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

 [딱 너 같은 애 하나 낳아서 키워봐라]

그 말을 나도 언젠가는 내 자식에게 고스란히 해줄 것만 같다.


아이를 키우면서  좌충우돌 부딪히고 다시 봉합하고 다시 상처가 벌어지고 봉합하고.. 울고 웃는 시간을 보내며 나도 아이도 성장해 나간다.


미성숙한 아이가 제대로 성숙된  어른이 되기까지,

나도 그에 맞춰서 잘 익은 어른이 되지 않을까?


교복입고 증명사진 찍던 날
아들아, 우리  그 전보다
딱 1만큼 더 잘 지내보자!

마치며,


아들 녀석이 나의 브런치를 구독하고 있다.

발행을 하는 그 순간  잽싸게 '라이킷'을 날린다.

얼마 전부터 아들이 은근슬쩍 하는 말이 있다.

"엄마, 내 이야기는 브런치에 안 나와? 언제 써볼 거야? 내 이야기도 써주지.."

아마 이 글도 어느 순간 볼 것이다.


아들! 나 니 얘기 썼다!

우리 잘 지내보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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