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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기진 Mar 12. 2021

예술가는 확장된 개념으로서의 교육자다.

W와의 인터뷰-미술창작과 미술교육 간의 관계 (2)

    W는 나와 아주 인연이 깊은 친구이다. 중,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같이 나온 동기이며 현재 미국에 유학을 와서도 차로 15분 거리에 살고 있는, 그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징글징글”한 사이이다. 내가 그동안 지켜본 W는 공부를 잘하는 똑똑한 아이이고 운동도 잘했다. 또한 의외의 허당미를 발산하며 인간미를 물씬 풍기는 친구이기도 하다. 우리의 가장 큰 공통점은 어린 시절부터 같은 학교에서 미술 입시를 했기 때문에 그림을 배워온 방식과 그려온 시간이 비슷하다는 점이다. 서로가 지금도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뉴욕에 와서 함께 작은 전시를 열기도 하였다. 공통된 배경을 가지고 있고 서로 알고 있는 면도 많다고 생각해왔기에, 그녀 또한 나와 비숫한 고민을 해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와의 인터뷰를 통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는 그동안 내가 보거나 알지 못했던 경험을 말해주었고, 비슷한 배경에서도 각자 얼마나 다르게 보아 왔는지 깨닫게 해 주었다.


    W는 예술가가 될 생각은 있었지만, 교육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제도권에서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 자신의 전문 분야인 미술교육을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되었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유학을 가기 전 6년간 미술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찬가지겠지만, 그도 처음에는 그동안 배워온 방식을 그대로 모방하여 학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쳤다. 그러나 미술교육을 계속하면서, 자신은 교육자의 길과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그동안 배워왔던 선생님들의 교육방식을 그대로 학생들에게 적용하면서, 그는 그 방식이 갖는 획일성과 일방성에 회의를 느꼈다. 미술학원에서는 미술대학에서 원하는 입시방식에 맞춘 교육을 중점적으로 하며, 하나의 예술 분야로서의 미술 자체가 갖는 다양한 의미에 대한 교육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정형화된 미술교육은 학생들의 미술적 능력뿐만 아니라,  W자신의 예술가로서의 작품세계가 억압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그는 자신이 미술을 공부하고 미술작가로서 활동하며 겪은 어려움들을 학생들이 그대로 겪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미술을 가르치는 일에 적극적인 태도로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W의 말에 따르면, 이러한 어려움들을 겪게 된 데에는 제도적 문제가 가장 컸다. 자신의 장점과 경험이 아닌 제도권이 원하는 미술교육에 초점을 맞춰야 했다. 각 미술대학이 원하는 방식의 그림대로 가르쳐야 했기에, 본인이 그림을 그릴 때에는 하지도 않고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 면들까지 중요한 것처럼 학생들에게 얘기해야 했다. 입시미술뿐만 아니라 미술을 배우고 싶어 하는 비전공자들을 가르칠 때에도 그들이 갖고 있는 “나와는 다른 대중적 미감(주로 사실적 표현이 목적인 미술)”에 맞춰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 되었다. 그는 이러한 경험들을 하면서, 미술을 창작하는 것과 교육하는 일은 범주가 완전히 다른 일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창작은 보편화된 상식의 범주에 들어가기 어려운 개인적 목적을 가지며, 반면 교육은 보편화된 사회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한편으로는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영역이 긴밀히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라 말한다. 미술의 흐름을 교육이 따라가기 때문에, 미술창작이 미술교육의 범주를 확장시킨다. 이런 점에서 예술가는 확장된 개념으로서의 교육자이다. 또한 자신의 경우,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창작을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창작을 하는 교육자로서 어떻게 자신의 개인적 목적과 사회 제도권의 요구를 서로에게 이로운 방식으로 균형 있게 맞춰 나갈 수 있을까?


    W와의 인터뷰에서 다루는 미술교육은 제도권 내의 교육이다. 중/고등, 대학 등의 교육기관에서 행해지는 미술교육을 가리킨다. W에게는 효율적인 시간 분배(time management)와 제도적 유연성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미술교육과 미술교육자의 범위를 어떻게 정하는가, 어떠한 문화권에 속해있는가, 교육의 형태는 어떠한가 등에 따라 필요 요소는 달라진다. 대학에서의 미술교육은 중고등 과정보다 교수의 자율성을 더 보장받을 수 있기에, 교수 개인의 장점과 경험을 살린 교육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반면 중/고등학교에서의 미술교육은 각 학교의 이념과 국가적 제도의 요구로부터 자유롭기가 어렵다. 예술가 교사(artist-educator)로서 자신의 작품 활동과 교육 활동을 서로 이롭게 발전시켜나가기 위해서는 창작자 개인이 교수로서의 자율성을 보장받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이다. 수업 내용과 교육의 방식 등에 개인의 특기를 담아낼 수 있어야 예술가 교사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세워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예술가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균형 있게  세워 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요소들이 고려되어야 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서로 다른 두 영역이 상승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들에는 무엇이 있는가는 개인이 각자 상황에 맞게 고려해 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W와의 인터뷰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제도와 각 제도권이 가진 특징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그리고 내가 자라온 제도권이 나에게 그리고 후대에 미치는 영향까지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의 경험상 대학에서 받은 미술교육이 중/고등학교의 미술교육보다 사고와 표현의 폭을 더 넓게 만들어 준 것은 사실이다. 학창 시절에도 대학교만 가면 더 자유롭게 지낼 수 있겠지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 힘든 입시를 견뎌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대학은 그 나름의 제도를 가지고 있고 분명 그 안에서 재단되고 억눌린 부분들도 있다. 기본적으로 유교문화를 바탕으로 한 교수와 학생 간의 상하 위계관계가 대화의 폭을 재단하는 부분들이 많았으며, 교수들이 가진 권위에 눌리는 경우가 많아 마치 내가 큰 잘못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또한 물론 어떤 교수를 만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의 교수는 자신의 입장이 매우 견고하여, 그 입장대로 학생들의 작품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입장이 전혀 다른 학생들에게는 다소 폭력적이게 다가올 수 있는 부분이다. 


    대학이 각 교수들의 교육에 대한 자율권을 보장해 주는 것이 큰 장점이지만, 그 보장된 자율권이 오용 혹은 남용된다면, 오히려 보편적인 규율 아래서 행해지는 교육보다도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나 또한 나와 입장이 다른 교수에게 괜스레 공격을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고 이는 나의 창작에 대한 자신감과 열망을 짓누르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이를 통해서 정리가 되고 성장하는 것도 교육의 일부일 수 있으나, 절대로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학생을 대할 때에는 창작자로서 교수 자신의 입장과 거리두기를 할 필요가 있다. 당연하면서도 어려운 일이지만 역지사지의 태도, 모른 건 모른다고 하는 솔직함 등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 권위를 내세우며 어렵고 무거운 질문들만 던질 것도 아니다. 교육의 단계에 따라 다른 접근을 해야 할 수도 있으나, 지나친 자기 검열에 빠지게 하는 것도 조심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창작은 무겁고 심각하고 어려운 일처럼 느껴지며 실제로 그렇게 된다. 


    나의 대학시절을 돌아보았을 때, 교수가 일부러 무겁게 학생을 누르기보다는 스스로의 생각에 매몰되어 침잠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태도가 선행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상대적으로 편하고 가볍게 전달되어야 할 것들도, 불필요할 정도로 무겁고 엄격하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엄격한 태도를 가지고 수업에 임하게 하는 것과 지나친 자기 검열을 통해 학생을 주눅 들게 만드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내 안의 것들을 순수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꺼내고 즐기기가 어려웠다. 물론 내가 입장을 바꿔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다면 어떻게 할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더 무겁고 엄격하게 학생들을 대할 수도 있다. 학생마다 상황 따라 태도를 다 달리 해야 할 것인데, 이는 또 어떻게 판단해나가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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