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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May 29. 2024

누가 보지 않을 때 벗어버리고 싶은 존재, 가족?

< 삶의 다정한 목격자 >




가족의 굴레     


1993년에 개봉된 조니뎁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 란 영화가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기억에 남는 영화다. 

길버트(조니뎁)에겐 지적장애를 가진 동생 어니(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엄마 같은 누나 에이미,

여동생 엘렌이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자살 이후 7년 동안 문밖을 나가지 않아 몸이 고래처럼, 

거구가 된 엄마가 있다.

아직 하고 싶은 것이 많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길버트는 가장 노릇을 하고, 

장애를 가진 어니를 돌보며 살아간다.

길버트는 잠깐 머물다 가는 캠핑족들을 부러워한다.

의사는 어니가 10살을 넘기지 못할 거라 했지만 벌써 18살이 되어가고, 

늘 사고를 친다.

길버트는 때로, 동생이 그냥 죽었으면 하는 마음도 갖는다.

그러던 중 부모의 이혼으로 여기저기를 떠도는 캠핑족 베키를 만나며 길버트는 

그녀에게 빠져든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어 하는 구석이 있다.

길버트는 자신을 이해해 주는 듯한 그리고 늘 어딘가로 떠도는 베키를 선망했을

것이다.

그러던 중 어니가 사고를 쳐서 경찰서로 연행되고, 7년 동안 문밖에 나가지 않던 

거구의 엄마가 7년 만에 외출을 하며 경찰서로 간다.

하지만 거구의 그녀를 사람들은 외계인 보듯 한다. 신기한 구경거리라도 있는 듯,

이러한 시선 또한 폭력이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그제야 엄마는 각성을 한다. 

길버트와 아이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짐이 되었을지를.

여기서 드는 반감. 

왜 남편이 자살했다고 그녀는 자신의 슬픔에만 갇혀있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엄마가 되고 나니, 그런 것들이 좀 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식들도 분명 아버지를 잃었는데, 자신만 남편의 죽음에 대한 상처에 갇혀 

아이들을 돌보지 않았고, 그 무게는 고스란히 길버트와 누나 에이미가 져야 했다.

반짝여야 하는 청춘인데, 가족이라는 굴레에 갇혀 사는 길버트의 모습은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 모습이 누군가를 떠올리게 해서 더욱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갈 데가 없어' 

막상 집에서 뛰쳐나왔지만 갈 데가 없다고 말하며 우는 길버트의 모습은 가족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대사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길버트는 가족을 포기하지 않고 그 안에서 사랑하고 성장해나간다.




삶의 다양성     


오늘, 독서토론모임에서 발제로 나온 주제 중 하나가 다른 나라는 가족을 중시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돈이 우선시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였다.

여기에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며 '가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나는 예전부터 가족의 형태가 변형된, 대체가족을 그린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자주 보게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나 '어느 가족', '브로커' 등 영화 속에선 피를 나누지 않은

타인이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들이 표현된다.

오늘 독서토론모임에서도 나온 이야기지만, 피를 나눈 가족이지만 사회에서

만났더라면 전혀 친해지고 싶지 않은 가족도 존재한다.

같은 부모 아래 태어났지만 나와는 전혀 결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것이다.

부모도 마찬가지 아닌가?

나의 선택과는 별개로 부모와 자식의 연이 맺어져 가족의 굴레 안에 살아가지만,

부모와 쿵작이 잘 맞는 경우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되려, 많은 감정들로 얽히고설키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나 또한 원가족에 대한 애착이 많은 편에 속했다.

내가 '속했다'라고 과거형으로 이야기하는 건, 원가족을 대하는 나의 생각의 변화가

생겼기 때문인 듯싶다.

내가 해결해 줄 수 없다는 데에서 오는 무력감, 

잘해드린다고 해도 생기는 부채감.

이런 감정들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는지도 모르겠다.

가족이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의 삶이 있는 것이다.


불편함 없이, 좋기만 한 사람이길.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염미정(김지원)은 그냥 좋은 사람이 없다고 한다.

부모도, 형제도, 불편한 감정이 있다는 거다.

불편한 구석 없이 좋기만 한 사람이 한 명쯤은 있길 바라는 염미정의 대사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일인 가구가 늘어가고 있고, 결혼 후에 자녀를 갖지 않는 부부도 늘고 있다.

가족은 아니지만, 다른 형태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삶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더욱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떠올렸을 때, 힘이 나는 존재가 <가족>이라면 그 보다 좋은 축복은 없을 듯하다.

누군가 보고 있지 않을 때 벗어버리고 싶은 존재가 아닌,

그냥 좋기만 한 존재가 가족이라면 말이다.

그것이 꼭 혈연으로 맺어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너무 이상적인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그렇잖아도 버겁고 힘든 세상 아닌가.

그러기 위해선 '가족이니까 당연한 거 아냐?'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할 것 같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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