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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Jun 04. 2024

당신의 노년이 좀 더 따뜻하길

< 삶의 다정한 목격자 >






일본에서 문제작으로 화제가 된 영화가 있다.

< 플랜 75 >라는 영화로 국제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수상하기도 한 영화다.

이 영화는 75세가 되면 누구나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무서운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75세 이상 국민이 죽음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

'플랜 75'를 발표한다. 고통 없는 죽음으로 정부가 안락사를 허용하는 것이다.     


" 태어나는 것은 선택할 수 없지만, 죽음은 선택할 수 있잖아요."


이 정책은 가족의 동의 없이도 신청 가능하고, 준비금으로 10만 엔까지 준다고 하니,

하루하루의 생존이 노동 그 자체인 노인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언젠가는 할 수도 있지. 손주들을 생각하면 필요할지도 모르잖아”     


영화의 주인공 미치는 남편을 잃고 혼자 살아가는 78세의 할머니다.

아직은 일을 더하고 싶지만, 일하던 호텔에서 퇴사통보를 받고, 다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던 중 서로 의지하고 지내던 이네코마저 고독사를 하고 나자,

고민 끝 플랜 75를 신청하게 된다.

    

“플랜 75의 상담원입니다.

고통이나 통증은 전혀 없습니다.

당신의 마지막 순간을 돕는 플랜 75”     


플랜 75를 신청하고 나면, 젊은 상담사와 주어진 시간 15분 동안 통화를

하게 된다. 외로운 미치에겐 15분은 너무 짧다.

상담을 해주는 콜센터 상담원 또한 이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시스템인지

잘 알고 있다.     


“실제로 도중에 그만두려는 분들이 많으세요.

노인분들이 취소하지 않게 잘 유도하셔야 해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미래, 인구절벽 위기에 고심하던 정부가 노인의 안락사를

지원하는 정책을 내놓는다는 설정은 충격적이다.

공포영화가 아님에도 담담하게 그려내는 현실적 내용에 오히려 더 심한 공포감이

드는 영화다.

눈여겨볼 좀은 그러한 플랜 75의 정책을 담당하는 실무자들이 대부분 젊은 청년층이라는

점이다.  




EBS다큐멘터리 < 내  마지막 집은 어디인가 >는 어떤 곳에서, 어떤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평화로운 선택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돌봄을 받으며 생을 마감할 것인지, 내가 살아가던 공간, 나의 집에서

생을 마감할 것인지 그러한 선택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더 나아가, 죽음 앞에선 한 사람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마지막까지 존중해 주는

사회의 성숙한 태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노인혐오가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한 카페에서는 노인 손님에게 영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나가달라고 해 공분을 사기도

했었다. 노인시설을 짓는 것에 대해 집 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뉴스도 접한다.

초고령 사회문제는 많은 나라의 이슈이기도 하다.

유엔의 추계인구전망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의 비율은 약 9% 정도이며,

2050년에는 약 16%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한다.

특히 일본, 한국, 이탈리아, 독일 등은 이미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비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386세대라 불리는 60년대생은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인

 '마처세대' 라 부른다고 한다.

이들 중 일부는 초고령 사회가 예고된 내년에 65세가 되며 법적 노인 세대로 진입한다.

이들의 49%는 부모의 건강 문제로 돌봄이 필요한 상태고, 이중 32%는 부모를

직접 돌본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노년이 되어 스스로를 돌보고 싶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인들을 만나면, 아이들의 교육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다 보니 정작 노년을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늙는 것의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들이 곧잘 화두에 오른다.     

삶은 유한하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노화를 겪는다.

그건 노년의 삶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노년의 삶이 조금은 따뜻하길 바라는 건 욕심일까.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왔던 한 인간으로서, 노년의 삶을 존중 해 줄 순 없을까?

꼭 쓸모가 있어야만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일까?

영화 <플랜 75>에서처럼 노인에게 죽음을 권하는 사회가 단순한 영화적 상상력인 거 같지 않아

두렵다.


사회의 성숙은 인간에 대한 존중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소중함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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