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 많다.
내가 쓰고 싶은 글, 혹은 내 정체성, 내가 좋아하는 것.
혹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 보이는 나, 타인이 생각하는 내 모습, 누군가 보고 싶어 하는 내 모습.
나는 과연 무엇을 글로 써서 게시해야 할까?
브런치를 쓸 때도 주제가 명징하게 보일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천성이 흐르는 대로 사는 사람이라 그런지 뚜렷한 틀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니 블로그나 브런치의 색을 명확히 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남들이 보는 곳에 중구난방 한 일기를 쓸 수도 없다.
계속 고민을 해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아무 글이나 남발하면 편하고 좋겠지만, 어쩌면 좋을까?
일기는 혼자 쓰고 보면 되는 것이지만 글을 게시하고 공개한다는 것은 누군가 그것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작업이다. 그러면서도 '나'의 생각과 '나'의 개성을 드러내는 일.
너무 어려웠다. 한동안 계속 어려웠다. 아니 처음부터 조금도 쉬운 적이 없다. 뼈대를 세울 줄 모르는 사람이 집을 지으려고 덤비는 느낌? 어디서부터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일머리 없는 사람의 전형적인 멍청히 서있기.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포지션이었다.
누군가 와서 툭 '이거 해야지?'라고 했다면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그냥 별생각 없이 그것만 하면 되니까. 물론 남의 뜻을 따른다는 것이, 자신을 죽이는 것이 쉽다는 것은 또 아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의 뼈대를 세워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열정을 북돋아줄 누군가.
사업이나 일을 도모할 때는 함께 하는 이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재미있겠다'하는 생각이 확 들면서 하고 싶은 의욕이 샘솟는다. 그렇게 해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달리기 선수들의 러닝메이트처럼. 근데 그것도 그가 제시하는 뼈대나 생각의 방향이 내 뜻과 맞을 때 일이다.
결국 내 뜻은 내가 알 텐데 참 멍청하게도 나는 그것을 해줄 누군가를 멍하니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막상 제시를 해주면 듣지도 않는다. 뭔가 찝찝하다. 따질 것도 많고 내가 바라는 것과 미묘하게 어긋난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쓰는 방향에 대해 생각하길 멈추고 시간만 보냈다.
생각 없이 시간 보내기란 무척 쉬운 일이었다.
생각을 멈추고 시간 보내는 것은 그저 몸을 움직이면 되었다. 누군가는 너무 많은 생각과 힘듬을 멈추고 감정에 매몰되지 않으려 움직인다는데 나는 생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회피를 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고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를 만나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간이 결코 의미 없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내가 할 일이 있음에도 그것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내 태도의 문제이다.
'어쨌든 삶에 쉼이라는 것도 필요하니까.' 그렇게 위안하며 일 년, 이년, 지금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 좋다. 계속 이렇게만 살면 진짜 좋겠는데. 좋으면서도 찝찝했다. 구석에 박힌 죄책감을 외면하고 '아, 좋아.'를 남발했다. 그럴수록 그 죄책감은 작지만 단단해졌다. 그리고 결국 이렇게 다시 글 앞에 앉아있다.
그런 말이 있다.
'작가가 글을 안 쓰면 백수이다.'
내 심리는 백수의 딱 그것이 아닐까? 편하고 좋은데 빨리 취업해야 돼. 일을 안 하니까 불안해.
그래서 글을 쓰려고 앞에 앉아서 다시 처음의 문제로 돌아갔다. 나는 뭘 어떻게 드러내고 싶은 것일까? 생각의 과도기이다. 무언가 정하는 것이 힘들다.
글을 쓰려고 노트북에 손을 얹고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어디에서는 오늘만 살 것처럼 살고 미래를 깊게 생각 안 한다는데 나도 그러면 안 되나?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나는 우리나라에 살고 있으니 우리나라 평균의 사람들이 취하는 삶에 대한 열정에 적당히는 기준을 맞춰야겠지. 그렇게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내 기준이 없어졌다. 그래서 주제가 사라지고 뼈대가 흐물흐물해졌다. 뭘 써야 할지 다시 모르게 되었다.
내 생각은 슬라임 같았고 그건 종이에 담아내기 참 어렵다.
하긴 해야 된다는 기분만 들었다. 가끔이나마 '글을 써야지, 휴우.'라고 생각하는 것은 평생 그것만 해서 그것밖에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에게 "피아노를 쳐보세요."라고 한다면 "제가 왜요?"라고 할 것이다. 피아노를 평생 쳐왔다면 '아, 이대로 피아노 안 치고 있으면 손이 굳을 텐데.' 하겠지만 나는 지금 '글을 쓰긴 해야 되는데. 안 그러면 머리가 굳을 텐데.' 하는 중이다.
그렇게 뭐라고 쓰긴 써야 되는데 뭘 써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몇 차례 반복되고 나니 이제는 벼랑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나는 누구고 내가 뭘 하고 싶고 어떤 글을 써야 하고 어떤 방법으로 체계를 잡아야 하는지.
사춘기인가 보다. 나에 대한 정체성을 찾고 있는 걸 보니. 그냥 이런 나의, 이런 글로는 안 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