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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기진 Mar 12. 2021

미술교육을 통해 타인을 더욱 존중하게 되었다.

J와의 인터뷰-미술창작과 미술교육 간의 관계 (1)

    J는 과가 다른 미대 후배이다. 같이 어느 예고에서 시행하는 미술영재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같은 학교에서 동료 교사로 같이 일도 하게 되었다. 가녀린 이미지와는 달리 상당한 뚝심과 욕심으로 열심히 작품 활동하는 미술작가이기도 하다. 그녀도 나처럼 예술가로서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이 다른 모든 일들보다 우선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잘하는 일을 살려 경제활동을 하는 것처럼, 많은 미술작가들도 자신의 특기인 미술을 활용하여 경제활동을 하게 되고 그중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이 미술교육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술을 가르치는 일이 단순한 경제활동으로만 정의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누군가를 교육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삶에 깊게 관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예술가로서, 미술창작과 미술교육 간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 갈 것인가. 서로 다른 접근법과 진행과정을 가진 두 영역을 어떠한 방식으로 통합시켜야 시너지 효과가 날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나만의 것이 아닐 거라 생각해왔다. 나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다른 예술가 교사들(artist-educators)과의 인터뷰를 통해 공통된 고민을 나누며 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고 싶었다. J는 나의 인터뷰 대상자로서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었고, 감사하게도 그녀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 도 있는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었다.


    인터뷰의 주요 질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있다. 미술창작과 미술교육을 동시에 병행하면서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가. 두 영역의 공통점과 차이점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미술창작이 미술교육에 있어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가. 예술가 교사로서의 정체성과 능력을 확립해 가는데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들을 함께 나누면서, J가 했던 말들 중 인상 깊었던 부분들, 공감 갔던 부분들을 따로 발췌하여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J는 첫 번째 미대 입시에서 고배를 마신 후, 자신이 왜 미술을 하려 하는지 더욱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한다. 이 과정 중에 사소한 일상의 풍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미적 경험의 순간들을 드로잉 하기 시작했고, 이와 같은 쾌감을 주는 활동을 계속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본인의 경험을 타인과 공유하면서, 그들의 미술과 세상을 보는 관점을 확장시킬 수 있다는 것에 미술교육이 갖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J가 원하는 교육 방식은 학교의 제도화된 교육과 미술 입시 제도 아래에서 실행되기가 어렵기에, 그는 주로 미술 활동 자체에 순수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고자 한다. 그래야만 스스로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J에게 미술교육은 미술창작 시에 보장받았던 자기만의 고유한 영역을 벗어나야 하는 일이다. 개인으로 존재하기가 어려워지며, 다양한 사람들과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언뜻 보면 개인의 고유성과 자유가 다소 박탈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반대로 타인을 가르치는 과정에 개입하면서 그들의 작업 과정과 방식에서 새롭게 배우게 되는 점들도 많다. 그리고 이 발견들은 자신만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깨 주었으며, 모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특별하다는 것을 깨닫고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이 더 생겼다. 또한 작가로서의 '나'의 생각과 태도를 공유하며,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학생의 작업 방향을 제시하였을 때, 예술적 활동을 하는 것과 가르치는 일의 맥락이 비숫한 것을 느꼈다. 그는 이 점이 바로 서로 다른 두 영역 사이에 시너지가 발생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J는 예술가 교사로서 미술창작과 미술교육 두 영역을 동시에 잘 발전시켜가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깊은 세계를 끊임없이 탐구하되, 보편적 시각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자신의 세계에 매몰되어있으면 학생들을 이해하고 소통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또한 소통 가능한 보편적 언어를 연구해야 학생들이 예술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예술가로서 창작의 결과물뿐만 아니라, 창작의 과정 자체를 즐기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창작 과정의 즐거움을 학생들에게 공유하고 그들이 이 즐거움을 느낀다면, 이러한 경험이 동기부여가 되어 학생들 스스로가 자율적으로 창작의 의미를 발견해 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미술교육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술교육도 그 대상과 목적에 따라 매우 다양한 분류로 나뉜다. 크게 보면, 입시 미술교육, 취미 미술교육, 미술 전문인 양성을 위한 대학 미술교육 등으로 볼 수 있다. 입시 미술은 어쩔 수 없이 제도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취미 미술은 그 목적과 형태가 매우 다양하여, 미술 교사와 학생들이 미술이 갖는 다양한 특성, 역할들을 보다 더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다. 대학에서의 미술교육은 전문인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 현재 미술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을 초빙하여 수업을 하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발견하고 확장시켜 갈 수 있도록 돕는다. 개인적으로 대학에서의 교육 경험은 그 수업 내용이 어떠했는가 보다도, 학교에서 만난 다양한 선생님들과 동기, 선후배들과의 관계가 더 큰 의미를 갖게 된 것 같다. 평생을 창작자로서 살아오신 분들 그리고 같은 고민을 갖고 있는 친구들과 미술, 작품 그리고 삶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큰 공부가 되었다. 


   이처럼 미술교육의 다양한 목적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J와의 대화는 말로는 거짓말을 할 수 있어도 그림은 거짓말하지 못한다는 한 선생님의 말씀을 상기시켰다. 그만큼 미술작품에는 자신의 모습, 생각, 성향이 있는 그대로 반영된다는 뜻이다. 미술을 매개로 자기 자신을 더 솔직하게 표현하고 알아 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인을 더 잘 알게 되고 이해해 갈 수도 있다. 나는 미술교육을 통해 이 두 가지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술은 미술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또한 전문 미술가 양성을 위한 미술교육이 다른 목적의 미술교육보다 더 좋고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예술가로서 많은 대중들이 미술을 더 친근하게 여기고 향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대부분의 미술 비전공자들은 현대미술을 어렵게 느끼고 자신들의 삶과는 멀리 있는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그들이 미술을 배우고 이를 통해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면, 미술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접하는 또 다른 눈을 갖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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