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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May 09. 2024

사과받지 못한 마음

< 삶의 다정한 목격자 >


가해자는 왜 꼭 사과를 하지 않을까.     


지인들과 대화 중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이야기가 나왔다.

가해자에게 사과를 받지 못해 복수를 하는 이야기였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간절하게 '사과'를 원한다.

당신이 진심 어린 '사과'를 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신을 용서하겠다고.

하지만 가해자가 사과를 해줄 리 만무하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그런 가해자를 비웃는다.

그런 피해자를 귀찮아하거나, 네가 뭔데 사과를 원하냐는 식이다.

그들은 오히려 그런 상황을 즐기는 듯하다.

결국, 사과하지 받지 못한 피해자는 가해자를 법의 테두리가 아닌

자신의 방식으로 응징한다.   

  

사과? 그게 뭐 별거라고. 싶지만

사과는 사실 매우 중요하다.

주변에서도 사과를 제때 하지 않아 일을 키운 사례들을 많이 보았다.

사과만 제대로 했더라면 저렇게 복잡해지지는 않을 일들이 의외로 많다.     


사과받지 못한 마음이 늘 문제다.    

 

부부사이에서도 '사과받지 못한 마음'이 늘 문제다.

지금이야 표현하는 것이 매우 자유로운 시대지만 과거에는 환경적으로

표현에 서툴렀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특히 그랬다.

그러다 보니 미안해도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이 다반수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네가 나를 당연히 이해야 줘야 하는 거 아니냐'

마음이 깃들어있다.

물론 사과가 꼭 말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 꼭 말로 표현해서 다가 아니듯, 사과도 사과의 제스처들이 있긴 하다.

(예전에 나의 지인은 나에게 과일 '사과'를 내밀며 말대신 사과를 했었다.

행동이 귀여워서 웃으며 넘어갔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건 상대가 그걸 사과로 받아들이고 이해했을 때만 가능하다.


“내가, 너에게 상처를 줘서 미안해.”

“내가, 너를 이해 못 했던 거 미안해.”

“내가, 너를 힘들게 했던 거 미안해.”


정말 미안하다고 생각한다면 꼭 사과하고, 표현하고 넘어가야 한다.

너무 늦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말이다. 

사과는 상대의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아주 쉬운 방법이다. 돈이 들지 않는.

하지만, 그냥 넘어가 버리면 사과받지 못한 마음은 정처 없이 겉돌게 된다. 

         

부모 자식 간에도 사과는 필요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부모 자식 사이에서도 사과는 꼭 필요하다.

어제 어버이날이라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다.

'낳아줘서 감사하다고. 많은 자식들 키우느라 고생하셨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도'

작년 같으면 나의 이런 말에 '그래. 고맙다' 정도로 하셨던 분인데.

이번엔 '엄마도 고맙고, 또 미안하다..'라는 말씀을 하신다.

근데, 순간 좀 울컥했다.

상황이 상황인 것도 있지만 나도 한 번쯤은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예전 노희경 작가님의 드라마 '굿바이 솔로'에서 그런 대사가

나왔었다.

'부모도 속을 썩인다고'

자녀에게도 만약 미안한 게 있다면 지금이라도 꼭 사과를 하면 좋을 듯 

하다. '표현하지 않아도 알 거야'라는 건 정말 큰 착각이다.

어쩌면 그런 말에 기대어 회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과의 기술     


사과의 기술은 간단하다.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것.

모두가 알고 있지만 또 어려운..'진정성'이 가장 중요하다.

거기에, '그런데... 나도 그래서 그랬던 거야..' 하고 사설과 첨언이 붙는 순간 사과의

진정성이 깨져버린다.

그 순간에도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다 보면, 사과의 의미가 없어져버린다.

하지만, 사과한다고 모든 행동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분명 예외가 있다.

20대 때 잠시 알고 지냈던 지인은 상습적으로 애인에게 폭행을 당했었다.

왜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가를 묻고, 내가 도와줄 방법은 없는가를

물었었는데, 그녀는 그냥 자신을 두라고 했다.

그녀는 그 사람이 폭력 후 사과를 하고 180도 다른 모습으로 자신에게 

잘해주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고 그것이 결국 너를 망가뜨릴 거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그런 말들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변명이 넘쳐나는 시대     


정작, 사과해야 할 사람들은 사과를 하지 않는다.

요즘은 통 뉴스를 보고 싶지 않다.

불공정과 변명이 넘쳐나는 시대다.

그들은 사과가 나약한 것이라 치부하는 듯하다.

인정하는 순간, 다 죽는 거야.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 그조차도 관심이 없는 듯하다. 

'내가 다 옳다'는 생각만큼 위험한 것은 없는 듯하다.     


어른으로서, 우리는 제대로 된 사과를 하며 살고 있을까를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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