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다정한 목격자 >
얼마 전 오빠가 엄마가 요즘 더 자주 깜빡하시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이번에 시골에 내려간 김에 엄마를 모시고 치매안심센터를
찾게 됐다.
치매에 걸리면 금방 죽는다고 생각하는 엄마여서 빨리 발견만 하면
진행을 늦출 수 있다고 엄마를 안심시켜 드렸다.
뭐든 조기발견이 제일 중요하다고.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치매검사를 받아보자고 엄마를 설득해 가게 되었다.
치매안심센터로 향하던 차 안에서 엄마가 웃으셨다.
'엄마, 왜 웃어? 같이 웃자~'
했더니 엄마는
'내가 벌써 이 나이가 되어 치매 검사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우습네'
하셨다.
'엄마 막내딸이 벌써 오십인데 뭐'
했더니 엄마는 '그러네'하며 환하게 웃으셨다.
치매안심센터에서 내가 먼저 담당자를 만났는데,
엄마가 이미 경증치매로 등록되어 있다고 했다.
엄마가 신경과에서 경증치매진단을 받아 등록이 되었다고 한다.
엄마가 신경과에서 두통약을 드신다고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치매약이었던 거다.
엄마 또한 자신이 치매라는 건 까맣게 모르고 계신 것이다.
일단, 엄마에겐 치매검사 안 해도 된다고 말씀드리곤 엄마의 여름신발을
사드리러 갔다.
그리고 엄마가 좋아하는 간자미무침을 함께 먹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와 여기 너무 좋다. 맛있다' 하면서.
그리고 남편은 오이김치를 담가야 돼서 빨리 집에 가야 한다는 엄마를 붙잡고
나와 사진을 찍어주었다.
딸들을 위해 오이소박이를 담가주시고, 엄마는 여느 때와 달라 보이지 않았다.
종교활동에 걷기 모임도 하시고, 텃밭에 마늘도 심고, 대파도 심고,
고추도 심으시며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시는 엄마다.
그래서 더욱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나에겐 그저 예전과 같은 엄마일 뿐이다.
자신이 경증치매인 것을 모르는 엄마는 '치매만은 걸리지 않아야 하는데' 하신다.
'치매'는 많은 사람들이 꺼려하는 병이다.
적어도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걸리지 말았으면 하는 병이다.
'나카노 료타'감독, '아오이 유우', '故 다케유치 유코'주연의 일본 영화
<조금씩, 천천히 안녕>이란 영화가 있다.
평생 교사로 근무하고 은퇴하신 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후 7년 동안
아내와 두 딸이 아버지와 함께하는 일상을 잔잔하게 그린 영화다.
'치매란 오랜 이별'
영화 속 대사를 들으며 '치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잊힌다는 두려움, 잊는다는 두려움.
사람들은 모두 '치매' 만큼은 걸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지금은 믿어지지도, 실감도 나지 않지만
나도 엄마와 오랜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아침에도 엄마는 또 냄비를 태우셨다.
아무래도 타이머를 사드려야 할 것 같다.
엄마의 경증치매 소식은 너무 마음 아픈 일이지만,
치매에 걸렸다고 삶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치매에 걸려도 엄마는 엄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를 고민해 본다.
좀 더 엄마를 자주 찾아뵙는 것.
엄마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엄마가 치매증상이 심해졌을 때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는 것.
나는 좀 더 다른 방법으로 엄마를 더 사랑하고,
그걸 표현해야 할 거 같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런 일들일 것이다.
엄마의 시간이 좀 더 천천히 흘러주길 간절히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